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인류 사진의 기원이 1826년이 아닌 1839년이 된 까닭은

    • 채승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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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16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6> 사진의 탄생

      빛과 화학물질로 像 구현 성공한 니엡스, 다게르가 찾아가 공동 연구 제안
      연구 완성 단계서 니엡스 사망… 다게르, 佛정부에 팔아

      채승우 사진가
      사진가
      가까이 다가온 내년 2019년이 되면 분명히 어디선가 '사진 탄생 180주년'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전시장일 수도 있고, 특집 기사일 수도 있겠다. 그 말은 180년 전인 1839년이 사진 탄생의 해라는 뜻인데, 정말일까? 1839년을 사진 탄생의 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다.

      1839년 다게르가 현상기술 발명

      1839년 1월 7일 파리 과학아카데미 회의에서 사진술이 완성됐다는 선언이 발표된다. 6월 14일 프랑스 내무장관이 발명가를 만나, 발명의 권리를 국가가 사들이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다. 8월 19일 과학아카데미와 미술아카데미 합동 회의에서 제작 방법이 발표된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사진술은 빠른 속도로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 발명가의 이름은 다게르였다. 다게르는 발명품에 자기 이름을 따 다게레오타입이라는 명칭을 붙여놓았다.

      한데, 현재 세상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은 다게르의 것이 아니다. 니세포르 니엡스라는 발명가의 것으로 1826년이나 1827년쯤 제작됐다. 산업혁명 시대에 많은 사람이 발명으로 한몫 잡기를 원했는데, 사진의 발명가들도 거기 속했다. 니엡스는 이미 1824년 빛과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이를 헬리오그래피라고 불렀는데, '햇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란 뜻이다.

      이 소문을 다게르가 들었다. 니엡스는 자신을 찾아온 다게르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결국 1827년 '니엡스씨의 발명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연구 계약을 맺는다. 니엡스의 연구가 다게르의 사진술에 발판이 된 건 물론이다. 그런데 1833년 니엡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연구를 거의 완성한 후 다게르는 니엡스의 아들을 만나 계약을 수정한다. 니엡스의 연구와 자신의 연구를 분리하는 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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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6~27년, 발명가 니세포르 니엡스 : 세상에 남아 있는 사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니세포르 니엡스가 1826년이나 1827년에 촬영했을 이 사진이다. 프랑스 르 그라에 있는 그의 집 창문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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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9년, 발명가 다게르 : 다게르가 1838년 촬영한 파리 탕플거리 사진. 노출 시간이 길었던 덕분에 길에 지나다니는 마차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아래 구두를 닦는 사람만 사진에 찍혔다.

      사실은 10여 년 전 니엡스가 선구자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사들이면서 다게르에게 종신연금 6000프랑, 니엡스의 아들에게는 4000프랑을 지급한다. 다게레오타입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사진술은 대중에게 제공되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퍼졌다. 사람들은 사진술이 다게르의 발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니엡스의 아들은 1년 후 '다게레오타입으로 잘못 알려진 발명의 역사'라는 작은 책까지 발간하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한 사람은 니엡스만이 아니었다. 18세기에 이미 특정 화학물질의 감광성에 대한 연구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영국인 토머스 영은 1803년, 전신의 발명자인 미국인 새뮤얼 모스는 1822년 일시적인 음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윌리엄 폭스 톨벗은 1834년부터 사진을 연구했는데 1835년 감광지 위에 물건이나 식물을 직접 올려놓고 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를 '포토제닉 드로잉'이라고 불렀다. 톨벗은 이 발명의 가치를 몰랐는지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다게르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연구를 재개, 1839년 자신의 사진 기법을 완성한다. 독일에서도 사진은 연구되었다. 뮌헨의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1839년 바이에른 여왕 앞에서 사진 시연회를 열었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도 사진은 발명되었다. 에르퀼 플로랑스라는 프랑스인은 1820년경 브라질로 이민을 갔는데, 1970년 뒤늦게 발견된 그의 실험일지에 따르면 1833년 브라질 외딴 마을에서 초벌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1839년에는 상파울루의 신문에 자신의 발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건 사진 즉 포토그래피라는 말이 유럽에서 정착되기도 전,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때 먼저 포토그래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의해서 공표된 직후 상인들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만들어 판매했다<사진 왼쪽>. 이폴리트 바야르는 자신의 사진술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항의하는 뜻으로, 자신이 익사한 것처럼 꾸민 사진을 찍었다.
      다게르 발명이 정부에 의해서 공표된 직후 상인들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만들어 판매했다<사진 왼쪽>. 이폴리트 바야르는 자신의 사진술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항의하는 뜻으로, 자신이 익사한 것처럼 꾸민 사진을 찍었다.
      광학장치는 이미 16세기에 완성돼

      억울함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유명해진 사람도 있다. 이폴리트 바야르라는 공무원은 다게르의 소문을 듣고 자신만의 실험을 시작했다. 1839년 3월 첫 직접 양화 제작에 성공하고, 프랑스 정부에 자신에게도 지원금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야르의 방식은 다게르의 것에 비해 선명도가 많이 부족했다. 다게레오타입의 선명도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바야르는 끝까지 항의했다. 자신이 익사한 것처럼 꾸민 사진을 찍고, 그 뒷면에 '다게르씨에게 너무 많은 돈을 준 정부는 바야르씨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바야르씨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1839년을 사진의 탄생이라고 쉽게 부를 수 없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이 시기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발명들을 보면 모두 '화학적' 발명들이다. 사진에 필수인 '광학' 장치에 대한 발명은 언제 일어난 것일까? 사진기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이라는 뜻)'라는 장치는 이미 16세기에 완성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어쩌면, 사진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