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셰프! 주방은 제게 맡기세요

입력 2018.12.14 03:00

[Cover Story]
점점 똑똑해지는 생활 로봇… 미쉐린 ★★ 요리도 3분 만에 뚝딱
식당·배송·경찰·의료·해양·군사… 인간은 필요 없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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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에서 로봇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왼쪽은 미국 리싱크로보틱스가 개발한 협동 로봇 ‘백스터(Baxter)’가 햄버거 패티를 굽는 모습. 가운데 오른쪽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피자 배달 회사 ‘줌(Zume)’에서 로봇이 피자 반죽을 만들어 소스를 바른 다음 오븐에서 굽는 모습. /뉴스이그재미너·게티코리아, 그래픽=김현국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폴섬스트리트 680번지에 있는 식당 크리에이터(Creator)에선 로봇이 햄버거를 만든다. 이른바 '버거봇(Burgerbot)'. 사실 흔히 떠올리는 인간처럼 생긴 로봇이라기보단 거대한 자동화 기계에 가깝다. 커다란 투명 유리 상자 안에 컨베이어벨트가 이어져 있고, 내부 원통형 파이프에서 각각 버거용 빵과 채소(토마토·양파)와 고기 패티, 각종 소스가 차례로 떨어지면서 결합해 버거 하나를 만드는 구조다. 사람은 파이프에 재료를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버거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가격은 6달러(약 6700원)다. 알렉스 바르다코스타스 크리에이터 CEO는 "신선한 재료만 쓰는데 이런 재료를 넣어 만든 버거는 보통 12~18달러"라면서 "로봇이 버거를 만들기 때문에 인건비와 요리 공간을 절약해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봇이 만든 버거를 먹을 수 있고, 맛도 수준급이란 화제성 덕분에 이 식당은 지난 9월 개업 이후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오전 11시인데 기다리는 줄이 20명을 넘었을 정도다.

크리에이터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자리 잡은 카페X는 로봇이 커피를 내온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키오스크를 클릭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커피를 주문하면 로봇 팔이 움직이면서 주문을 처리한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등 13가지 커피를 로봇 팔이 갖다준다. 아메리카노가 2.25달러. 주문을 완료하면 로봇 팔은 고객에게 손까지 흔들어준다.

지난 3월 보스턴에 개장한 스파이스 식당에선 로봇이 주문한 지 3분 만에 미쉐린 2스타 셰프가 고안한 요리를 만들어낸다. 미국 미쉐린 가이드는 "미쉐린과 어울리지 않게 빠르고 캐주얼하지만 맛은 미쉐린 레스토랑과 다를 바 없다"면서 "스파이스가 우리의 미래일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로봇 셰프가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다코야키, 크레페 등 길거리 음식을 만드는 로봇이 출시됐고, 중국 알리바바와 징둥닷컴도 올해 로봇 음식점을 열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비스 로봇 시장 급성장

서비스 로봇과 제조 로봇의 시장 비중 변화

로봇의 요식업 침투는 단순 산업 현장 자동화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요리는 기술을 넘어 감성과 겹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지적한 대로 요식업은 꽤 오랫동안 기술 혁신에서 밀려난 노동력의 마지막 보루였다. 사회·경제학자들이 '요리하는 로봇' 등장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이 일상 전선을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가들은 발 빠르게 행동에 들어갔다. 크리에이터는 식당을 열기에 앞서 지난해에만 구글 벤처스, 코슬라 벤처스 등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 투자사들로부터 1800만달러를 받았다. 버거 가게 하나 개업하면서 200억원을 유치한 셈이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 만든 '틸 펠로십'은 다른 투자사 2~3곳과 함께 지난해 카페X에 500만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트랙티카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산업 규모는 2022년 2350억달러(약 264조원)로, 2016년(310억달러)보다 8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제조 산업이 이끌어온 로봇의 성장을 서비스 분야가 견인할 것이란 분석이다.

로봇 기술 개발 속도는 공학계 예상을 넘어서는 분위기다. 2~3년 전만 해도 로봇이 사람 운동 능력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는 시각이 대세였지만 지난해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공중제비를 하는 인간형 로봇을 선보이면서 이런 평가가 쑥 들어갔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족 보행 로봇은 이미 군사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제조비 싸지며 가정마다 생활로봇 보유

그렇다면 로봇 산업은 어디까지 와 있고 일자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스탠퍼드대 로봇연구소 소장 오사마 카티브 교수는 "로봇의 기계적 몸체는 손가락의 구현 등으로 움직임이 한층 정교해졌고, 두뇌에는 AI 소프트웨어가 장착됐다"며 "이제 로봇은 산업 현장을 벗어나 인간의 일상생활에 들어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AI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 탄생 주역인 데릭 프리드모어 오사로 최고경영자(CEO)는 "15년 뒤면 길거리에 자동차만큼 로봇이 많아진다"며 "로봇 제조 비용이 낮아지면서 가정마다 생활 로봇을 보유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다.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 소프트웨어 분야 글로벌 기업 오토메이션 애니웨어(Automation Anywhere) 미히르 슈클라 글로벌 CEO는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로봇은 더 많은 일자리와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형상, 금속 팔,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 속에 파고든 생활 로봇의 발전과 노동시장 영향을 WEEKLY BIZ가 심층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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