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1.25 03:00
카를로스 곤은 브라질에 이민 간 레바논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곤의 할아버지는 열세 살 때 종교 분쟁과 가난을 피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배에 올라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다. 곤은 어려서부터 차 뒷좌석에 앉아 눈 감고 클랙슨 소리만 듣고 차 이름을 맞히는 놀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살 때 모기로 인해 심한 열병에 걸렸고, 아버지는 죽음 직전에 살아난 곤을 여섯 살 되던 해에 레바논 베이루트로 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이루트에서의 삶은 가난했고 곤은 15, 16세 때 처음 레스토랑에 가서 포도를 보곤 '값비싼 사치품 과일'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나중에 포도를 사서 전시하는 것은 그의 취미가 됐고, 2016년 베르사이유 궁전 재혼 피로연에선 금 접시 위에 포도가 놓였다.
곤은 프랑스에서 명문 생루이 고교와 국가 엘리트 양성 대학 중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니크(파리공과대학)를 졸업했다. 미쉐린 타이어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고 미쉐린 북미법인장을 지내면서 글로벌 엘리트로 성장했다. 그는 영어로 업무를 보지만, 프랑스어로 농담 하고 아랍어도 몇 마디 할 줄 안다. 곤은 작년 6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내 뿌리를 구분하기는 참 힘들다"며 "가계는 레바논이지만, 난 브라질인이기도 하고, 엄마는 프랑스어권 출신이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블룸버그 통신은 국경을 넘어 비즈니스를 하는 그를 "만약 다보스 포럼이 '사람'이라면, 바로 카를로스 곤"이라고 평했다. 그는 FT 인터뷰에서 당시 이슈가 된 자신의 과도한 연봉 수준에 대해 "전 세계 CEO 중에서 자신이 너무 많이 받는다고 말할 이는 없을 것"이라고 웃어 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이루트에서의 삶은 가난했고 곤은 15, 16세 때 처음 레스토랑에 가서 포도를 보곤 '값비싼 사치품 과일'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나중에 포도를 사서 전시하는 것은 그의 취미가 됐고, 2016년 베르사이유 궁전 재혼 피로연에선 금 접시 위에 포도가 놓였다.
곤은 프랑스에서 명문 생루이 고교와 국가 엘리트 양성 대학 중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니크(파리공과대학)를 졸업했다. 미쉐린 타이어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고 미쉐린 북미법인장을 지내면서 글로벌 엘리트로 성장했다. 그는 영어로 업무를 보지만, 프랑스어로 농담 하고 아랍어도 몇 마디 할 줄 안다. 곤은 작년 6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내 뿌리를 구분하기는 참 힘들다"며 "가계는 레바논이지만, 난 브라질인이기도 하고, 엄마는 프랑스어권 출신이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블룸버그 통신은 국경을 넘어 비즈니스를 하는 그를 "만약 다보스 포럼이 '사람'이라면, 바로 카를로스 곤"이라고 평했다. 그는 FT 인터뷰에서 당시 이슈가 된 자신의 과도한 연봉 수준에 대해 "전 세계 CEO 중에서 자신이 너무 많이 받는다고 말할 이는 없을 것"이라고 웃어 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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