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돈 많은 남자에게로 어서 떠나" 약값 조차 없는 시인은…

    •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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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2.28 03:00

      CEO 오페라 <11> 푸치니의 '라 보엠'

      푸치니 젊은 날의 회상
      19세기 파리에 많았던 젊은 매춘녀 '미미'
      병든 몸으로 시인과 헤어졌다 다시 만나 결국 그의 품에서…

      성공한 사람도 가끔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한다. 지금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이젠 얻을 수 없는 게 그 시절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때는 불도 없는 다락방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고 싸구려 선술집이었지만 우정이 있었다. 세상에 누울 자리 하나 없었지만, 열정은 누구보다 많았고 의욕은 넘쳤다. 정작 지금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게 그 시절에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절을 추억한다. 이게 '라 보엠(La Bohême)'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던 자코모 푸치니(Puccini·1858~1924)가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작곡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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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오페라 ‘라보엠’. 여주인공 미미 역 니콜 카(왼쪽)와 마르첼로 역 마리우스 크비에치엔이 열연하고 있다. /풍월당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푸치니는 젊은 시절 밀라노에서 가난한 음악도로 공부했다. 마스카니나 프랑케티 같은 동료 작곡가들과 함께 기거하며, 끼니를 거른 채 값싼 셋방을 찾아 옮겨 다녔다. '라 보엠'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그의 음악적 능력뿐만 아니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라 보엠'은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Murger·1822~1861)의 '보헤미안의 생활 풍경'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파리 대학생들이 많이 살던 라탱 지구를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낭만의 청춘 시절을 그렸다.

      젊은 예술가 4명이 다락방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 철학가 콜리네다. 이날은 크리스마스이브지만, 그들은 난로에 넣을 땔감조차 없다. 추운 방에서 외투를 껴입고 떨면서 작업을 한다. 쇼나르가 돈이 좀 생겨서, 넷은 밖에서 즐기기 위해 나간다. 로돌포만 혼자 남아서 신문에 낼 원고를 마저 쓰고 있는데, 같은 건물에 사는 미미라는 아가씨가 불을 빌리러 들어온다. 미미는 혼자서 자수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이미 결핵이 깊어진 병든 몸이다. 이렇게 가난하고 외로운 두 남녀는 연인으로 맺어진다. 그리고 마르첼로도 무제타라는 아가씨와 사랑을 이어간다.

      그런데 무제타는 돈 많은 남자를 후원자로 두고 살아가는 여자였다. 이런 경우는 19세기 파리에 많았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빈민은 늘어가고, 돈도 기술도 없는 많은 젊은 여성들은 살아갈 방도가 막막했다. 그런 그녀들이 남자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은 미미도 과거에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지만 건강이 나빠져 애인들은 떠나고 뒷방에서 수를 놓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렇게 재봉이나 의류산업의 보조로 종사하는 여성들을 '그리제트(grisette)'라 불렀는데, 이 단어는 파트타임으로 매춘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을 뜻하기도 했다. 그런 유혹을 마다하기 어려운 그녀들의 안타까운 상황은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상세하게 나온다. 쉽게 말하면 무제타는 현역 창부(娼婦), 미미는 은퇴한 창부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별의 수순이다. 미미와 로돌포는 가난 때문에 헤어진다. 미미는 하루하루 건강이 나빠지지만 가난한 로돌포는 약값조차 댈 수 없다. 그래서 로돌포는 미미가 자신의 차가운 방을 떠나서 돈 많은 애인에게로 갔으면 하고 바란다. 로돌포는 그녀에게 신경질을 내고 못살게 군다. 미미는 그의 진심을 알지만,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기로 한다. 대신 겨울을 나고 따뜻한 4월에 헤어지기로 한다. 겨울은 혼자 살기엔 너무 추웠다. "4월에는 누구도 혼자가 아니니까"라며 헤어지는데, 이별하면서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미미의 가사는 눈물을 자아낸다. 마르첼로와 무제타도 헤어진다. 돈 많은 남자에게 갔던 미미는 결국 마지막에는 로돌포의 다락방을 찾아와 그의 곁에서 죽는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의 추억들

      원작에 있는 뒷이야기를 해보자. 마르첼로는 나중에 살롱전에 입상하여 유명 화가가 된다. 로돌포는 뮈르제처럼 시인으로, 쇼나르는 푸치니처럼 음악가로 성공한다. 콜리네는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여 저녁마다 고급 와인을 고르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종종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문득 옛날이 생각난 로돌포가 어느 날 친구들에게 그때 카페에 가서 추억을 되살리며 식사를 해보자고 제의한다. 하지만 마르첼로가 거절한다. "미안하네. 이제 난 속물이 되어서 그런 식당에서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는 건 더 이상 못 하겠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