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정치인이 오판한 브렉시트, 영국 서민만 불행해진다

    • 사이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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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1.11 03:00

      [WEEKLY BIZ Column]

      사이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사이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
      19세기부터 20세기 초 국제 질서는 영국 외교·경제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07~2009년 사이에도 그랬다. 런던의 규제 완화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악화시켰고, 2009년 런던에서 열린 G20(주요 20국) 정상 회담에서 영국은 경제 위기를 국제 공조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사실 온갖 정치적 호들갑과 야단법석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세계 경제에 큰 문제가 아니다. 물론 브렉시트 이후 세계 경제가 다소 불확실성에 시달릴 순 있다. 하지만 그건 이른바 '관세의 남자(Tariff Man)'를 자처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탓이 더 클 것이다. 트럼프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공격하고, 경제 공급망을 파괴하며 협상 과정에서 돌출 발언을 일삼아 혼란을 부추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은 장기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근본적 문제는 일부 회원국의 낡은 금융 관행이나 부실한 공공 재정에 있다. 브렉시트는 결국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보단 영국인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 영국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무역 수지도 악화할 것이다.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추억

      영국은 산업혁명 발상지다. 그 이후 세계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1750년 이후 영국 발명품은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방적 기술과 증기기관, 제철 기술이 대륙을 넘어 전 세계 산업화를 이끌었고, 그 파급력은 기술 혁신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긍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노예 무역이나 식민지 착취 같은 부작용도 있었다. 어찌 됐건 영국이 세계 중심국이었던 시절은 짧지 않았다. 영국이 개입하면서 나폴레옹 시절부터 1870년, 1914년, 1940년 세 차례에 걸친 독일의 프랑스 침략에 이르기까지 유럽 내 전쟁은 확전 일로를 걸었고 세계 대전으로 비화했다. 1938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와 뮌헨 회담을 통해 유화책을 시도했으나 결국 이 회담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원흉이 됐다.

      영국 전성기는 1940~1941년으로 본다. 영국은 당시 거침없이 진격하는 독일 나치 정권에 홀로 맞섰다. 미국을 끌어들여 세계 평화를 지켜내려 한 판단은 전세를 역전시키긴 했지만 이때부터 세계 경제 주도권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됐다.

      1944년 브레튼우즈 협상은 유럽 제국 시대의 종언(終焉)을 알렸다. 제국주의를 통해 무역 특혜를 일삼던 기회가 사라지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무역 협정은 미국에 유리하게 정해졌다. 미국의 기업과 노동자, 정치인이 한마음으로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길 바라면서 이후 벌어진 무역 협정은 대부분 자유무역 성향을 반영했다.

      1945년 '대영제국'에는 당시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억명이 살고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대 정치 공동체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1956년 수에즈 전쟁을 비롯한 식민지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영국 영향력은 점점 축소됐다. 1976년만 해도 영국은 국제 준비 통화(IRC)를 발행하는 유일한 국가였다. IMF(국제통화기금)는 변동환율 시대(전후~1973년)에 영국 파운드화를 사용했다.

      영국이 EU(유럽연합) 회원국이 되면서 과거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영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무역에서 이득을 봤다. 특히 무역수지 흑자 절반은 유럽 내 교역에서 나왔다. 1950년대 영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GDP(국내총생산)의 40%에 달했다. 현재는 60%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영국 무역 흑자가 늘어나게 된 시점은 1973년 EEC(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이후 40년간 세계 경제 공동체에 적극 동참하면서 영국은 미국과의 1인당 GDP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브렉시트, 영국 外 큰 충격은 없을 듯

      브렉시트가 영국을 넘어서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없다. 트럼프와 달리 영국 어느 정치인도 1930년대 수준의 보호무역주의 관세를 도입할 생각은 없다. 미국과 달리 영국 어떤 관료도 금융 규제를 완화하면서까지 국가의 미래를 도박판에 던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 영국 정치 엘리트들은 1938년이나 1944년, 1956년처럼 현실 감각이 없어 보인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1992년 영국이 ERM(유럽환율메커니즘)을 탈퇴했을 때처럼 브렉시트는 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 서민은 대부분 영국인이다.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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