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예고한 '신흥국發 3차 위기' 시작… 중국이 빌려준 돈이 복병"

입력 2018.11.02 03:00

[Cover Story] 신흥국 위기 어디로… 세계 석학 3인방 긴급 분석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국 경제가 연쇄 위기를 겪은 건 1980년대 초반 중남미 외환 위기와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 위기가 대표적이다.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금융기관들은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통화 팽창기 이후 선진국이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바꾸면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위기 분야 권위자 카르멘 라인하트(Reinhart)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신흥국발(發) 3차 위기'가 날 것으로 5년 전부터 경고했다. 다만 당분간 미국이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미 금리 인상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신흥국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는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신흥국 정부가 미 달러화 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자국 금리를 인상하라고 조언했다.

2015년 미 금리 인상이 결정타

―예고한 대로 신흥국 위기가 시작됐다.

"2013년부터 신흥국을 둘러싼 경제 환경이 변했다. 신흥국은 2008년을 제외하고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대외 여건이 좋았다. 중국 경제가 매년 두 자릿수 성장했고, 중국 수요 덕에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 지난 200년 동안 가장 긴 원자재 상승 랠리가 이때 발생했다. 그러자 신흥국 무역량이 증가했다. 동시에 미국 등 선진국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자 신흥국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신흥국 정부나 기업 모두 앞다퉈 해외에서 돈을 빌려 썼다. 그런데 2013년 중국 경제가 둔화되자 원자재 가격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원자재 수출국인) 러시아, 브라질, 남아공 등에서 화폐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자본이 빠져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금리 인상 전이었기 때문에 최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015년 금리 인상을 결정하며 우려하던 문제가 터졌다. 신흥국 내 자본은 계속 빠져나오고 있다."

―해외 자본 유출이 신흥국 화폐 가치 하락의 가장 큰 이유인가.

"내부적인 압박도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20%대로 치솟는다면, 터키인 입장에서도 리라화 대신 달러화 혹은 유로화를 보유하는 게 매력적일 것이다. 즉, 부유한 터키인 또는 터키 기업도 리라화를 팔고 외화를 사들이기 때문에 리라화 가치 하락이 가속화한다. 이런 면에서 볼때 해외 투자자들보다 신흥국 내부 현금 보유자들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연준은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리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덕분에 글로벌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 신흥국도 과거 위기 때보다 천천히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등 대외 여건들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신흥국 부채 증가, 성장률 둔화, 수출 환경 악화…다 과거 위기 때 나타났던 징후들이다."

전 세계 부채 규모 파악조차 안돼

―신흥국 위기가 다른 나라로 전이될까.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진 않는다. 다만 최근 중국이 신흥국에 빌려준 자금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우려된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중동 빈곤 국가가 많은 돈을 빌렸다. 중국은 '파리 클럽' 회원국이 아니어서 해외에 빌려준 자금 규모와 채무 조건을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흥국 부채를 정확하게 측정하던 1990년대와 다르게 현재 신흥국이 중국으로부터 얼마나 빌렸는지 모른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에서 돈을 빌린 국가는 대부분 연체 상태다. 일부는 이미 채무불이행 상태일 수 있다."

―신흥국 채무불이행이 미치는 영향은.

"유럽 일부 은행은 터키·남미 등 다수 신흥국에 많은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일본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국내 대출이 고갈되자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돈을 빌려줬고,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터지자 연쇄적인 금융 위기를 겪었다. 글로벌 경제 건전성은 신흥국에 달려 있다. 신흥국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기준 글로벌 경제의 59%를 차지한다. 1980년대(37%)와 차원이 다르다."

―미국 은행에 영향은 없나.

"미국 은행 포트폴리오는 직접적인 대출보다 채권에 영향을 받는 정도다. 월가 투자자들은 신흥국 채무불이행을 크게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위기가 터지면 예상치 못한 파장이 올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과거에 비해 충격 예방이 잘되어 있지 않나.

"규정 변경으로 많은 안전장치가 생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안전장치가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아울러 구제금융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1995년 멕시코가 받은 구제금융(178억달러)은 당시 역대 최대 규모였는데, 1997년 아시아 위기, 2001년 터키 위기 등을 겪으며 그 규모가 점점 커졌다. 이후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은 더 많은 구제금융을 필요로 했다. 결국 시장 충격을 예방하는 완벽한 규제나 보호장치는 없다고 본다."

한국 금리 인상, 선제적 대응 필요

―미국 경제를 전망한다면.

"단기간에 미국 경제가 침체하진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론 우려스럽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이후로 '완전 고용 시기'에 이렇게 많은 재정 동원 경기 진작책을 써 본 적이 없다. 미국은 어마어마한 만성적 재정·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다. 부채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까지 늘어났다. 더구나 인구 고령화, 연금 고갈 문제 등 장기 과제에 대비하지도 않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자금 향방은 어떨까.

"투자자 입장에서 미국 자산은 매력적이다. 일본·유럽과 다르게 미국은 금융 완화의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현재로선 다른 선진국 시장이 투자 측면에서 미국의 경쟁 상대가 못 된다. 신흥국 중에서도 페루·태국 등 부채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로 돈이 몰릴 수 있다. 한국도 경상수지 흑자국이기 때문에 자금 유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한국도 금리를 올려야 하나.

"미국보다 더 올려야 한다. 자금 이탈 우려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선제적 대응이 없다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