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저택 5채·전용 비행기·수백억 연봉·'황제 재혼'… Gone!

입력 2019.01.25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12> 카를로스 곤 '명예도 함께 사라지다'

베르사이유궁서 피로연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통합한 수퍼스타
연봉 1820만달러 도요타 회장의 6배 파리 등 저택 5채 넘어

다다미 독방서 70일째
은퇴 후 거액 연봉 받도록 조작하고 자신의 투자 손실을 회사로 떠넘겨 '배임'
전격 체포, 구치소로 보석 신청도 기각돼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작년 11월 29일 오후 4시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닛산 자동차 회장의 전용기인 걸프스트림사 19인승 고급여객기 G650이 착륙했다. 베이루트를 떠난 지 14시간 만이었다. 뒷부분의 엔진 외벽엔 닛산의 영문 표기를 연상케 하는 콜사인 'N155AN'이 선명하게 찍혔다. 비행기 안에는 닛산·르노·미쓰비시 자동차 3사의 회장인 카를로스 곤(Ghosn·64)이 타고 있었다. 1년에 약 100일을 비행기로 전 세계를 누비는 '자동차 황제' 곤에겐 작년에 예정된 마지막 일본 방문이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으로 수사관들이 들이닥쳤고, 딸이 기다리고 있던 도쿄 미나토구(區)의 초호화 아파트 '모터아자부 힐스'에서도 15명의 검찰 수사관이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 이후 70일이 되도록, 곤은 도쿄 구치소 내 다다미 넉 장 반짜리 독방에 수감돼 있다. 가족 사진이나 일체의 필기도구 반입이 금지되고, 하루 30분의 운동 시간만 허용된다. 그의 아내 캐럴이 "남편이 2주 만에 7㎏이 빠졌고, 자백을 강요받는다"고 호소했지만, 곤에 대한 혐의가 계속 추가되면서 법원은 보석 신청을 기각했다.

'경영의 천재'로 추앙 받다 추락

곤에게 애초 적용된 혐의는 연봉 축소 신고 및 업무상 배임이었다. 2010년 3월부터 2015년 3월까지 5년치 보수 중에서 약4400만달러(50억1100만엔)를 누락하고 따로 관리해 은퇴 후에 받도록 한 것이 내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지난 11일엔 2018년 3월까지 추가로 은닉한 보수도 밝혀졌다. 그가 신고하지 않고 나중에 받으려고 한 액수도 8000만달러를 넘었다. 곤은 2010년부터 일본의 관련 법이 바뀌어 연봉 1억엔(약 88만달러) 이상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하도록 하자, 여론을 의식해 닛산 연봉을 780만달러로 신고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받게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카를로스 곤이 재혼한 아내 캐럴과 함께 2016년 10월 피로연 장소인 베르사유 궁전 내 트리아농으로 들어서고 있다. 18세기 복장으로 꾸민 배우와 모델들이 이날 120명의 하객을 맞았다.
카를로스 곤이 재혼한 아내 캐럴과 함께 2016년 10월 피로연 장소인 베르사유 궁전 내 트리아농으로 들어서고 있다. 18세기 복장으로 꾸민 배우와 모델들이 이날 120명의 하객을 맞았다. /핀터레스트
'축소된 연봉'으로도, 곤은 일본에서 최대 연봉 CEO가 됐다. 또 2008~2009년 자신이 파생상품에 투자해 입은 손해를 닛산에 넘겨 업무상 배임 혐의도 받는다. 심지어 2002년부터 누나를 자리도 없는 '고문'에 앉히고 닛산 측에 매년 10만달러를 지급하게 했다. 이후에도 일본 검찰과 언론에선 그를 '파렴치한'으로 모는 회삿돈 유용(流用) 내역이 계속 흘러나왔다.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곤은 최대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곤이 체포된 날 밤 10시, 곤이 후계자로 키운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는 "깊은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며 격정적인 기자회견을 했다. 며칠 뒤 닛산과 미쓰비시는 이사회를 열고 그를 회장직에서 축출했다. 르노 자동차의 최대 주주(15% 지분 보유)인 프랑스 정부도 지난 16일 곤의 구금이 장기화하자, 르노 측에 "새로운 리더십 구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곤은 19년에 걸쳐 구축한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 3사 연합에서 모두 쫓겨나게 됐다. 한때 '닛산의 구세주' '경영의 천재'로 추앙받으며 만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도 나왔던 곤의 추락이었다.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닛산 되살려

1999년 3월 르노의 수석부사장이었던 당시 45세의 곤은 르노가 350억달러의 빚에 쌓여 파산 위기에 몰린 닛산 지분 36.8%(현재는 43% 보유)를 54억달러에 인수하는 것을 주도했다. 르노 시절부터 별명이 '코스트 킬러(cost killer)'였던 곤은 이후 닛산 CEO로 취임해 가혹한 구조조정을 하며 회사를 반전시켰다. 닛산 직원의 14%인 2만1000명이 해고됐고, 공장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절감한 비용을 3년간 22개 신차(新車) 개발에 쏟아 6년 뒤 혼다를 제치고 일본 2위의 자동차 회사로 키웠다. 이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점퍼 차림으로 일한다고 '세븐 일레븐(7-11)'이란 별명도 얻었고, 성(性)과 국적을 따지지 않고 실적 위주로 승진시켜 일본의 기업 문화를 뒤흔들었다. 곤은 또 2005년엔 르노의 회장·CEO에 취임했고, 2016년엔 닛산을 통해 미쓰비시 자동차의 지분 34%를 인수했다. 르노를 정점으로 한 3개 자동차 연합을 구축한 것이다.

3사는 세계시장에서 하나의 그룹처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부품 공급사를 공유하면서 공통의 모듈에서 차를 만들었다. 닛산 600만 대·르노 380만 대·미쓰비시 100만 대 등 연간 1000만 대 이상을 생산해 도요타·폴크스바겐 급의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가 됐다.

하지만 닛산의 회생은 역설적으로 3사 연합 내 알력과 곤의 몰락을 부추겼다. 르노보다 월등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췄으면서도 연합의 '주니어 파트너'일 수밖에 없는 닛산 측에선 "기술만 빼앗기고, 르노 탓에 닛산의 독자적인 유럽 진출은 부진하다"는 불만이 터졌다. 반면에, 르노는 곤이 닛산 차를 선호해 중국시장을 닛산 쪽으로 몰아준다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곤이 '연합' 결성 20주년인 올해 3월에 맞춰 아예 르노와 닛산을 한 회사로 만드는 '불가역적(不可逆的) 합병'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돌았다. 그래서 이번 비리 폭로를 닛산 측의 '궁정 쿠데타'로 보는 시각도 많다.

연봉·주택 등 사치 탐하다 불행

그러나 이번 사태의 씨앗은 곤이 뿌렸고, 그의 최대 죄악은 '탐욕'이었다. 작년에 닛산의 완성차 품질관리 불량 및 연비 조작 사건이 터져 매출이 급감했는데도, 곤이 3사로부터 받은 연봉은 1820만 달러로 도요타 회장의 6배였다. 작년 6월엔 프랑스에서도 그가 르노에서 받는 850만달러의 연봉이 문제가 됐다. 르노 이사회는 "최저임금보다 무려 240배를 받는 CEO는 통제를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카를로스 곤 '명예도 함께 사라지다'

그런 가운데, 작년 봄 닛산에서 내부 제보와 감사를 통해 닛산이 세운 네덜란드의 벤처 투자사 'Zi-A' 등을 통해 도쿄 외에도 베이루트·리우데자네이루·파리·암스테르담 등 최소 5곳에 곤과 가족을 위해 고급 주택을 구입하고 임대한 것이 드러났다. Zi-A는 2012년 레바논계인 곤을 위해 베이루트에 875만 달러짜리 고급 주택을 샀고, 인테리어 공사로 600만달러를 더 썼다. 곤이 태어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의 고급 아파트도 570만달러를 주고 샀다. 이 집은 휴가 때 곤의 가족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 장소로 주로 쓰였다. 보석 디자이너인 곤의 딸은 브라질 판 패션 잡지 보그(Vogue)에 "가족이 함께 집 앞 코파카바나 해변을 걸을 때가 가장 시적(詩的)인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닛산 측은 파리 고급 주택가인 제16구에 155평 규모의 복층 아파트를 구입했고, 곤이 한 달에 고작 며칠을 쓰는 도쿄의 아파트도 매달 100만엔(8900달러)씩 임차료를 내고 있었다.

760억원짜리 최신형 전용기 타기도

닛산은 2016년엔 곤의 전용기도 걸프스트림사의 최신형 여객기인 G650으로 교체했다. 곤은 6700만달러(약 760억원)의 가격표가 붙은 이 전용기로 정작 해외시장 치고는 비중이 매우 낮은 베이루트를 수시로 찾았다. 중동의 불안한 정세 탓에, 이 전용기는 베이루트 공항에 머물지 못하고 매번 키프러스 섬으로 갔다가 곤의 출발에 맞춰 베이루트로 와야 했다. 같은 해 가을 캐럴과 재혼했을 때에는,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피로연을 했다. 루이 14세 시절의 복장을 갖춘 모델들이 시중을 들고 사람 키보다도 높은 케이크와 금 접시, 화려한 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120명이 파티를 했다. 그는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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