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백악관에 '불' 지르고, 반대파 아우르고… 두번째 의사봉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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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2.28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11) 낸시 펠로시의 정치거래술

      이철민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 보이던 미 워싱턴 정가에 정치적 대척점(對蹠點)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달 6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이끌어 연방 하원 탈환에 성공하고, 내년 1월 3일 개원하는 제116대 의회에서 하원의장직을 노리는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78)다. 그는 이미 2007~2011년 4년간 하원의장을 지낸 바 있다. 의석수 235명으로 이제 하원(전체 435명) 다수당이 되는 민주당 리더로서 펠로시가 갖는 파워는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미·멕시코 장벽 설치 비용 57억달러의 예산 편성을 놓고 트럼프와 공개 설전(舌戰)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서로 말을 끊어가며 다투던 중에, 트럼프는 "낸시는 당장 뭐라 말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펠로시가 하원의장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218명) 지지를 아직 얻지 못한 걸 슬쩍 비꼰 것이었지만, 펠로시는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하원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민주당 원내대표로 오늘 미팅에 온 내 힘을 규정하지 마시오!" 미 언론은 이날 대결을 '펠로시 1승'으로 묘사했고, 소셜미디어에선 흥분한 트럼프와 불이 난 백악관을 뒤로 한 채 펠로시가 선글라스를 끼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합성 사진이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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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백악관 회동을 마치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대표와 걸어나오며 선글라스를 쓰는 펠로시. 열받은 트럼프 대통령과 불이 난 백악관을 합성한 사진이 인터넷서 화제가 됐다. /트위터
      반대파와 거래하며 16년간 장기집권

      펠로시는 46세이던 198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보궐선거로 처음 연방 하원에 들어섰다. 여성 의원이 26명에 불과하고, 의회 내에서 성적 농담과 희롱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2001년 펠로시가 원내 부대표(whip) 선거에 출마하자, 남성 의원들은 그의 남편이 벤처금융가이자 부동산 거부인 것을 빗대 "파티 걸"이라고 조롱하고 "누가 출마해도 된다고 했느냐" "지역구 민원이나 적어주면 우리가 해결해 주겠다"고 야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선거에서 이겼고, 다음 해에는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leader)가 됐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2007년 1월 여성 최초의 연방 하원의장이 됐다. 펠로시는 지난달 말 뉴욕타임스 선데이매거진 인터뷰에서 "그때까지 아무도 나를 하원의장실 회의에 불러준 적이 없어, 당선된 후 처음 의장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권력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빼앗아오는 것"이란 평생의 정치 신념은 이렇게 굳어졌다.

      미 의회에서 원내대표는 소속당 의원들의 위원회 배정이나 요직 임명, 선거자금 지원 등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펠로시는 표 단속을 하거나 자신의 당내 입지 강화를 위해 당내 반대파와도 이런 정치적 거래(politicking)를 되풀이했다. 그래서 2010년 3월엔 민주당 의원들 간에도 온갖 의견이 맞섰던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 법안인 '오바마케어'를 회유와 압력 끝에 3표차로 통과시켰고, 16년의 당내 장기집권도 이뤘다. 그 과정에서 도전자는 철저히 짓눌렀다. 그의 전(前) 보좌관은 뉴욕타임스에 "그에게 '99% 충성'은 '배신'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동성애자 권리 신장 등 펠로시 의장이 내건 '샌프란시스코적 가치'는 당내 보수파로부터도 '리무진 진보주의(limousine liberalism)'라는 반발을 샀다. 이는 스스로는 호화생활을 하면서 정작 자신이 대변한다는 저소득층의 실제 불만·관심과는 동떨어진 이슈를 추구하거나, 언행이 불일치한 상류층 좌파를 비꼬는 용어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이런 반(反)펠로시 정서를 집중 공략해, 6500만달러를 펠로시 인신 공격에만 썼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긴 공화당 내부에선 "우리 지도부도 펠로시처럼 '깡'이 있었으면…"하는 말이 돌았다.

      계파 분열 심한 와중에 하원의장 재도전

      30년이 넘는 17선(選) 정치 관록의 펠로시에게도 이번 하원의장직 도전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를 포함해 20년 가까이 하원 민주당 요직을 독차지한 78~79세의 당 지도부에 대한 반발이 컸다. 게다가 2018년 민주당 하원의원 당선자들의 이념적 성향과 연령층은 더욱 다양해졌다〈표 참조〉. 20대말~30대 초반의 밀레니엄 세대가 대거 당선됐고, 당내 최대 계파(caucus)로 극좌·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의회진보파'는 78명에서 95명으로 세를 불렸다. 복지·노동·성소수자 인권의 대폭적인 확대를 요구하는 이들은 때로는 트럼프, 민주당 기득권과 타협해 온 펠로시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아예 16명의 진보파 의원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 지도부 교체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지지 선거구에서 승리해 이른바 '레드-투-블루(red-to-blue·공화당의 파란색에서 민주당 빨간색으로 전환)'를 이룬 41명의 당선자들은 이념적으로 정반대다. 이들은 유세 때 실용·중도 정책을 내걸었고, 일부는 '네버 펠로시(Never Pelosi·펠로시의 의장직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내 좌파는 "우리를 주요 결정권을 쥔 위원회 요직에 앉히라"고 요구했다. 반대로 '블루 도그'나 '문제해결자' 같은 중도 계파는 당이 계속 좌파에 휘둘리면 2020년 대선과 의회 총선에서 또 패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달 전 '반대' 66명, '지지'로 돌아서

      역설적으로, 이런 분열은 펠로시의 '폴리티킹'이 다시 빛을 발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계파 간 불신이 심한 상황에서 모두가 '이기는' 방법은 내가 다시 의장이 되는 것"이라고 설득하며, 반대파 의원들에게 일일이 세입·세출과 같은 주요 위원회 배정이나 요직 임명, 총기거래 강화와 같은 특정 의제의 법제화를 약속했다.

      그 결과, 펠로시는 지난달 28일 당의 하원의장 후보 지명전에 단독 출마해 203표를 얻었다. 투표 한달 전까지 '반대'했던 66명이 '지지'로 돌아섰다. 그러나 여전히 32명이 반대해, 하원 과반수(218표)에는 못 미치는 상황. 공화당에선 한 표도 기대할 수 없어, 하원의장이 되려면 '반란 표'를 17표 이하로 막아야 한다. 지난 12일 펠로시는 또 다른 타협안을 냈다. 자신을 포함해 현 지도부의 임기를 2022년으로 못 박은 것이다. 그러자 바로 7명이 추가로 지지를 선언했다. 사실 2022년 이후는 펠로시에게 별 의미가 없다. 2020년 대선·의회 선거에선 민주당이 이겨도, 그다음 중간선거(2022년)에선 통계·확률적으로 공화당이 다시 이길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2022년 이후 소수당이 되는 민주당 리더의 영향력은 크지 못하고, 그의 나이는 82세가 된다.

      펠로시가 2007년 1월4일 미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에 취임하면서 썼던 의사봉(오른쪽 위)과 입었던 정장. 그는 지난 3월 이를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기증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내년 투표 때 과반수 확보 전망 많아

      야금야금 반대파를 포섭해가는 그에게 지난 11일의 '백악관 대결'은 최대 홍보 효과가 됐다. 지난 5월 갤럽조사에서 지지도 29%로 바닥이었던 펠로시의 이미지는 이 한 건으로 갑자기 '아기 트럼프'를 달래고 야단치는 '까칠한 할머니'로 바뀌면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미 언론은 펠로시가 내년 개원 투표 때까지는 무난히 과반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측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의 모든 계파가 트럼프 같은 사람과 맞서면서 펠로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NBA(미 프로농구) 최종전에서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의 포워드)를 벤치에 앉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