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장기 불황, 한국에도 닥칠까? 자산·부동산·기업, 입체 분석해보니…

    • 홍춘욱 키움증권 상무

입력 2018.12.14 03:00

[Book Review]

Book Review
한국 경제성장 탄력이 둔화되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형 장기 불황을 겪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왜 낮냐"고 묻는다면 '밸런스시트 불황으로 본 세계 경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저자 리처드 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어떻게 해서 장기 불황을 겪게 되었는지 집중한다. 그는 1990년을 전후해 발생한 '자산 가격 폭락' 사태가 장기 불황 뇌관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때 자산 가격 폭락으로 사라진 돈만 해도 1500조엔에 달한다는 게 그의 추산이다. 당시 일본 GDP(국내총생산) 450조엔의 3배 이상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자산 가격 버블을 주도한 세력이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기업들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심지어 대출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손실을 입으면서 경제 전체에는 겹겹이 영향을 미쳤다. 즉, 기업들은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 부채를 갚기 위해 노력하고, 은행권은 추가 부실 발생 가능성을 우려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이중의 충격이 경제를 강타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그 뒤로도 왜 회복하지 못했을까? 일본 중앙은행이 1992년부터 금리를 적극 인하, 2000년에는 제로 금리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전국 토지 가격이 26년 연속 하락했다.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日, 자산 가격 폭락으로 장기 불황

'부동산의 보이지 않는 진실'은 이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 저자는 일본 부동산 시장 장기 불황 원인을 '주택 공급' 과잉에서 찾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강력한 불황에 대응해 일본 정부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펼쳤는데, 문제는 재정지출 상당 부분을 주택 공급에 집중했다고 한다. 주택 착공 기준으로 보면, 1992년 한 해에만 140만 가구 새집이 공급되었고, 1996년엔 160만 가구 집이 지어졌다.

물론 강력한 재정지출 덕분에 기업 투자 축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대신 주택 시장 그늘은 더욱 깊어졌던 셈이다. 참고로 일본 신규 주택 공급은 2009년이 돼서야 100만 가구를 밑돌았으니, 그사이 주택시장 수급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도쿄 시내 빌딩 상업지구 전경. 일본은 1990년대 극심한 자산가격 폭락으로 ‘잃어버린 20년’이란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를 겪었다.
일본 도쿄 시내 빌딩 상업지구 전경. 일본은 1990년대 극심한 자산가격 폭락으로 ‘잃어버린 20년’이란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를 겪었다. / 블룸버그
이런 해석에 반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LG경제연구원 연구자들이 펴낸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는 정반대 시각을 제시한다. 2012년 말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로, 강력한 엔저가 출현했음에도 기업들 경쟁력은 그렇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즉, 일본 장기 불황은 자산 가격 폭락보다는 기업들 경쟁력 약화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은 꽤 설득력이 있다. 당장 시계를 10년 혹은 20년 전으로 돌려보면, 후지쓰나 산요 등 일본 전자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더 나아가 일본 소비자들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업용 전화비는 미국의 2~3배 수준이다. 즉 한국 등 경쟁자들이 적극적 투자를 통해 정보통신산업에서 앞서 나가는 동안, 일본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 안주하거나 혹은 1990년 '재테크 실패' 충격으로 투자 여력을 잃어버렸던 셈이다.

韓, 자산 거품 수준 日 못 미쳐

일단 한국은 1990년 일본에 비해 자산 시장 거품 규모, 혹은 재테크 열풍이 강하지 않다. 더 나아가 일본은 주택 가격이 폭락하는 와중에 집을 과도하게 공급하면서 부동산 시장 불황을 자초한 반면, 한국 수도권 지역에선 주택 공급 부족이 심각해 부동산 거품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다. 또 일본 기업들은 재테크 열풍 후유증을 겪으면서 투자를 소홀히 했던 반면, 한국 기업 상당수는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식 장기 불황과는 둘러싼 환경이 다르다. 물론 부정적인 징후가 없다곤 볼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충분히 대비가 가능한 수준이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Book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