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40대 CEO가 허리띠 너무 세게 조였나… 도이체방크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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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16 03:00

      4월 취임 크리스티안 제빙, 사면초가 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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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독민주당(CDU) 비즈니스 데이’에 참석한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 / 블룸버그
      "그건 완전 헛소리야, 헛소리!"

      지난달 말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임원 화상 회의에서 거친 발언이 나왔다. 4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티안 제빙(Sewing·48)이 임원들을 향해 질책을 했다. 지난 3분기 도이체방크 실적이 하락했다는 소식이 나온 지 며칠 만이었다. 당시 제빙의 심기를 거스른 건 "다른 은행과의 '합병 루머'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다"는 한 임원의 발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빙이 이 발언에 대해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합병설 탓으로 '변명'하는 건 완전히 헛소리"라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지난 4월 취임한 도이체방크의 신임 CEO 제빙이 사세가 기운 도이체방크를 살려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로 꼽혔던 도이체방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서 수익성이 곤두박질치면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6년간 CEO 교체만 세 차례. 새 수장 제빙이 대대적인 '수술'에 나서고 있지만 실적 악화가 이어지면서 취임 7개월여 만에 위기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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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지희
      40대에 발탁된 구조조정 전문가

      지난 4월 8일(현지 시각) 도이체방크 이사회는 임기가 2년 남아 있던 존 크라이언 당시 CEO를 경질했다. 대신 크라이언보다 열 살이나 젊은 제빙 소매금융부문 사장을 CEO로 발탁했다. CEO 교체의 이유는 경영 실적 부진이었다.

      도이체방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 규제로 인해 채권사업 수익성이 떨어지고, 자금세탁 방조 등의 불법 행위로 '벌금 폭탄'까지 맞으면서 수년간 고전했다. 특히 크라이언이 수장을 맡은 2015년 이후 3년간 적자였고, 지난 3월에는 37조원에 달하는 돈을 잘못된 계좌로 송금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크라이언이 CEO로 있던 기간 도이체방크 주가는 60% 넘게 떨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7년 도이체방크는 수입 대비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94%에 달해 시티그룹(57.9%), JP모건체이스(57.9%), BNP파리바(69.4%) 등 다른 은행과 비교해 효율성에서 크게 뒤처진다.

      이사회의 선택은 구조조정 능력이 검증된 '도이체방크맨' 제빙이었다. 제빙은 19세 때 고향인 독일 빌레펠트의 도이체방크 지점에서 수습직 은행원으로 시작해 무려 27년을 도이체방크에서 근무했다. 2013년 도이체방크 감사를 지냈고, 2015년 이사회 멤버로 경영진에 합류했으며 2017년 소매금융부문 사장이 됐다. 그는 소매금융부문 사장으로 있는 동안 수백 개의 지점을 폐쇄하고 2년 동안 소매은행 직원 수를 7%(3100명)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잡음 없이 해냈다. 그 공적으로 그룹 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소매금융 전문가라는 점도 부각됐다. 수익성이 악화된 도이체방크의 투자금융 부문 대신 소매금융 부문에 힘을 싣기에 그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빙을 CEO로 선택한 것은 도이체방크가 최근 수년간 초점을 맞췄던 글로벌 시장과 트레이딩·투자은행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대신 독일과 유럽 시장에 집중하며 소매은행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자산관리 부문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용절감만 주력…미래 비전 없다"

      예상대로 제빙은 취임 이후 지난 7개월간 대규모 인력 감축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을 추진했다. 제빙은 지난 8월 내부 회의에서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을 줄여 이윤을 남겨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는 취임 이후 직원 1700여 명을 추가 감축했을 뿐만 아니라, 간부들이 출장을 갈 때 일등석 기차표를 끊지 못하게 했다. 매일 사무실에 제공되던 과일을 없애고, 임대료가 비싼 사무실은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특히 인력 감축은 투자은행 부문에 집중됐다. 올 들어 감축된 인원 중 1047명이 투자은행 부문 직원이었다. 주식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 수를 25%나 줄였다. 브라질·두바이·일본 지사에 있는 주식 분석 및 자문업무 조직들도 해체했다. 제빙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비판도 나왔다. 그가 투자은행 부문에 이해가 깊지 않을뿐더러, 꼭 남았어야 할 인재들이 은행을 떠나게 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결정할 때 소매금융 출신인 측근들의 의견에 너무 의존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그의 측근인 최고운영책임자(COO) 프랭크 쿤케 역시 소매 부문 출신이다.

      전략이 주로 '비용 절감'에만 치우쳐 '은행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은 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직까지는 '허리띠 졸라매기' 외에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비용 절감 전략만으로 전 세계 10만명에 달하는 직원을 둔 거대한 도이체방크를 이끌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보도하며 "제빙의 전략이 적절했는가 여부는 앞으로의 실적이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달 공개된 3분기 도이체방크 실적은 '최악'에 가까웠다. 투자금융 부문의 올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한 30억유로를 기록했고, 소매금융 부문의 경우 3분기 매출은 25억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했다.

      크리스티안 제빙 프로필
      실적 부진 이어지자 합병설까지

      제빙은 지난달 24일 실적 발표 이후 "도이체방크의 올해 성장률 예측치를 하향 조정하고 장기투자 계획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3분기 수익률이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올해 전체의 수익률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제빙이 취임하면서 목표로 제시했던 올해 10% 성장 계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3.3% 급락했다. 올 들어 도이체방크는 40% 이상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도이체방크가 실적 부진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자, 예전부터 합병설이 나왔던 독일 내 4위 은행 코메르츠방크와 합병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게 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빙 CEO가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취임 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수익률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5월 말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는 도이체방크의 미국 투자은행 자회사(DBTCA)를 '재무적으로 심각한 취약점을 가진 은행' 명단에 올렸다. 같은 날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도이체방크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했다. 지난 9월에는 최대 주주인 중국 하이난항공(HNA) 그룹이 도이체방크 보유 지분 7.6% 모두를 단계적으로 매각할 계획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가에 큰 영향을 줬다.

      S&P는 "도이체방크 경영진이 수익성 회복을 위한 강력한 대응에 나섰지만 경쟁사들과 비교해 계속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장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도이체방크가 개편 전략을 이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빙은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투자자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에 투자했다 지난 3년간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주주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