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가치에만 집착하는 GDP를 넘어

    •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입력 2018.12.14 03:00

[WEEKLY BIZ Column]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경제적 분석과 평가는 정책과 방향을 결정한다. 필자와 인도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장-폴 피투시 프랑스 파리정치대 경제학 교수 등이 주도하고 프랑스 정부 등 후원을 받는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평가위원회(CMESP)'가 대략 10년 전 발간한 연구보고서 제목은 이렇다. '잘못 측정된 우리의 삶: 왜 국내총생산(GDP)은 단순 합산할 수 없는가.' "GDP는 행복, 즉 삶의 수준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명제는 우리 연구 결과를 함축한다. GDP는 생산된 재화의 총합일 뿐 건강, 교육, 환경 등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GDP라는 계량도구를 일률적으로 들이대면 모든 요소를 물질적인 가치로만 환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소의 가치가 왜곡된다는 뜻이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후 전 세계 학계와 정부, 시민사회가 더 넓은 범위에서 삶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 도구를 고안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주 기쁜 일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생활환경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평가하는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를 추가로 도입했다.

후속 조치로 '경제성과와 사회발전 측정에 관한 고위 전문가그룹'이란 위원회를 새로 꾸렸다. 이 고위전문가그룹은 지난달 말 한국 인천에서 열린 '제6회 통계·지식·정책에 관한 OECD 세계포럼'에서 'GDP를 넘어서: 경제·사회성과에 기여하는 요인 측정하기'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등 여러나라 선거 결과서 나타나

이번 보고서 연구 주제에 신뢰, 사회불안, 불평등과 지속가능성 등 이전보다 더 광범위한 요소들이 추가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특히 불충분한 지표에 근거한 탓에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정책 공백이 빚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사회·경제적 불안정이 많은 시민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절한 계량 평가 수단을 활용하지 않으면 정책입안자들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생산성만이 아니라 삶의 질에 여전히 미치는 악영향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각국 정부는 근시안적으로 재정 적자를 줄이는 데 몰입해 긴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다. GDP 증가와 재정건전성에만 집중한 정책은 사회 불안에도 불을 붙일 것이다.

연금제도 개혁은 개인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제하고, 유연성 확보라는 이름으로 단행되는 노동시장 개혁은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약화함으로써 더 많은 근로자를 저임금과 고용 불안으로 내몰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된 경제 측정 수단이 있다면 최소한 각종 정책의 비용 대비 효과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고, 정책입안자들이 사회 안정, 평등, 제도 개혁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여러 지역사회와 지방정부가 '웰빙 경제 연합'이란 조직을 구성했다. 삶의 질 개선을 중점 과제로 두고, 그에 맞춰 예산을 편성·재분배하기 위해서다. 더 많은 재원을 빈곤층 자녀 지원에 할당할 예정인 뉴질랜드 정부가 대표적이다.

더 좋은 계량 도구는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악순환을 거듭하는 사회·경제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확인하고 알맞은 대응책을 선택하도록 돕는 중요한 진단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경제성장에 집중하기보다 기대수명이 계속 낮아지는 인구, 특히 산업화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을 위한 보건·의료 정책에 관심을 가졌던 몇 년 전 미국 정부처럼 말이다. 이 같은 문제를 없애려면 제일 먼저 '불평등의 덫'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그다음으로 어떤 요소가 불평등을 조장하고 고착화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이 먼저' 정책 추진 어려움 많아

불과 이십여년 전만 해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라는 방침을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아무리 민주사회라도 이 같은 기조를 지속하기 쉽지 않다. 기업과 각종 이익집단들이 어느 때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기 때문이다.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감세로 발생한 세수 감소를 벌충하기 위한 세금 인상과 건강보험 상실은 고스란히 일반 서민들과 중산층 몫으로 남는다.

'사람'을 우선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가에 무게를 두고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GDP라는 단순한 평가도구를 넘어서는 제대로 된 평가 수단을 찾아내는 일은 '인간 삶의 질 개선'이란 중차대한 최종 목표를 위한 핵심 단계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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