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영웅본色, 日 화장품업계 판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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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2.28 03:00

      사상 최대 실적 행진 '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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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바야시 가즈토시 고세 사장이 자사 화장품 브랜드 ‘데코르테’의 모델 케이트 모스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 게티이미지
      지난해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여주인공이 사용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관심을 끈 외국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어딕션'이란 제품이다. 그런데 이 제품은 곧잘 미국이나 유럽 고급 브랜드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일본 화장품 회사 고세(KOSE)가 만든 것이다. 고세는 어딕션을 내놓으면서 회사 이름을 감추고 브랜드만 부각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크리니크·바비브라운·라메르(에스티로더)나 랑콤·메이블린뉴욕(로레알)과 비슷한 접근이었다. 그게 대박을 쳤다.

      고세는 시세이도·가네보와 함께 일본 화장품 업계 '빅3' 중 하나. 매출액은 3위이지만 어딕션을 비롯, 고급 스킨 케어 브랜드 '데코르테'와 '설기정(雪肌精·SEKKISEI)'을 앞세워 한때 영업이익에서 시세이도를 제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이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매년 역대 최대를 갈아치우고 있다.

      44세에 '구원투수'로 등장

      고세는 2007년 창업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하면서 고전하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일본 내에서 드러그스토어(생활용품을 함께 파는 약국)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자금력·영업력으로 무장한 경쟁사 시세이도와 가네보가 매장 확보에 뛰어들었다. 이에 맞서 고세도 닥치는 대로 신상품을 출시하고 매출 외형을 끌어올리는 '매출 지상주의'가 지배했다. 그 결과는 대량 반품 사태. 그러자 창업자 4대손으로 44세 나이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고바야시 가즈토시(小林一俊) 사장이 관행을 타파하는 경영 혁신으로 고세 체질을 바꿔놓으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우선 영업 보고서에 매출액 대신 반품률을 앞세워 보이도록 형식을 고친 다음 반품률 개선에 실패한 영업 담당자에게 반품 제품이 소각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도록 지시했다. 동시에 신상품과 브랜드 수도 줄여나갔다. 그동안 업계에선 줄기차게 신상품을 내놓아 기존 상품을 진열대에서 빨리 끌어내려야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고바야시 사장은 '스테디셀러'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고세가 1~2위인 시세이도와 가네보에 지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신상품 출시에 욕심을 내면서 방만한 상품군으로 결국 고유 브랜드 특성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신제품 개발 과정을 엄격하게 통제, 브랜드 특징과 대상 소비자군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미백인지, 노화 방지인지, 메이크업인지, 스킨 케어인지를 각각 구분해 집중적으로 브랜드를 개발했다. 고바야시 사장 취임 10년이 지나자 신제품 매출 비중은 3분의 2까지 낮아졌고, 브랜드 수는 20% 축소됐다. 2만4000곳에 달했던 점포가 1만9000곳까지 줄었지만 불량 점포를 솎아낸 까닭에 전체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그 저변엔 직접 거래처와 점포를 순회하면서 인맥과 신뢰를 쌓은 고바야시 사장의 뚝심이 담겨 있다.

      시세이도·가네보 철수한 네일시장 안착

      "정말 매니큐어에 69가지 색이나 필요한 겁니까?" 지난 2014년 도쿄 니혼바시 고세 본사 11층 임원회의실. 고바야시 사장이 새 제품 기획안 보고를 하는 소비자브랜드사업부장과 기획 담당 사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당시 20대였던 이 사원은 "네일은 색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서 "기존 40개 정도 색으로는 부족하고 69개는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탄생한 네일 브랜드 '네일홀릭'은 이듬해 2월 발매 뒤 1년간 500만개, 지금까지 누적 1500만개 판매량을 돌파하면서 네일 시장에 안착했다. 시세이도와 가네보가 뛰어들었다가 빈손으로 철수한 시장이다.

      고세에는 향료와 디자인, 기획·홍보 부문에서 대표권자가 최종 결재하지 않으면 상품화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3대 결재'란 내부 준칙을 정해놓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앙 집중형 결정 구조로 자칫 획일화되기 쉬운 상황. 현재 3대 결재권자는 고바야시 사장으로 그는 이런 구조적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소통·경청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 대상은 20대 신입 사원에서 디자이너, 미용 종사자, 자유 기고가 등 다양하다.

      고세 실적
      신입 사원 채용 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원서를 꼼꼼하게 읽는 걸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런 노력을 "젊은 인재들이 뭘 생각하는지 아는 건 제품 기획을 위한 마케팅 조사"라고 말했다. 한 지원자가 "어머니가 사주신 설기정 화장품을 써봤더니 마음에 들어 계속 쓴다"고 지원서에 적자, 설기정 남성용 신제품 출시 계획을 보류한 적도 있다.

      네일홀릭이 성공하자 고바야시 사장은 "여성은 화장품을 '고르는' 즐거움을 중시한다"는 믿음으로 아이섀도 제품도 정비했다. 20여 가지 색이 일반적이던 상식을 깨고 99가지 색으로 범위를 늘린 '더 아이섀도'를 출시했다. 계절에 맞춰 주기적으로 섀도 색깔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유행을 주도했다. 지난해엔 파운데이션도 5가지 색에서 17가지로 늘렸다. '더 아이섀도'는 2016년 일본 화장품 업계 대상 제품으로 뽑혔고, 현재 고세 매출액의 10%를 넘는 주포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회사 인수하며 세계시장 공략

      이제 고바야시 사장의 시선은 일본을 떠나 세계로 향하고 있다. 2014년 135억엔을 들여 인수한 미 화장품 기업 타르트(Tarte)는 그 발판이다. 타르트는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망을 구축하고 자연주의를 표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 고바야시 사장은 직접 인맥과 중개 회사를 통해 인수 대상을 조사한 뒤 머린 켈리(Kelly) 타르트 창업자를 만난 다음 결단을 내렸다. 임원 다수가 "일본에서 안 통할 것 같다"면서 반대했으나 "우리와 다른 감성을 가져 더 좋을 수 있다"고 강하게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2014년 79억엔이던 타르트 매출은 2017년 412억엔, 영업이익은 15억엔에서 78억엔으로 늘어나면서 그의 경영자적 감각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