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의 비밀, 15세기에 이미 카메라가 있었다?

    • 채승우 사진가

입력 2019.01.25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7) 사진과 미술의 만남

[채승우의 Photographic]
사진가
예술을 하려면, 혹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탈, 파격적인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예술의 변화를 이끌어 온 중요한 작가들은 남들과 크게 다른 생각을 한 사람 아닐까. 다른 생각을 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공한 사람들은 남다른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다. 사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 작가가 있다.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Hockney)다. 지난해 11월 한 미술품 경매에서 생존 작가로서 최고 가격으로 작품이 판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그림은 회화 작품이었지만, 그의 작업 바탕에는 사진에 대한 연구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 광학기기 흔적

호크니 연구는 15세기 르네상스 그림들에서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미술관에서 거장들 작품을 보다가 그림에 나타나는 이상한 흔적이 뭘까 궁금했다고 한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수많은 그림을 직접 보고 비교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20m 크기 화실 벽에 수많은 그림 복사본을 시대 순서로 붙였는데, 호크니는 이를 '대장벽'이라고 불렀다.

[채승우의 Photographic]
호크니의 책 ‘명화의 비밀’ 표지. 호크니가 ‘카메라 루시다’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림을 관찰하고 관찰한 끝에, 어떤 공통적인 특질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눈대중으로 보고, 손을 굴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구분했다. 화가이기에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던 듯하다. 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데생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교실 앞 모델을 그리기 위해 미술 연필로 도화지 위에 여러 번 선을 그어가며 형태를 만들어가지 않았나. 미술사에서 언젠가부터 여러 번 손자국 대신 단 한 번에 확신 있게 형태를 그려낸 자국들이 나타난다. 게다가 그런 그림들은 세부 묘사 역시 아주 뛰어나다.

호크니는 뭔가 광학 장치가 사용된 게 아닐까 생각했고, 다시 문헌과 자료를 뒤져 광학기계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찾아낸다. 그 결과, 광학 장치 발전 변화는 그림 변화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화가가 광학기계를 사용했다는 것과, 그 화가들이 광학기계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쉬쉬하며 숨겨왔다는 게 호크니 주장이다.

그 광학기계는 '카메라 옵스큐라', '어두운 방'이라 불렸다. 초기 것은 정말 사람이 들어가 그림을 그리는 방이었으며, 오목거울을 사용했다. 나중엔 사과상자만한 장치로 바뀌고 거울 대신 렌즈를 사용한다. 이 기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에 있는데, 이 기계를 화가들에게 권한다는 메모도 있다. 다빈치가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1820~1830년쯤 수많은 사진 기술이 발명됐는데, 그 발명이란 모두 화학에 대한 것이었다. 사진에 꼭 필요한 광학 장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진기를 부르는 '카메라'라는 말이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왔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의 시작, 15세기로 올려 잡을 수도

[채승우의 Photographic]
파르미지노가 그린 이 그림에서 여인 왼손은 그 비례가 이상하다. 호크니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움직여가면서 그린 결과로 판단한다.
[채승우의 Photographic]
카냐치의 1658년 작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한 명의 모델을 촬영해 합성한 듯 얼굴이 모두 닮아 있다. 원작을 흑백으로 바꿔보면 더 사진에 가깝다.
여기에서 호크니의 파격적인 발상이 시작된다. 반드시 19세기 초 발명된 그걸 '사진'이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 광학 장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먼저 발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15세기쯤 사진은 광학 장치와 사람 손이 결합한 형태로 태어난다. 그러다 19세기 초 화학적 발명들이 나타났고, 광학 장치와 필름 결합으로 바뀐다. 그 이후에는? 1980년대 전자 장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진은 다시 광학과 전자 장치의 결합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그 결과물인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있다.

화학물질, 쉽게 '필름'이라고 하자. 필름을 사용한 기간은 19세기 초에서 20세기 말까지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진을 꼭 필름과 관련지어 말할 필요가 있을까. 19세기 초를 '사진의 탄생'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정작 호크니 관심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였다. 그의 연구에서 사진에 대한 언급은 간단히 그친다. 더 깊이 생각해보는 일은 우리 몫이다. 호크니 발상대로 사진에 대한 정의를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 우선, 필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사진은 역시 흑백'이라거나, '프린트 질이 좋아야 한다'라는 가치 평가는 필름 시대 것이다. 또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 사진 조작이 쉬워진 걸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원래 사진은 사람 손이 닿아서 만들어지는 것이었으니까. 사진이 디지털과 만나면서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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