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되거나 나가거나… 회사는 일하는 곳, 놀이터 아니다"

입력 2019.01.11 03:00

[Cover story] '실리콘밸리 인재 바이블' 만든 패티 매코드 前 넷플릭스 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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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매코드 패티매코드컨설팅 대표(전 넷플릭스 최고 인사 책임자). /유튜브
샌타크루즈 해변에서 1.5㎞쯤 떨어진 패티 매코드 전 넷플릭스 CTO(Chief Talent Officer·최고인사책임자) 자택 앞에 도착하니 대문이 열려 있었다. 계단을 올라 마당에서 인기척을 내니 매코드가 샤워 가운을 입은 채 나타났다. 헝클어진 금발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음료수를 권했고, 이후 편안한 셔츠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은 채 대화를 시작했다.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에는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너 의자와 보르도 와인이 가득한 와인셀러가 놓여 있었다. 매코드는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패티매코드컨설팅 대표로 일하고 있다.

경영인 목표는 스타급 인재 배치하는 것

―넷플릭스 인사 정책은 독특하면서도 냉정하다.

"회사는 프로 스포츠팀이지 놀이터가 아니다. 실리콘밸리 일부 기업은 고급스러운 사무실에 뷔페식당, 공짜 음료, 근사한 파티를 제공하는 걸 자랑삼아 말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직장은 일하는 곳이지, 노는 곳이 아니다. 경영인은 모든 직급에 스타급 직원을 앉혀 놓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성실한 직원은 아무리 잘해도 평균 대비 두 배 정도 성과를 올리지만, 창의적인 직원은 잘하면 평균보다 열 배 성과를 낸다."

―'직원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 최고의 동료'라고 주장하게 된 계기가 있나.

"예전에 한 엔지니어에게 직원을 충원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거절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평균 이하 부하들 감독하면서 일하느니 혼자 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 탁월한 직원을 데려오는 게 경영진뿐 아니라 내부 직원에게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창립 멤버를 필요 없다고 내보내면 직원들 사기에 악영향을 주지 않나.

"과거에 훌륭한 직원이었더라도 그의 능력이 회사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그들은 나가서 넷플릭스 출신임에 자부심을 갖고 더 좋은 기회를 얻곤 한다. 데이터 분석가로 입사해 3년 만에 데이터 사이언스·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승진한 에릭 콜슨은 3년 만에 의류 스타트업 스티치픽스(Stitch Fix)로 이직했다. 거기서 최고 알고리즘 책임자로서 '패션업계의 넷플릭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회사 커질수록 직원 자유를 늘려라

―넷플릭스는 직원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는 걸로 유명하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자유 속에서 성장하고,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넷플릭스 비즈니스 모델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늘리는 것이다. 그래야 창의적인 사람을 계속 고용하고 키워갈 수 있다. 다른 회사에선 규모가 커질수록 직원 자유가 줄어든다."

―다른 회사는 왜 성장할수록 자유가 줄어드나.

"성장은 복잡성을 증가시킨다. 직원 수가 늘어날수록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업무도 늘어난다. 과거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일할 때 인재 관리 부서에만 370명 직원이 일했다. 대다수 회사에서는 성장할수록 사업이 너무 복잡해져 혼돈이 발생한다. 결국 혼돈을 줄이기 위해 규칙을 늘린다. 출근은 8시 정각, 휴가는 1년 15일, 5000달러 넘는 비용은 상사 결재를 받아야 하고, 사내 포스터를 붙이려 해도 허가가 필요하다. 아무도 규칙을 좋아하지 않지만 혼돈에 비해선 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규칙에 집중할수록 재능은 낭비된다."

―규칙이 불필요하다는 건가.

"규칙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경영인 입장에서 규칙은 때론 달콤하고 강력한 단기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규칙 중심형 기업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실수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기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거나 개성이 특출난 혁신가는 이런 기업에 거의 남아 있지 않는다. 더구나 시장은 더 빠르게 변하고 움직인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술·모델이 등장할 때 규칙 중심형 기업은 기민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구성원들이 이미 존재하는 규칙에 따라 절차를 수행하는 것만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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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CEO./블룸버그
사세 확장세보다 인재 확보 속도 빨라야

―그렇다면 성장하는 기업이 혼란을 피하면서도 규칙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업 복잡성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재능 밀집도를 높여야 한다. 전체 직원 중 뛰어난 혁신가 비율을 높여야 한다. 업계 최고 수준 임금, 업무 자율성 확대 등 보상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자유를 확대하면 방종으로 나갈 수 있지 않나.

"자유는 완벽하지 않다. 보통 회사가 필요한 최소한 규칙 두 가지를 들자면, 하나는 자금 상황이 악화되거나 고객 신용 정보가 유출되는 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예방하는 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정직하지 못한 직원이 회사에 해를 끼치는 도덕적, 윤리적, 법적 문제를 다스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고 쫀쫀한 규칙은 역효과다. 방종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예방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문제가 터진 뒤 수습하는 게 낫다. 뛰어난 사람은 눈앞에 작은 이익을 얻으려고 자유를 남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창의와 혁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존해야 한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좋은 규칙도 있지 않을까.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규칙도 있다. 엔지니어가 코드를 업데이트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알리도록 규칙을 만들어 놓으면, 똑같은 문제로 누군가 고민하는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분기 예산을 부서별로 나눠 개별 지출하면, 부서 간 예산 협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전략 회의나 상황 점검 회의를 특정 주기로 해서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도 좋다."

―직원의 자유를 중시하게 된 계기가 있나.

"넷플릭스도 2004년까지 연간 휴가일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밤이나 주말에 온라인으로 일하기도 하고, 아무 때나 이메일을 회신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어느 날 한 직원이 '주당 근무 시간은 체크하지 않으면서 왜 휴가 시간은 체크하느냐'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 일했는지가 아니라 이뤄낸 성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장에 관한 규칙이 없다고 발가벗고 출근하지 않듯, 휴가에 대한 정책 없이도 넷플릭스에선 아무도 한가롭게 놀지 않는다."

업계 최고 보상이 최고 성과 낳는다

조직심리학 대가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교수의 저서 '성공을 퍼트려라(Scaling up excellence)'를 보면 넷플릭스 한 임원이 엔지니어를 채용하면서 연봉 15만달러를 제시한 일화가 나온다. 이 엔지니어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지만 시장 조사를 해보니 15만달러는 최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연봉을 25만달러로 인상해주었다. A급 인재에게는 최고로 보상한다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 연봉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에서 가장 높은 보상을 지불하는 게 최고 성과를 내는 핵심 기업 문화다. 평범한 직원 2명보다 탁월한 직원 1명이 더 많은 성과를 내지만 따지자면 비용은 더 적게 든다. 이 때문에 우리는 뛰어난 직원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각 직원 임금을 업계 최고로 유지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다 성적이 다르고 우수 엔지니어라고 능력이 다 똑같지 않다."

―임금 인상은 매년 어떻게 하나.

"업계 최고 임금 상승률을 반영한다. 일괄 인상분은 없다. 각 관리자가 자기 부하 직원 임금을 해당 인력 시장 최고 수준으로 맞춘다. 물론 시장 상황은 분야에 따라 다르다. 시장에서 몸값이 빨리 올라가거나, 기술력이 높아져서, 혹은 인력 시장 요구에 따라서 일부 사람은 연봉이 매우 빨리 올라간다. 시장에 변화가 없을 경우 일부 직원 연봉은 큰 변화가 없다. 그래도 그들 역시 항상 업계 최고 수준 연봉을 받는다."

한국도 자유·책임 중시 문화 필요

―넷플릭스는 직원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 연봉을 물어보라고 권한다는데.

"그건 치사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행동이다. 다른 회사 비슷한 직급의 연봉을 알게 되면 상사에게 알리라고 권고한다. 넷플릭스 연봉 설정에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항상 최고 임금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직원이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이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연봉·혜택을 비교하고 나면 넷플릭스가 최고라는 걸 알게 된다."

―상여금도 필요 없다고 했다.

"연봉 자체를 높이는 게 가장 효율적인 혜택이다. 보너스나 경조사 지원금 이런 거 대신 고액 연봉에 집중해 직원들이 재량껏 쓸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 보너스는 말 그대로 덤일 뿐이다. 연봉을 10만달러에서 12만달러로 올려주고, 2만달러를 보너스로 준다면 14만달러를 받았다고 기뻐하는 대신 '2만달러를 언젠가는 못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불안감에 시달린다. 1년 뒤 연봉을 6% 인상해도, 보너스가 없다면 14만달러에서 되레 12만7200달러로 총액이 준다."

―넷플릭스 인사 철학은 한국에선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노동 시장 유연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필수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가 등장하며 '긱 경제(gig economy·필요할 때마다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임시로 일을 맡기는 경제)' 시대가 열리고 있다. 프리랜서와 시간근무제가 전체 노동시장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런 변화 흐름 속에서 뒤처지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 최근 넷플릭스 인재 관리에 대해 가장 많이 강연 요청을 받은 지역은 공교롭게 덴마크·노르웨이 등 노동자 복지가 강력한 북유럽 국가였다. 한국도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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