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에 또 막혔다… 브렉시트 '빗속의 여인'

입력 2018.12.14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10) 불신임 투표 받은 테리사 메이 英총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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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지난 10일 영국 하원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deal) 표결을 하루 앞두고 연기한 데 이어, 보수당 내 반대파는 12일 저녁(현지 시각) 그의 당대표직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전격 실시했다. 이에 따라, 그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정국(政局)과 브렉시트의 방향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이 딜(deal)은 영국이 내년 3월 29일 EU(유럽연합)를 탈퇴하고 나서 2020년 말까지 이행(transition) 기간에 양측이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등에서 취할 법적 관계를 담은 585쪽짜리 구속력 있는 합의와, 2021년 이후 협상 방향을 담은 26쪽짜리 '정치적 선언'이었다. 메이는 지난달 중순 이 딜을 발표한 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딜의 하원 통과를 위해 지지표를 긁어모았다. 그러나 결국 지난 10일 오후 "상당한 표차의 패배"를 예상하고, 하원 투표를 연기했다.

그러나 당내 반대 세력은 메이의 협상 방식과 최종 딜에 계속 비난을 쏟아냈고, 결국 당대표 불신임투표를 실시하는 데 필요한 최소 의원 수(48명)를 확보해 투표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동당·스코틀랜드국민당(SNP) 등 야당은 아예 내각 불신임안을 내고, 총선거까지 끌어내겠다는 기세다. 그 사이에 영국 파운드화(貨) 가치는 최근 18개월 중 최저로 떨어져 작년 4월 1.43달러 하던 것이 지난 12일 현재 1.25달러까지 내려갔다.

[이철민의 Global Prism]
메이 합의안에 英 여야 모두 반대

왜 여야 모두의 반대가 거센 것일까. 영국인들이 'EU 탈퇴(찬성 51.9%)'를 결정한 2016년 6월 23일의 국민투표로 잠시 돌아가자. 많은 영국인은 노동(사람)·상품·자본·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EU 단일시장' 탓에, EU에 속한 동유럽 출신 저임금 노동자들이 몰려들자 불만이 컸다. 또 EU 시장의 규정과 EU 재판소의 판결을 수용해야 하는 제약에도 염증을 냈다. 그러나 EU 단일시장에 속하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을 선호하는 측도 많아, 의원들도 EU 잔류파와 탈퇴파(Brexiters)로 갈렸다.

[이철민의 Global Prism]
메이는 애초 '잔류'파였다. 그러나 2016년 7월 총리가 되자, 그는 유럽사법재판소와 단일시장, 관세동맹 등을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하면서 반드시 끊어야 할 '금지선(red lines)'으로 설정했다. 당시 그의 이런 강성(强性) 발언은 강경 브렉시터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2년에 가까운 협상 끝에 지난달 14일 메이가 발표한 딜은 이 발언 취지와는 너무 달랐다. 이행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는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며, 북아일랜드는 EU 단일시장의 규정을 대부분 따른다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EU에 속한 아일랜드공화국 간의 국경선 때문이었다〈소박스 참고〉. 북아일랜드가 속한 아일랜드 섬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을 이뤄, 마치 서울·경기도처럼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데 전혀 막힘이 없다. 그런데 브렉시트 이후 시장이 달라진다고, 이 국경선에 검문소와 세관을 설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EU 시장과 관세동맹에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2020년까지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과 시장에 남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EU 측의 고집으로, 딜에는 2021년 이후에도 '기술적 해법'이 없는 한,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일방적으로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뺄 수 없다는 '백스톱(back stop)' 조항까지 들어갔다. '백스톱'이란 크리켓 등에서 공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타자 뒤쪽에 설치한 그물망으로, '마지막 보장'이란 뜻이다.

브렉시트 강경파는 이 조항을 놓고, "도대체 언제나 EU 시장과 사법권, 관세동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냐"며 메이 총리를 주권을 팔아먹은 '반역자 테리사(Theresa The Traitor)'라고 부른다. 심지어 EU 잔류파 의원들도 "회원국 자격도, 발언권도 없이 무한정 EU 규정을 따르라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이철민의 Global Prism]
EU 정상들, "합의 수정 불가능" 강경

사실 북아일랜드 이슈는 지난 2년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브렉시트 협상의 최대 '난제(難題)'다. 그래서 메이 총리도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하느니, 점진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딜을 마련한 것이었다. 메이는 그동안 "이 딜 외에 대안은 없다"며 "노딜 브렉시트는 경제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영란은행도 지난달 28일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당장 내년에 국내총생산(GDP)과 주택 가격이 각각 8%, 30% 떨어져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나쁜 경기 침체를 맞게 된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메이 딜을 수용하고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5년 뒤에는 'EU 잔류'보다는 낮아도 영란은행의 최근 예측보다는 1.5% 높은 성장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측에도 2021년 이후 북아일랜드가 계속 EU 관세동맹·시장에 묶일 수 있다는 '백스톱'에 대한 의원들 반감이 매우 컸다. 메이 총리가 지난 11일부터 암스테르담과 베를린, 브뤼셀, 더블린 등을 돌며 EU 정상들과 잇달아 만나는 것도 이 '백스톱'을 완화해 자신의 딜을 다시 하원 표결에 부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메이를 만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도날트 투스크 유럽이사회 의장 등은 "우리가 이룬 게 유일하게 가능한 최선의 딜"이라며 "백스톱을 좀 더 명확히 할 수는 있어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구를 수정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소통 부재 리더십으로 사태 악화

메이 총리는 매사에 신중하고 '비밀'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이런 '포커페이스'는 협상 전략으론 유용하지만, 당내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됐다. 성공회 목사 딸인 메이는 비(非)사교적인 아웃사이더로, 밤늦게 술잔을 기울이는 동료 남자 의원들과는 달리 남편과의 저녁 식사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소통 부재 탓에, 그의 총리 재임 중에 2명의 브렉시트 협상 담당 장관을 비롯해 20여 명의 장·차관직 의원이 내각에서 사임했다.

메이는 지난 12일 "이 딜은 영국에 옳은 딜이고, '백스톱'에 대해 의원들이 안심할 수 있고 초당파적으로 이 딜이 하원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데만 전념한다"고 말했다. 메이는 '백스톱'에 대해 일부 조항을 첨부하는 선에서 EU와 합의하고 기존 딜을 내년 1월 21일 이전까지 하원에 상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제 메이의 당대표직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고, 영국 의회에선 메이의 계획과 관계 없이 ▲EU 회원국이 아니면서 EU와 '단일시장' 계약을 맺은 노르웨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캐나다 방식을 추구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또 아예 이참에 브렉시트 탈퇴를 철회하고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불신임을 받은 당대표는 결국 총리직까지 내려놓게 된다. 후임 당대표(총리 겸임)를 선출하기까지는 6주가량 걸린다. 최종 딜에 대한 불만이 당대표 불신임으로 이어진 만큼, 새 총리와 내각은 EU와 추가 협상을 하기 위해 내년 3월 29일의 브렉시트 발동 시점을 연장해 달라고 EU에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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