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건축에 민주주의 수준 드러나… 덜 자유로울수록 과시용으로 짓는 경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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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2.28 03:00

      건축과 산업디자인 넘나든 대가 마리오 벨리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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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인 밀라노 도심에 지어진 밀라노컨벤션센터(MiCo). 3만7000㎡ 규모. 1200만유로가 투입됐다. / 마리오 벨리니 아카이브
      "근대 이전 유럽 디자인 역사는 바로크·로코코를 중심으로 하는 '스타일' 위주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디자이너는 기능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죠. 좋은 디자인은 미(美)적인 요소를 넘어 해당 제품 기능을 극대화하고, 사용자 기대를 충족하면서 (생산)비용 면에서도 적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건축과 산업디자인 넘나든 대가 마리오 벨리니
      조인원 기자
      노장은 자신만만했다. 마리오 벨리니(Bellini·83). 건축디자인과 산업디자인 양쪽에서 깊은 족적을 남긴 이탈리아 건축가다. 알라딘이 탈 법한 금빛 양탄자가 연상되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중동미술관, 바닷물결처럼 흘러내리는 은빛 지붕이 인상적인 이탈리아 밀라노컨벤션센터(MiCo)를 비롯해 유럽과 중동·아시아를 넘나들며 독특한 건물을 창조해 건축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뿐 아니다. 후지와 카메라, 올리베티와 타자기, 카시나와 메리탈리아 같은 이탈리아 명품 주방·가구 브랜드들이 만든 컵·주전자·소파·책상이 그의 손을 거쳤다.

      디자인할 때 제품 기능 점점 중시

      국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달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이질적일 수 있는 두 분야(건축과 산업디자인)를 넘나들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오랫동안 구축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벨리니는 "디자인에 대한 영감, 건축가로서 자질은 타고나는 거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디자인 철학을 풀어놓았다.

      "건축은 인간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건축물은 인류 문화뿐만 아니라 한 나라 정치 상황과 유행, 국민 개성을 반영합니다. 건축을 통시적으로 연구하면 인류 문화를 더 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로마 건축물을 제대로 알면 로마의 역사와 문화가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건축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기능을 넘어 문화와 한 사회의 자산을 지키고, 인간의 영감과 욕망을 반영합니다."

      마리오 벨리니 프로필
      그러면서도 건축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건물을 디자인하고 설계할 때 기능과 건축 목적, 건축주 요구 사항, 건축공학 기술과 소재 등 다양한 요소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 단지 랜드마크가 될 만한 특이한 건물을 짓는 데 그쳐선 안 된다는 얘기다.

      벨리니 건축 세계에 대해 논할 때는 루브르박물관 중동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건축가 루디 리치오티(Ricciotti)와 팀을 이뤄 설계한 건물디자인은 지난 2012년 완공돼 실체를 드러냈다. 벨리니는 황금빛 외관에 대해 "마치 바람에 물결 치는 거대한 베일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며 "박물관 건물들의 역사성을 고려해 (건물의 4개 꼭짓점 중) 한쪽 끝은 지면에 닿되 코트야드를 둘러싼 다른 건물의 정면부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나라일수록 시민 편의 중시

      ―루브르박물관 중동미술관 디자인을 어떻게 구상했나.

      "먼저 건축 부지를 답사했다. 루브르에는 코트야드(Courtyard·성이나 저택에서 사방이 건물에 둘러싸인 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코트야드가 그 유명한 '루브르 피라미드'고, 중동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비스콘티(the Visconti) 코트야드라고 불린다. 당시에는 텅 빈 공간에 불과했다. 현장을 살펴보고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우선 루브르 피라미드처럼 유리 소재로 지붕을 얹는 형태는 적절치 않아 보였다. 부지가 크지 않아 (주변 건물들 때문에) 그늘이 잘 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변 건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과거 프랑스 왕가 궁전이었던 만큼 비스콘티 코트야드를 둘러싼 건물들은 섬세한 정면부(facade)가 특징인 17세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최대한 보존하고 싶었다. 셋째로 주변 건물 디자인을 모방하지 않고 이슬람양식을 가미할 것. 이런 기준에 맞춰 탄생한 게 황금빛 구름처럼 구불구불한 지붕이 특징인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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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신축된 중동미술관 외관. 2012년 완공했다.
      ―그 밖에 어떤 요소를 고려했나.

      "출입구 위치 같은 실용적인 면 외에 실내 전시품 배치, 관람객 입장에서 미적 요소 등을 염두에 뒀다. 높은 유물이나 장식품이 배치될 가능성을 고려해 땅을 파서 지하층을 만들었다. 지붕부는 강망(expanded metal·금속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절삭 자국을 낸 후 늘여서 그물 모양으로 만든 소재)을 활용해 바깥에서 안으로 빛이 쏟아지고 내부에서는 지붕을 통해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외부는 금색, 내부는 은색 알루미늄 소재를 교차했는데, 삼각 구도로 이어 안정성을 더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은 유럽 국가들은 건축 관련 규제가 많다. 프랑스 역시 공공 건축물을 신축할 때 향후 보수·유지와 관련해 까다로운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단순히 디자인을 구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법규나 예산 제약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일이다. 훌륭한 건축가는 이 같은 다양한 문제와 한계를 얼마나 영리하게 해결하는지에 달렸다."

      ―동서양 국가를 넘나들며 작업했는데, 지역이나 문화권에 따라 차이점이 있나.

      "지역 영향보다는 한 나라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서 건축물 다양성이나 용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건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눈에 띈다는 뜻이다. 예컨대 덜 자유로운 나라일수록 정부가 정책 선전이나 과시용으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시민사회가 자유로운 나라일수록 실제로 건물을 사용하는 시민들 편의에 알맞게 지어진다. 건축물 형태는 결국 현지 문화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디자이너 개성 담은 제품 수요 증가세

      벨리니는 역사 깊은 건물이 즐비한 이탈리아를 본거지로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오래된 건물을 증축하는 작업도 많이 진행했다. 그는 "호주 멜버른에서 국립 빅토리아미술관을 보수·개축하기 위한 공모를 진행했을 때 몇 달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높은 건물 위에서 현장을 관찰했다"면서 "미술관 신축 건물과 주변 환경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궁리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독일 도이체방크 본사 건물을 개·보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존 건물은 따로 떨어진 두 개짜리 건물이었는데, 친환경성, 경제성, 미적인 측면 모두 높은 평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하층을 만들어 두 건물 간 연결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두 건물 사이에 자리한 입구에 스테인리스강으로 거대한 구(球)를 설치한 것도 연결성을 표현한 겁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과 비교하면 도시 재생과 건물 개축은 역사 깊은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와 용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봅니다. 건축물들은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하는 만큼 오래됐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부수고 없애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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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도이체방크 의뢰로 재단장한 프랑크푸르트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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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 브랜드 카시나와 협업해 탄생한 소파 ‘브루코(Bruco)’.
      벨리니는 컵·주전자에서 책상·의자, 카메라·타자기까지 갖가지 제품을 디자인한 현역 산업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은 시대마다 그 당시 상태를 디자인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면서도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에 위배되지 않는 디자인이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가전제품 회사 이름을 딴 '브라운 스타일'이 등장한 이후로 스타일이 개개인의 고유한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50년 뒤에는 올해가 '디자인 스타일'의 시대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물품만 봐도 '디자인 테이블' '디자인 램프'란 이름이 붙지 않습니까. 갈수록 디자이너 개성을 담은 제품들을 소비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