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요리박사가 말하는 외식업 성공 3대 법칙

입력 2018.11.30 03:00

[Cover Story] '요리업계의 하버드大' 美CIA 팀 라이언 총장

법칙 1. 손님보다 직원이 먼저다

국내에서 햄버거 브랜드 쉐이크쉑(Shake Shack)으로 유명한 유니언 스퀘어 호스피탈리티 그룹(Union Square Hospitality Group·USHG) 창업자 대니 마이어(Meyer)는 27세였던 2001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서 쉐이크쉑의 모태가 된 핫도그 카트를 시작했다. 이 조그마한 카트는 2018년 11월 기준 시가총액 18억9000만달러(약 2조1300억원)에 달하는 햄버거 체인으로 거듭났다. 어느덧 직원 수는 5000명으로 불어났다. 햄버거는 물론 미국식 파인다이닝(고급 식당) 그래머시 터번과 고급 스카이라운지 맨하타까지 운영하는 거대 외식 기업으로 성장했다. 조그마한 노점상이 거대 외식 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직원 귀가시간 맞춰 영업시간 결정

마이어 회장은 2015년 USHG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정직원에겐 주식을 나눠주고, 비정규직 직원에겐 특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혜택을 줬다. 투자자들의 반발을 무릅쓴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평소 '손님보다 직원을 먼저 배려하면 직원들도 손님을 배려한다'던 경영 철학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손님과 투자자를 가장 중요시하던 기존 사업 방식과 달리 마이어 회장은 직원을 최우선한다. 직원에서 손님으로 이어진 환대는 곧 지역사회 분위기를 건실하게 만들고,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소비가 이어지면 재료 공급자가 이익을 본다. 이런 선순환 고리가 구축되면 궁극적으로 이 이윤이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외식업은 미국에서도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가장 빈번히 적발되는 업종이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까다로운 업종인 만큼 이직률이 높아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쉐이크쉑의 이직률은 외식업계 최저 수준이다. 매장마다 대중교통 서비스 시간을 고려해 직원들이 모두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영업시간을 정할 만큼 세심한 직원 복지 덕분이다. 나가는 직원이 적으니 새 인력 채용이나 신규 직원 교육에 따로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아낀 비용은 직원 최저임금을 높이는 데 쓰인다. 쉐이크쉑이 종업원 최저임금으로 제시한 시간당 15달러는 뉴욕주 최저임금 기준 13달러 50센트보다 높다.

전미식당협회(NRA) 이사진이기도 한 라이언 총장은 "직원은 식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인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본다"면서 "손님 역시 주인보다 직원의 태도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당에서 일할 때는 직원이지만, 친구나 가족에게 음식점을 소개할 때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한 소비자가 된다는 점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가능성 있는 직원은 사내 벤처로

실험 정신이 강한 일부 요리사는 일반 기업에서 사내 벤처를 키우듯 가능성 있는 직원이 따로 매장을 내고 본인 음식을 직접 팔아볼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이비드 장(한국명 장석호)이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던 식품 안전 담당 컨설턴트가 파이와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독특하고 맛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아차렸다. 그러나 국수나 술 안주류를 주로 팔던 탓에 직원이 개발한 디저트를 식당에서 팔기는 어려웠다. 그러자 장씨는 세탁소로 쓰이던 바로 옆 가게를 사들여 독립된 빵집을 열고 그 자리에 해당 직원을 대표로 앉혔다. 이 빵집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6개 대형 매장을 갖춘 주문형 웨딩 케이크 브랜드로 성장했다. 직원을 키워 함께 상생하는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한식으로 구성된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뉴욕 맨해튼의 한식당 아토믹스는 개업 6개월 만인 2019년 미슐랭가이드에서 1스타를 받았다.
한식으로 구성된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뉴욕 맨해튼의 한식당 아토믹스는 개업 6개월 만인 2019년 미슐랭가이드에서 1스타를 받았다. / 푸들
법칙 2. 진짜 장사는 음식점 밖에서 시작

뉴욕 맨해튼에 자리잡은 한식당 아토믹스(Atomix).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관사 주방장을 지낸 한국인 요리사 박정현이 뉴욕에 낸 두 번째 식당이다. 아직 문연 지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출내기 식당이라 이름이 덜 알려졌을 법도 한데 이 식당은 현재 예약이 불가능하다. 한 끼에 175달러(약 20만원)짜리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자리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이미 다 팔렸다. 미국 요리업계 '대부'라 불리는 라이언 총장도 왕복 6시간을 들여 이곳을 자주 찾는다. 추세를 보면 내년치도 예약을 받는 순간 곧 매진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뉴욕타임스 유명 식당 비평가 피트 웰스(Pete Wells)는 '혼자서도 미슐랭 가이드 제작진 전체에 대적할만하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지난달 아토믹스 음식을 "요리사가 지휘자로 빙의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는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말러 교향곡은 낭만적이면서도 여운이 오래가는 특유의 분위기로 유명하다. 보통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나, 다 보고 나서야 가슴을 치게 만드는 영화에 말러 음악을 견준다. 배를 채우려고 먹었던 식사가 식당 문을 열고 나서면 곧 잊혀지는 것과 달리, 문 밖을 나서도 일어난 자리에서 먹었던 음식이 떠오를 만큼 이곳 음식이 인상적이었다는 의미이다.

SNS 홍보 활용해 3개월 만에 유명세

이 감상평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순식간에 퍼지며 아토믹스 인기에 불을 붙였다. 라이언 총장은 "요즘 소비자들은 색다른 음식을 맛본 경험을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10년전 뉴욕에 등장한 일식집 노부(Nobu)만 해도 유명세를 얻기까지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토믹스는 뉴욕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3개월이 채 안 걸렸다. 최근 미슐랭가이드에서 1스타를 받은 한식당 꽃(COTE)도 마찬가지. 둘 다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식당 홈페이지는 스마트폰에서도 깔끔해 보이고, 인터넷 댓글에 식당 관계자가 즉각 답변을 단다.

CIA에서는 수업시간을 따로 할애해 소셜미디어 활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만큼 식당 운영에서도 입소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먹었던 음식을 인터넷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이를 수시로 관리해주는 기술도 교육시킨다. 미국에서 한국식 갈비 양념을 활용한 타코를 푸드트럭 메뉴로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 고기(Kogi)의 로이 최(Choi) 대표는 1972년 서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민온 한인 1.5세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손님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푸드트럭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동경로를 소셜미디어 트위터에 생중계한 독특한 발상으로 성공을 일궜다. 2000년대 후반 LA 외식업계에서는 저녁만 되면 최씨 푸드트럭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켜는 행인들 모습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말 푸드트럭 ‘고기 코리안 비비큐(Kogi Korean BBQ)’를 선보여 미국 외식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로이 최.
2008년 말 푸드트럭 ‘고기 코리안 비비큐(Kogi Korean BBQ)’를 선보여 미국 외식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로이 최. / 로이 최 페이스북
법칙 3. 들어갈 때는 예상할 수 있게, 나올 때는  예상할 수 없게

미 캘리포니아 유명 와인 산지 나파밸리에는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나파밸리에서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인구 2900명 작은 마을 욘트빌에 자리잡은 이 식당은 세계적인 명소다. 세계적인 요리사 토머스 켈러가 오래된 세탁소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예약이 두세 달씩 밀려 있다. 오랜 대기 끝에 레스토랑 문을 들어서는 손님들은 거장이 내놓을 '작품(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이들은 한 끼에 300달러(약 33만원) 넘는 음식 값을 지불하기 때문에 원하는 게 많고 까다롭다. 최고 수준의 맛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항상 그 이상 신선함을 원한다. 팀 라이언 CIA 총장은 "시간 난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왔을 때 '다시 와도 새롭고 놀라운 곳'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면 요리사는 즉흥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프렌치 런드리는 매일 저녁 9코스의 음식을 낸다. 음식은 그날 쓸 식재료의 상태와 종류에 따라 매일 바뀐다. 손님은 메뉴판을 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켈러와 주방을 맡은 팀은 저녁에 낼 식재료가 도착하면 매일 어떤 방식으로 요리할지 난상토론을 벌인다. 시합을 앞두고 감독과 선수들이 작전회의를 벌이는 것처럼 진지하고 치열하다.

일반적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회의가 예약 현황과 재료 상태를 점검하는 차원이라면 프렌치 런드리의 토론은 식당의 근본인 '조리법'부터 파고든다. 주방장 의견이라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법은 없다. 가장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말단 직원까지 참가해 당일 받은 신선한 재료에 맞는 최적의 조리법을 연구한다. 이전에 했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지 않는다. 소스에 들어가는 식물의 종류, 굽는 시간과 불의 세기, 소금 원산지라도 바꿔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전직원이 매일 신선조리법 토론

이에 대해 라이언 총장은 "같은 농부가 재배한 고품질 채소일지언정 키운 구역이나 토질에 따라 재료 품질은 미묘하게 바뀐다"면서 "고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같은 농장 소라도 어느 개체가 풀을 더 좋아하고 많이 먹었는지, 어떤 부위를 자주 움직였는지에 따라 육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조리해 내는 게 그 식당을 다시 갈지를 결정짓는다.

완벽한 식사를 위해선 '분위기'도 빠질 수 없다. 켈러는 올해 2월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들여 레스토랑 전체를 리모델링했다. 하루 60명만 받는 식당으로서는 큰 투자다. 새로 단장한 식당에 손님이 도착하면 통유리로 된 현대식 주방이 눈앞에 펼쳐진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본뜬 주방이다. 켈러는 이를 위해 여러 차례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가 리모델링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고전적인 프랑스 요리와 현대 미국 요리를 접목한 프렌치 런드리만의 요리를 담아낸 '박물관'이 되겠다는 의미다. 라이언 총장은 "들어올 때 기대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면서 "음식은 물론 인테리어, 음악, 가구를 모두 아우르는 새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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