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 아닙니다, 예술입니다… 40대男이 열광한다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입력 2019.02.15 03:00 | 수정 2019.02.15 13:40

이규현의 Art Market (12) 아트토이(art toy)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아트 마케터
요즘 미술 딜러들에게는 '베어브릭(Be@brick)'이나 '커스(KAWS)' 작품 구입에 대한 문의가 심심치 않게 쏟아진다. 커스는 미국 미술작가로 본명은 브라이언 도넬리(45). 길거리에 낙서한 듯한 미술을 뜻하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작가다.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뱅크시 등과 나란히 거론될 정도다. 하지만 아직 45세에 불과하고 미키 마우스, 스펀지밥, 심슨 가족 등 어린이 만화 캐릭터를 응용한 이미지를 그리거나 조각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현대미술로 읽히지 않았다.

'베어브릭'은 일본의 장난감 회사인 메디콤토이(Medicom Toy)사가 만든, 말 그대로 곰인형이다. 다만 '어른이 갖고 싶은 장난감' 개념으로 만들어 어른에게 인기 있는 수집품이다. 이 베어브릭이 잭슨 폴록, 장-미셸 바스키아, 위에민쥔을 비롯한 현대미술 대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미술 시장'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중 하나가 커스다.

국내 한 미술 딜러는 "진지한 현대미술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커스의 베어브릭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 '아트토이'가 미술시장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걸 실감한다"며 "베어브릭은 특히 40대 남성들에게 인기인데, 남자들이 '내 취향대로 뭔가를 사 모은다'는 느낌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어브릭 수집가 중 하나는 국내 아이돌 '빅뱅'의 지드래곤이 있다.

장난감이 새 미술 장르 개척

일본의 세계적 현대미술작가인 다카시 무라카미나 요시토모 나라가 자신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를 가지고 만든 소품은 이미 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된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런 소품을 '아트토이'라고 부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예 메디콤토이 베어브릭이나 미국 키드로봇(Kidrobot)이 만든 더니(Dunny)와 머니(Munny) 등 장난감 회사가 만든 장난감이 버젓이 '아트토이'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만들고 있다.

미술작가 입장에서는 장난감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고, 컬렉터 기반을 넓히니 '윈윈' 하는 셈이다. 서울옥션은 가구, 디자인 소품, 아트토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자회사 서울옥션블루를 2016년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아트토이가 인기를 끌자 아예 아트토이를 언제나 사고팔 수 있는 '레어 바이 블루(Rare By Blue)'라는 유통 플랫폼을 작년 출범시켰다. 특히 베어브릭은 현대미술시장 톱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 하는 한정판을 만들어 아트토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 미술작가 커스
유명인 작품을 장난감으로 접해

베어브릭과 협업한 커스는 이미 순수미술 시장에서도 억대 작가다. 작년 11월 필립스 경매회사의 뉴욕 경매에서는 커스의 회화 '무제(Untitled, Fatal Group)'가 270만달러(약 30억원)에, 인기 있는 '컴패니언(Companion)' 시리즈의 높이 7m짜리 조각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가 199만5000달러(약 22억원)에 팔렸다. 각각 커스의 회화와 조각 최고 경매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인기 있고 비싼 작가 작품이 장난감이 되어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 아트토이가 가진 매력이다. 201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스토어(아트숍)에서 커스의 '컴패니언 시리즈'를 30㎝ 길이 소형 상품으로 200달러에 판매했을 때엔 주문이 몰려 홈페이지가 잠시 다운되기도 했다.

장난감과 아트토이 동반 성장

실제 어린이 장난감 시장과 '컬렉터블(Collectibles·흔하지 않아 수집할 가치가 있는 물건)'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아트토이는 '어른이 수집할 만한 고급 장난감'이라는 점에서 흐름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시장조사 회사 NPD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장난감 시장 규모는 작년 상반기 전년 동기보다 7% 성장한 79억달러였다. 2012년 이후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선 최근 5년간 21% 성장했다. 컬렉터블 시장은 작년 상반기 29% 성장했는데 2015년 상반기부터 3년 동안 156%나 올랐다. 컬렉터블 인기가 오르는 이유에 대해 즐거움, 놀라움, 희소성, 독점성, 소셜미디어 영향 등을 꼽았다.

작년 11월 필립스 뉴욕 경매에서 199만5000달러에 팔린 커스 작품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 7.6m 높이로 뉴욕 파크애비뉴에 세워졌던 모습이다. /필립스
미술시장 민주적 흐름의 하나

필립스 경매회사의 '20세기 및 현대미술 경매' 총괄책임자 아만다 로 이야코노(Iacono)는 커스 열풍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쓰는 데다, 수백만 달러짜리도 있지만 몇백 달러에 사서 가져갈 수 있는 토이 컬렉션도 있다"면서 "미술시장에 민주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적'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팝아트 작가들이 미국 현대미술을 휩쓸었을 때 나온 표현이다. 그전까지 너무 어려웠던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기가 죽었던 대중에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미술'을 보여주고, 비싼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을 저렴한 판화로도 만들어 일반인도 소장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금 아트토이 인기 현상도 1960년대 미국 팝아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익숙한 시각문화를 다룬다. 또 억대로 거래가 되는 비싼 작가들 작품을 각자 경제 수준에 맞는 크기 작품으로 직접 소유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장난감이 한정판으로 나오기 때문에 인기 작가와 컬래버레이션한 아트토이는 나중에 재판매를 통한 투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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