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버블, 역대 세번째 수준… 금융위기 가능성은 작지만 침체 시작 조짐"

입력 2019.01.25 03:00

[Cover Story] 글로벌 부동산 '버블의 공포'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인터뷰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미국 상원에서 열린 의회 합동경제위원회에 참석해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미국 상원에서 열린 의회 합동경제위원회에 참석해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 EPA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폭풍이 불어닥치자 미국 부동산은 세계 경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주범으로 지목됐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탐욕은 죄악시됐고, 대출을 부채질한 금융회사는 사악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부동산 버블에 한번 호되게 덴 경험이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4년 만에 다시 집을 사러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제 위기 탈출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를 맞아 고꾸라지던 미국 집값은 2012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재차 치솟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길거리로 나앉는 모습을 보면서도 미국인들은 교훈을 얻지 못한 걸까.

로버트 실러(Shiller)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버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잠시 잦아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버블은 꺼지게 마련이지만 고통을 수반한다. 누구보다 부동산에 정통한 실러 교수가 '버블과 붕괴의 반복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을 듣기 위해 지난해 11월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연구실로 찾아갔다. 고풍스러운 강의동 건물에서도 가장 구석에 자리 잡은 연구실 문을 열자, 그는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에 앉아 소매를 걷은 채 꺾은선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서류 뭉치를 뒤적이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아직 뜯지 않은 택배 상자들과 여러 기사를 정리한 스크랩북이 놓여 있었다. 그는 상당히 피곤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고선 "마침 부동산 얘기를 하기 딱 좋은 시기다. 어제 막 새로운 주택 통계 전망치가 나왔다"고 말했다.

부동산 버블, 10년 전 금융 위기 직전 수준

―최근 몇 년간 미국 부동산 경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로버트 실러 프로필
"아무리 뛰어난 거시경제학자라고 해도 먼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순 없다. 그러나 케이스실러지수 같은 부동산 지표들은 긴 시간 쌓아온 여러 케이스를 바탕으로 방정식을 만들고, 이를 통해 믿을 만한 결과를 추론하도록 짜여 있다.

이런 지표를 보면 지금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달아올랐다는 걱정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현재 부동산 버블은 금융 위기 이전에 비할 만한 수준이다. 지표상으로 미국 주택 가격이 가장 급상승했을 때는1997 년 2 월부터 2006 년 10 월까지다. 이 시기에 주요 도시 주택 가격은 74%가 올랐는데 그 결과는 알다시피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그다음 순위는 70년 전이다. 1942년에서 1947년 사이 60%가 올랐다. 이때는 전쟁(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주택이 제때 지어지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시기다. 그리고 세 번째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6년간의 랠리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 아닌가?

"지극히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은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 부동산 '붐'이나 '버블'을 설명하는 주된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률과 부동산 가격은 비슷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훨씬 앞질러 갔다.

미국의 경우 1950년에서 2000년까지 50년 동안 기존 주택의 실질 가격(물가 상승률을 뺀 주택 가격)은 고작 20% 증가했다. 지금처럼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채 20년이 되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서 주택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평생 투자 대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대출을 일으켜 '투기(Speculation )'할 대상으로는 매력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다수가 '주택 가격은 무조건 오르는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금융 위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듯

―부동산 '버블' 때문에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는데도 또다시 '주택 가격이 무조건 오른다'고 믿는단 말인가?

"사람들은 주택 가격이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오르지 않으면 아예 주택을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값에 변화가 없으면 이전처럼 꾸준히 월세를 내며 사는 편이 낫다고 본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 바닥으로 떨어졌던 주택 가격이 다시 경기가 좋아지면서 오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주택에 투자하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이 거둬들이게 될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다. 비이성적 과열이다. 가령 30만달러짜리 집을 사서는 곧 50만달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40만달러에 사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며 거절한다.

이런 과도한 자신감은 사실 행동경제학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이다. 구조가 건실하면 경제적 측면에서 버블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금융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대침체(great recession)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버블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계속 찾아올 것이다. 지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 시스템은 보완했으니, 앞으로 버블 붕괴가 또 닥치면 소득 불평등에 따른 부작용처럼 상대적으로 보완이 취약했던 다른 문제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작년부터 미국 주택 시장이 식을 기미가 보인다. 6년 랠리가 잠시 잦아드는 전조일까?

"주택 시장은 주식 시장과 다르다. 주식 시장에서는 어제 올랐던 주가가 오늘 내릴 정도로 변화가 심하지만, 주택 시장은 대체로 패턴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2년치 미국 신규 주택 허가 건수를 보면 작년 7월부터 새로 지어질 주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를 금융 위기가 다시 온다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주택 시장 열기가 식을 조짐이 보인다는 건 분명하다. 사람들이 주택 시장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면 건설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테고 이는 곧 또 다른 경기 침체(recession)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거래되는 주택 물량이나 신용 경색 정도를 보면 2008년 같은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기 사이클에서 정기적으로 오는 침체기에 가까울 것이다."

저금리·외자 유입 의존한 버블은 결국 폭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책적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울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나라든 부동산 경기는 정부 정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10년 동안 불었던 부동산 붐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분명히 큰 몫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 년 이민자와 소수인종 550만명에게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아메리칸드림지원법(American Dream Downpayment Act)'에 서명했다. 2004년 재선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본인 명의 집을 갖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적 분위기가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촉매제가 됐을 순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서 부동산 버블은 기본적으로 사회심리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방식만으로는 완전한 통제가 어렵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내놓은 세제 개혁안에 주택 융자와 관련한 세제 혜택을 줄이는 내용이 포함되자, 집을 사려는 사람이 줄어들어 주택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1년 6개월간 주택 시장에 호황이 이어지지 않았나. 금리도 마찬가지다. 저금리만으로는 주택 시장 과열을 설명할 수 없다. 199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높였을 때도 부동산 시장 열기는 꺼지지 않았다. 단기적인 요인은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진 못할 것이다."

―미국보다 버블 압력이 더 큰 신흥국 부동산은 이전보다 안전한가?

"2000년대 초반 부동산 붐이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유럽,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 불어닥쳤다는 것은 무엇인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요소가 국경을 넘어 각국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지금 신흥국 부동산은 낮은 이자율이나 무한에 가까운 외국 자본 유입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는데, 포트폴리오 투자나 단기적인 자금 유입으로 발생한 부동산 버블은 결국 폭발하기 마련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경제가 침체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 바로 국내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재정·통화정책을 펼 텐데, 이 과정에서 만약 부동산 가격 조정이 나타난다면 고통 없이 이겨낼 수 있는 신흥국가는 거의 없다고 본다."

☞S&P 케이스·실러 주택 가격 지수(S&P Case·Shiller Home Price Index)

미국 주요 대도시 단독주택 가격 변화를 지수화한 것. 칼 케이스(Case) 웰즐리대 교수와 로버트 실러(Shiller) 예일대 교수가 공동 개발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다. 20개 대도시 개별, 20대 대도시 종합, 10대 대도시 종합, 전국 지수 네 가지로 이뤄진다. 2000년 1월을 100으로 잡고, 대도시 지역(MSA·Metropolitan Statistical Area)에서 최소 두 번 이상 거래된 단독주택 가격 변화를 분석한다. 전국지수는 2???1월, 나머지 3개 지수는 매달 발표한다. 미국 FHFA(연방주택금융공사) 지수가 가격 변동 폭이 작은 농촌 주택 가격도 반영하는 것과 달리, 거래량이 많고 물가 변화에 민감한 대도시 집값을 위주로 측정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미국 부동산 경기 변화를 파악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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