동물원형 블록체인 vs 생태계형 블록체인

    • 심상규 펜타시큐리티시스템 CTO

입력 2019.02.15 03:00

[On the IT]

블록체인의 근간은 분산 네트워크
갇혀 지내는 동물원이 지속 가능치 않듯 누군가 제어하려 할 때 블록체인은 실패

심상규 펜타시큐리티시스템 CTO
10여 년 전까지 IT 환경에서 생태계(ecosystem)라는 용어는 낯선 용어였다. 애플은 아이팟(iPod)을 출시하면서, 음악을 온라인으로 배포할 수 있는 아이튠스(iTunes)를 발표했다. 사용자들이 CD로부터 음악 파일을 추출해서 MP3 플레이어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아이튠스와 연결된 음반사로부터 직접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서 아이팟에 저장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IT 업계에서 기기와 음원 제공사들이 연결되는 생태계였다. 이후 아이팟은 아이폰으로 발전했고, 애플은 음악 파일뿐만 아니라 모바일 앱, 동영상,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제공해주고 있다. 많은 기업이 플랫폼 사업을 지향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근간은 생태계다. 블록체인 활용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생태계다.

비효율적인 블록체인이 왜 인기?

IBM에서 블록체인 활용 사업을 이끌고 있는 폴 장 총괄임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성패는 기술력이 아니라 활용성 입증에 달려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공감 가는 이야기다. 블록체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연구개발은 지금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효율성이 높아진 최신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결국 많은 사람이, 많은 기업이 그 블록체인에 참여하고 이용하여 효용성을 누리는 게 중요하다. 결국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좋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 전문가는 이렇게 답한다. "그 프로젝트에서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기존에 존재하던 서비스에 블록체인만 붙여서 마치 새로운 것처럼 포장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있다. 기존 서비스에서는 큰 데이터베이스를 중심에 두고 데이터를 관리하던 것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도 의미가 있다. 블록체인이 데이터 위변조로부터 무결성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중앙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다. 블록체인을 채용하여 신규 사업을 계획 중이라는 대기업을 만나보면, 데이터베이스를 블록체인으로 바꿀 뿐 자신들이 환경을 제어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려는 건 생태계가 아니라 동물원이다.

학창 시절 배운 생태계를 떠올려보자. 햇빛, 토양, 물 등 환경과 초식 동물, 육식 동물들이 존재한다. 누가 누구를 먹어서 영양분을 확보하는 것도 있지만 모든 개체가 생태계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누가 무엇을 할지 알려주거나 의지를 가지고 제어나 억지 조절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게 자율적이다.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탈중앙화 개념도 이러하다. 블록체인 근간이 되는 분산 네트워크에서 모든 개체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갖게 되더라도 분산 네트워크에서 통신과 합의 체계에 의해서 정보를 동기화시켜 나간다.

생태계 구성을 위해 많은 사용자와 많은 기업을 모아도, 서비스 운영 주체나 생태계 전체를 누군가 제어하려 한다면 생태계가 아니라 동물원이 될 수밖에 없다. 각 개체가 자율적으로 역할을 다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은 생태계이지만 동물원 규칙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동물원은 생태계가 아니다.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이 지속 가능성과 진화 가능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은 초당 5건 거래, 이더리움은 20건, 페이팔은 200건, 비자카드는 1600건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베이스보다 월등히 비효율적인 기술이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탈중앙화이다. 일직선상에서 차례 차례로 연결되는 기존 하청 구조, 납품 구조가 수평의 평등한 협력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이것이 탈중앙화의 핵심 가치여야 하고, 블록체인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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