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은 기술 표준 전쟁이다

    • 곽주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18.12.14 03:00

[On the Economy]

곽주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
곽주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이달 초 향후 90일간 미국이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은 일단 휴전(休戰)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종전(終戰)은 아니다. 사실 미국이 노리는 건 관세가 아니다. 지식재산권 문제, 비관세(기술무역) 장벽을 쌓으려는 것이다. 하이테크 역량을 끌어올려 과학기술 선도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좌초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중국은 그동안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시장과 기술을 바꾼다)' 전략 아래 경제 개발 초기 외국 기업에 중국 시장을 개방하면서 기술 이전이나 라이선스를 받는 식으로 학습을 시작했다. 그 후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내부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도입한 외산 기술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국산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원천기술 소유권자와 갈등을 피할 수 없는 표절·모방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평가되는 화웨이조차 2000년대 초 미국 시스코 기술을 베낀 혐의로 제소당한 적이 있을 정도다. 결국 미국은 이젠 중국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문제를 걸고넘어지면서, 지식재산권 로열티를 내지 않은 채 가격 우위를 누리는 중국 제품에 제값을 지불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룡조직 '시장감독관리 총국' 신설

시 주석은 2016년 '제13차 사회경제발전규획'을 발표하면서 국가 경제 체제 전반에 걸친 문제점들을 구조적으로 개혁해 2020년까지 중진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관건은 경제 시스템을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중국 표준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다. 2017년 표준화법을 개정, 불필요한 표준은 과감히 폐지했다. 2018년엔 표준화와 관련이 있던 조직들을 통합, '시장감독관리총국'을 설립했다. 그동안 흩어져 각각 다른 조직이 수행하던 표준화, 검역, 인증과 공정거래까지 광범위한 업무를 한 곳에서 다루는 '공룡' 조직을 만든 것이다. 표준화와 관련한 강력한 의사결정과 집행이 가능해졌다.

시 주석은 그리고 지난 2년간 낡은 표준을 정비하고, 산업화 논리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환경 관련 표준·규제를 강화했다. 동시에 앞으로 미래를 이끌 '신흥 산업'과 중국의 미래에 중요한 '전략적 산업'을 구분하고, 이를 정리하는 새로운 표준을 발굴하고 있다. 신흥 산업으로는 첨단 반도체, 로봇, 3D프린팅, 스마트 시스템, 차세대 항공장비, AI 등이 꼽힌다. 전략적 산업에는 신형 전투기, 양자통신, 사물인터넷, 재생의료 기술 등이 포함된다.

아직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원천 기술이나 표준이 확립되지 않은 분야라 중국은 이 분야에서 하루빨리 자국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어 견고한 기술 장벽을 구축하고 자국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려고 하고 있다. 지식재산권 문제가 첨예해질수록 이 분야 혁신에 더 집중하려는 상황이다.

그런데 미·중 무역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런 정책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표준을 정비해 지역 균형발전과 소득격차를 줄이겠다는 중국 정부 계획은 흔들리고, 수출시장이 어려워지자 지방 제조 공장들이 줄도산하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 위험에 처한 민영기업 지분을 사들이면서 '국진민퇴(国進民退·국가가 나서고 민간은 후퇴한다)'가 두드러지고 장기적으론 기업 활력을 위축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 수출이 많은 한국으로선 이런 혼란이 반갑지 않다. 표준은 대표적인 비관세 기술무역장벽이라 중국 국내 정치 경제·대외 경제 정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이 기술무역장벽을 어떻게 마련할지 오리무중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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