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불모지' 미국서 요리 올림픽 3연패… "손님 취향 연연말고 오직 맛으로 승부를"

입력 2018.11.30 03:00

[Cover Story] '요리업계의 하버드大' 美 CIA 팀 라이언 총장

2012년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CIA 행사에서 팀 라이언 총장(가운데)이 ‘미국 남서부 요리의 달인’ 딘 피어링(오른쪽)과 ‘퓨전 요리의 대가’ 울프강 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2년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CIA 행사에서 팀 라이언 총장(가운데)이 ‘미국 남서부 요리의 달인’ 딘 피어링(오른쪽)과 ‘퓨전 요리의 대가’ 울프강 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은 외식문화 불모지였다. '햄버거와 콜라'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가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국토는 넓고 비옥하지만, 그 땅에서 자란 질 좋은 식재료를 멋지게 요리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저 값싼 가공식품과 냉동식품이 식탁을 누볐다. 그런데 1986년 한 미국인 요리사가 불명예를 지우기 위해 유럽 원정길에 나섰다. 4년에 한 번 열려 '요리사 올림픽'으로 불리는 룩셈부르크 요리 월드컵(Culinary World Cup).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날아온 2500명 요리사들이 개인·단체로 나눠 기량을 겨루는 대회다. 그를 위시한 미국 국가대표 요리팀은 처음 출전한 이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팀 이끌고 '요리 올림픽' 3연패

당시 이 요리팀이 선보인 조리법은 파격에 가까웠다. 이전 경연 우승팀들은 버터와 소스를 듬뿍 사용하는 프랑스 요리 기법을 얼마나 완벽하게 재현하느냐에 집중했는데, 미국팀은 버터 양을 반으로 줄이고 소스는 거의 곁들이지 않았다. 유럽산 식재료를 최고로 치는 관행을 깨고, 미국 와이오밍에서 공수한 양고기와 버지니아 사탕무, 아이다호 감자로 요리했다. 심사진은 새로운 맛에 매료됐다. '고루한 조리법을 부드럽고 매끈하게 변주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 미국 대표팀은 1990년과 1994년 요리 월드컵까지 제패하면서 3연패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이 대표팀을 이끈 요리사는 세계 최대 규모 요리전문 대학교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팀 라이언(Ryan·60) 총장. 2001 년 이 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18년째 후배 요리사를 양성하고 있다. WEEKLY BIZ는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강 상류를 따라 기차로 3시간 떨어진 뉴욕주 하이드파크에 있는 CIA를 직접 찾았다. 1946년 문을 연 CIA는 72년간 요리사 4만9000명을 배출, 명실상부한 '미국 요리의 요람'이다.

짙은 삼나무 바닥이 깔린 총장실에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쓰인 요리 관련 서적과 어디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트로피가 가득했다. 박물관 같은 접견실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라이언 총장이었다. 190㎝ 가까운 키에 100㎏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몸집, 사과 한 쪽은 쉽게 쪼갤 것 같은 굵은 손가락, 말끔한 양복과 반듯한 넥타이. 조수들이 일렬로 서 있는 주방에 마스터 셰프가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팀 라이언 프로필
첫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샌드위치 한 조각을 권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아침 6시에 시작하는 1교시에 맞춰 빵을 내놓으려면 새벽 3시부터 반죽을 준비해야 합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라면 평생 겪는 숙명이죠. 고단해도 빨리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더 빨리 겪어야 더 많이 배웁니다."

CIA에서 학생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생회관과 도서관을 제외하고 학교 내에서는 모두 하얀색 조리복과 검은 바지만 입어야 한다. 식사는 하루 2번씩 학생들끼리 서로 돌아가며 준비한다. 학교에서 마련해 준 재료를 사용해 요리를 하면 동료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평가한다. 동료들 평점은 성적에 즉시 반영한다. 이런 엄혹한 체계 때문에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중도 탈락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기숙사 생활하는 사관학교식 교육

―외식업을 가르치는 곳에서 사관학교처럼 엄격한 교육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2001년 처음 부임했을 당시는 요리방송 중흥기이면서 여러 매체에서 외식업계의 화려한 면을 비추기 시작한 때였다. 외식업계가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전문교육기관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CIA에 입학하려는 젊은이들은 요리사를 쿨(cool)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는 주방 청소와 설거지, 쓰레기 처리부터 시작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었다. 새벽 3~4시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요리하다 주방을 마감하면 결국 하루 4시간도 자기 쉽지 않다. 이런 과정은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도 변함없는데, 실상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학생들이 요리사로 취업을 하든, 본인 식당을 열든 현장에 나가서 겪을 일들에 비하면 수업 강도는 오히려 높지 않다. 외식업계에 오래 몸담으려면 탁월한 능력과 전문성,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저절로 키워지지 않는다. 학생들을 뽑을 때 사전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본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고, 영어실력이 뛰어나도 현장 경력 6개월이 없으면 입학이 어렵다.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 강도 높은 수업을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수업을 마친 학생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다. CIA를 졸업하면 보통 3~5군데에서 취업 의뢰가 들어온다."

―외식업계에서 성공하는 요리사와 어려움을 겪는 요리사의 차이는 어디서 생기나.

"실패의 이유를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행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소비자 입맛이나 취향은 항상 변한다. 이 부분을 알고 있으면서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 낫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단순한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소비자 입맛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지 않고 선도할 수 있다. '많이 팔리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얽매이면 오히려 평범한 음식을 내놓기 마련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이탈리아 음식 붐이 일었다. 빨간 토마토 소스에 미트볼만 올려서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내놓는 식당이 많았는데 고객들은 이런 음식에도 열광했다. 하지만 그런 진부한 이탈리안 식당들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남부 나폴리식 피자를 전문으로 하거나 중부 피렌체식 스테이크를 내놓아야 눈에 띈다. 외식업은 다른 시장과 달라서 파편화되고 전문화될수록 충성도 높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쉽다. 맛이라는 기본에 충실할 때 소비자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메뉴에 대한 확실한 머리속 그림 있어야

―1986년 요리 월드컵 우승의 비결은.

"월드컵에 앞서 팀원들과 새벽부터 밤까지 요리하고 시식하고, 논평하고 다시 요리해보니 식재료에 맞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야겠다고 결정했다. 1980년대에는 요리사들이 공식처럼 양고기에 로즈마리를 사용했는데 우리가 가져간 미국산 양고기에는 프랑스식 로즈마리 소스가 어울리지 않았다. 프랑스 양고기보다 강한 육향을 살려주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래서 소스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고기 지방을 잘라내 풍미를 조절했다.

팀 라이언 CIA 총장(가운데)이 1986년 유럽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요리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미국 국가대표팀 동료들과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팀 라이언 CIA 총장(가운데)이 1986년 유럽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요리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미국 국가대표팀 동료들과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 CIA
요리사나 문화마다 식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를 사로잡는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자신이 다룰 재료로 연습을 반복해야만 한다. 나의 첫 요리 스승은 '당근튀김을 감자튀김처럼 맛있게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연습하라'고 조언했다. 이런 문제는 남의 레시피를 따라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오랜 기간 지지부진하던 미국 외식업계는 1986년 이후 양적으로, 질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에 본격적으로 '음식 민주주의(food democracy)'가 도래한 시기가 그 무렵이다. 일단 '본인이 가진 예산 안에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음식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머니에 5달러뿐인 소비자도 요리 차원에서 완성도 높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미국에서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5달러를 가지고 냉동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사먹어야 했다면 이제는 푸드트럭에서 CIA를 졸업한 요리사가 만든 타코나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 500달러를 쓰고 싶다면 도심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갈 수도 있다. 이런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요리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을 보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메뉴에 대한 확실한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져 있다. 손님이 많이 안 찾을지언정 맛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번뜩인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메뉴에 친화적이고 투자자들은 좋은 레스토랑에 돈을 댈 준비가 돼있기 때문에 실패해도 빨리 물러나면 된다. 그리고 다음 메뉴로 다시 승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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