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기름 대신 돈다발' 세계금융 주무른다… 글로벌 벤처 투자 60%가 중동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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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16 03:00

      [Cover story] 중동은 지금 국가개조 프로젝트 열풍

      10大 국부펀드 중 4곳이 중동국가 소유
      2008년 위기 이후 에너지 투자 줄이고 금융·부동산·벤처 등 새로운 투자로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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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은 지난 3월 미 뉴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2000억달러에 이르는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를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블룸버그
      미국 금융회사인 시티그룹은 2007년 11월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연일 해고 통보가 이어졌다. 투자처를 수소문했지만, 유럽과 동아시아 경제권 역시 경기 침체에 신음하던 상황. 이때 중동 국부펀드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시티그룹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투자청(ADIA)으로부터 75억달러, 쿠웨이트의 쿠웨이트 투자청(KIA)으로부터 145억달러(약 16조원)를 긴급 지원받은 뒤에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경제 방송 CNBC는 '중동에서 구세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부펀드는 정부 자산을 투자·관리하는 국영 투자회사를 뜻한다. 주로 사우디, 쿠웨이트 같은 중동 자원 부국(富國)이나 싱가포르,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 국가에서 활성화돼 있다. 이들은 각국 증시나 부동산·원자재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세계 경제의 '큰손'으로 불린다. 특히 중동 국부펀드는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2018년 기준 세계 국부펀드 규모가 약 7조6500억달러였는데, 이 중 중동 국부펀드 비율이 39%에 달한다. 세계 10대 국부펀드 가운데 3~5위를 포함한 4곳이 중동국가 소속이다.

      이들은 2000년 이전만 하더라도 '전공 분야'인 정유와 에너지 관련 분야 투자에 집중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 2008년 미국 달러화 약세로 인한 수차례 국제 유가 급등을 계기로 자산 규모가 크게 불어나면서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고수익성 금융 상품이나 부동산, 기업 인수 매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아시아에도 이때부터 중동발 뭉칫돈이 몰렸다. UAE 국부펀드인 두바이투자청(ICD)은 2015년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한국의 쌍용건설을 인수해 살려냈다. 작년 7월에는 역시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 인베스트먼트가 한국의 넥센타이어에 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사우디, 해외 투자 비중 25%로 늘리기로

      최근 중동 국부펀드는 석유 산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로보틱스·AI 와 같은 신기술과 벤처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국영 투자회사를 중심으로 해외 기업을 사들이거나, 합작 투자를 끌어내 장기적으로 자국 기업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는 지난해 5월 출범한 930억달러(약 105조원) 규모 벤처 투자펀드 '비전펀드'에 450억달러를 댔다. 비전펀드의 규모는 펀드 출범 이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펀드 총액(약 7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앞으로 전 세계 벤처 투자펀드 가운데 3분의 2가 사실상 중동 자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앞으로 국부펀드를 국가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고, 현재 10% 수준인 해외 투자 비중을 2020년에는 25%까지 높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