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산양면 현리에 햇볕 들던 날

    •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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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2.28 03:00

      [On the Policy]

      도시 청년들 게스트하우스·카페 차려 지방 소멸 대안 가능성 보여
      경제적·감성적 상생할 때 성공 가능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
      '빈티지(vintage)'란 말이 있다. 원래 그 말은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를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빈티지'란 용어는 일정한 기간을 경과해도 광채를 잃지 않는, 광채를 잃어도 어떤 계기로 돌연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는 매력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오래되어도 가치가 있는 것(oldies-but-goodies)', 혹은 '오래되어도 새로운 것(new-old-fashioned)'이다.

      지금 지방은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로 난리이다. 일본 경제학자 마스다 히로야의 저서에서 나온 '지방 소멸'은 가임 여성 인구가 고령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경우 인구 감소로 지역 공동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지난 6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 위험 지역'은 89곳으로 전체 대상의 39%를 차지한다. 읍·면·동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약 1400여 개에 해당한다. 모든 지자체는 지방 소멸을 막기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방 소멸 대안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볕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산양면 현리라는 마을이 경북 문경시에 있다. 이 마을은 신라 시대 근암현으로 시작해 고려 초 산양현이 된 천 년이 넘은 마을로서 비단 같은 금천(錦川) 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임진왜란 즈음 정착한 인천 채씨의 마을로 한때는 10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그 절반으로 축소됐다. 곳곳에 빈집도 보인다. 이곳에 도시 거주하던 20대 청년이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정착해 '화수헌(花樹軒)'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열었다. 꽃과 나무라는 뜻의 화수헌은 원래 이 마을 옛집의 이름으로, 자손의 번창과 집안의 번영을 바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부산에 살던 도시 청년들이 '리플레이스(Replace)'라는 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대 대표는 "리플레이스는 낡고 손상된 것을 대체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청년들이 도시의 생활과 삶에 지쳐 있다"며 "그래서 그 허물어진 청년들의 마음을 이곳에서 희망으로 대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과거 이 마을의 영광을 되찾듯 청년들이 다시, 이곳(Re, place)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젊은이들의 감각으로 공간을 꾸미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디지털로 소통하고 알린 결과 주말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지난달 처음으로 월급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대표는 이야기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산양면 현리는 원래 문향(文香)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근처에 서원이 있고 금천 변에는 산양 구곡이라고 옛 선인들의 자취와 광채가 있던 곳이다. 이 광채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가 청년들의 감각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광채를 잃었다 어떤 계기에 의해 다시 살아나, 오래되어도 가치가 있는 빈티지가 되는 것처럼 산양면 현리도 도시 청년의 감각과 열정, 에너지에 의해 다시 살아나려 하고 있다.

      사실 청년들의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진행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라는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경북만 해도 지난 10년간 매년 6500명 정도 청년의 순유출이 일어나, 경북 전체 23개 시·군 가운데 19곳(82%)이 위험 지역일 정도로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라는 정책은 청년의 순유입을 통해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 소멸의 진정한 해결은 도시 청년 시골 진입이라는 첫 단추를 넘어, 청년과 기존 주민의 '경제적, 감정적 상생', '청년들의 안착', '기존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두 번째 세 번째 단추까지 끼워야 한다. 그래서 아직 성공을 낙관하기엔 조심스럽다. 다만 헤아리기 어려운 천 년의 요원한 시간을 넘어 '산양면 현리'에 새로운 '화수'의 시대를 시작하는 단초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반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