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원치 않는 기능은 다 뺐다 '뺄셈가전'으로 年 1조원 매출

입력 2018.11.30 03:00

日 아이리스오야마社 오야마 겐타로 회장

소니·파나소닉을 중심으로 '팔룡(八龍)'이 각축전을 벌이던 일본 가전 시장에 신흥 세력들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회사 중 하나가 아이리스오야마(IRIS OHYAMA). 플라스틱 제조업체에서 가전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8년 만에 가전으로만 연 매출 660억엔(약 6600억원)을 달성한 곳이다.

아이리스오야마 상품 개발 전략은 이른바 '뺄셈' 가전으로 알려져 있다. 신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넣고 값을 올리는 기존 대형 가전사들과 달리 아이리스는 '고객이 얼마면 사고 싶어할까'라는 '심리적 납득가'를 먼저 설정한 다음 이 가격을 구현하기 위해 제품에서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반드시 필요한 기능에만 집중한다. 대신 다른 브랜드 제품에 없는 편리한 1~2가지 기능을 개발해 제품 만족도를 높인다.

이런 개념화를 통해 선보인 전기밥솥은 쌀의 종류(품종·브랜드와 무게)에 맞춰 물의 양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하단을 분리하면 쿠킹히터(전기불판)로도 쓸 수 있게 만들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만족스러운 기능에 값은 2만엔(약 20만원)대로 보통 10만엔 이상인 타사 전기밥솥을 압도했다. 이 밖에도 초단시간에 의류 건조와 제습까지 해주는 건조제습기, 고화질 TV와 에어컨·세탁기에서 조명·조리 기구에 이르기까지 단기간에 다양한 가전상품군을 갖춰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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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아래로)저소음 모드 기능과 에너지 절약 모터를 탑재한 선풍기. 목재 재질로 제작한 초음파식 가습기. 담요를 비롯해 여러 세탁물 코스를 두루 갖춘 전자동세탁기. 쌀의 종류에 따라 밥을 짓는 전기밥솥. 진드기 제거 기능을 겸비한 이불건조기. 하루 최대 6.5L 제습을 해주는 의류건조제습기. / 아이리스오야마
함안 조씨 후손의 재일교포 3세

아이리스를 이끄는 오야마 겐타로(大山健太郞) 회장은 재일교포 3세. 오사카 출신이지만 조부모가 1927년 경남 함안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이다. 스스로 "함안 조씨 후손"이라고 일컫는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꾸다 아이리스그룹 전신 오야마블로공업소를 창업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사업을 물려받아 경영인 길에 들어섰다. 그는 "감독이 스토리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한 다음 배역과 배경음악 등을 결정하는 과정이 상품 개발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승계 당시 종업원 5명에 작은 플라스틱 하도급 업체였던 아이리스는 현재 그룹 매출 4200억엔(약 4조2000억원), 직원 1만2000여명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천 송도에도 공장을 짓고 있다.

판매가 먼저 정한 뒤 기능 결정

―가전사업 부문을 단기간에 성장시킬 수 있던 비결은.

"일반 소비자 요구(needs)에 맞춰 상품을 기획하고 제조한다. 무슨 말이냐면 보통 기업들은 시장을 중시하면서 '마켓인(market-in)'으로 접근하는데 우린 '유저인(user-in)'이다. 소비자 처지에서 생활에 불편한 부분을 해소하는 욕구를 검토한 뒤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설정한다. 다른 기업은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제품을 설계하고 원가를 도출한 다음 이런저런 비용을 덧붙여 덧셈식으로 소매가를 최종 내놓는다. 솔직히 대부분 불필요한 기능을 붙이고 값을 올리는 데가 많다. 싸게 내놓기 싫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용자들은 복잡하고 많은 기능에 별 관심 없다."

―그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나. 도저히 가격대를 맞출 수 없는 경우는 없나.

"그게 기술이다. 뺄셈해서 가전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빼는 게 핵심이 아니다. 좋은 제품을 납득 가능한 가격으로 만드는 기술이 핵심이다. 10년 전 LED 전구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기성 제품은 4000~ 5000엔 정도 나갔다. 그런데 일반 가정이 내는 전기세를 비롯해 여러 조건을 분석해보니 2000엔 가격이 합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 가격을 맞추기 위해 거의 모든 공정을 자체 조달하기로 하고 밀어붙였다. 그래야 원가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아리이스 제품이 일본 LED 전구 시장 5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매년 신상품 1000여개 출시

―매년 1000여개 이상 신제품 아이디어를 사내 회의를 통해 끌어낸다고 들었다.

"창업 1대부터 회사 목적은 영속이다. 이를 위해선 히트 상품이 계속 나와줘야 한다. 항상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은 수익 토대일 뿐 아니라 아이리스 이념이기도 하다. 회사 간부가 모두 모이는 신상품 개발 회의에선 사원들이 저마다 내놓은 매주 20~30개 아이템이 제출된다. 기획서는 1장, 발표 시간은 3분이다. 사장·회장도 참석한다. 의견을 받아 그 자리에서 최종 상품화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결정되면 바로 착수한다. 복잡한 결재 과정을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셈이다. 가전을 포함, 아이리스그룹 전체 상품 수는 2만여점이다. 기획서를 만들 때 콘셉트와 상품 특징(sales point)을 알기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상품화하기로 했다고 해도 출시 가능한 가격 범위 밖이면 그 아이템은 폐기한다."

―가격 경쟁력에선 결국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 아닌가.

"물론 우리도 거의 모든 제품을 중국 공장에서 제조한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전자업체, 파나소닉이나 소니도 거의 대부분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지 않은가. 중요한 건 기획력이다. 다른 주요 가전업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리스도 제품 개발은 전부 일본에서 한다. 일본 소비자들은 세계적으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 취향을 맞출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게 중국 업체와 다른 강점이다."

현장 개발자들 생각을 존중

―초창기 기술 부문 인력은 샤프나 파나소닉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는데.

"6년 전 일본 대형 전자 기업들이 삼성·LG 등 약진하는 해외 브랜드에 시달리면서 대대적인 정리해고에 나선 적이 있다. 5000~6000여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됐는데 일부는 삼성이나 중국 업체로 이적하고 일부가 우리에게 왔다. 파나소닉과 샤프, 히타치와 도시바 출신도 있다. 다양한 출신이 모여 독특한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아이리스 경쟁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보통 기업들은 아랫사람이 하는 일에 '정말 괜찮을까' 염려를 많이 한다. 사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묵살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만든 아이디어가 채택돼 바로 제품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개발자들 생각을 존중한다."

―해고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물론 일을 못하는 직원은 평가나 경고 제도를 통해 자극을 주지만 동시에 다시 기회를 준다. 그래도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경우는 없다. 의욕과 인품·성격만 갖추면 누구나 언제든 다시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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