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성장률 인도가 흔들린다는데… 모디노믹스에 무슨 일이?

    •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입력 2018.11.02 03:00

유가·물가·환율↑
루피 환율 사상 최고… 주가 11.6% 하락 물가는 4% 올라

지난 10월 5일 인도 중앙은행(RBI)이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인도 금융시장엔 불안감이 증폭됐다. 시장은 당초 고유가·고환율·물가 동요 상황을 고려해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뒀다. 블룸버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한 49명 경제학자 중 금리 동결 가능성을 점친 학자는 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뜻밖의 결정이 내려졌다. 인도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인도 루피화 환율은 1달러당 74루피를 일시적으로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통화 가치 하락)를 기록했다. 주식시장도 3일 연속 하락하면서 지수 하락 폭이 5.9%에 달했다. 연중 주가 최고치였던 8월 말과 비교하면 11.6% 낮은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상반기에 연 8% 고성장

이런 금융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인도중앙은행이 금리를 동결한 건 경제성장 논리가 앞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디 인도 총리와 산업계는 금리 인상이 투자를 둔화시켜 성장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정부 성장 의지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지난 6월과 8월에 각각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10월엔 한 차례 숨을 고르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디 정부의 고성장 집착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있다. 인도는 표면적으론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경제는 지난 2분기 제조업 호황에 힘입어 8.2% 성장하면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6.7%에 그쳤다. 인도 경제가 1분기 7.7% 성장한 걸 감안하면 상반기에만 8% 성장한 셈. '전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이지만 인도 정부는 업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지난해 이뤄진 경제 개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조용히 언급했을 정도다.

모디 총리 고민은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작년 '바닥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데 있다. 2017년 상반기 인도 성장률은 5.9%에 그친 바 있다. 2016년 11월 화폐 개혁에 이어 부가가치세(GST)까지 도입(2017년 7월 시행)하면서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인도 경제는 2017년 4분기가 되어서야 다시 7%대 성장률을 회복했다. 2017년 전체 성장률은 6.2%에 그쳤다. 상반기까지 인도 경제가 어부지리로 고성장을 달성했다면 하반기에는 민간 투자, 인프라 투자 등이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가 위축되어 모든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올 들어 유가 상승에 물가 불안

인도 경제가 금리를 동결하여 성장에 힘을 쏟아야 하지만, 다른 경제지표들은 통화 긴축(금리 인상) 없이는 더 불안해질 정도로 위태롭다. 대표적인 게 물가다.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7년 11월부터 4%를 돌파했다. 인도에서 4%는 의미가 다르다. 인도 통화정책위원회(MPC)는 중기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4%로 삼고, 상하 2%포인트 변동 폭을 설정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사용해 물가상승률이 4%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6년 4% 이하로 안정됐던 물가가 들썩이게 된 건 소비 수요 회복이라기 보단 공급 측 비용 상승 탓이다. 생필품과 유가 상승이 장바구니 부담을 증가시킨 것. 경기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물가 인상이 아니고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특히 유가 상승이란 대외 요인은 인도 경제에 피할 수 없는 악재다. 인도는 원유 소비 83%를 수입에 의존한다.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원유 소비 대국. 하루 소비량이 469만배럴에 이른다. 수입량이 하루 389만배럴이라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연간 142억달러 추가 부담이 생기는 셈이다. 유가(WTI 기준)는 올 들어 20% 이상 상승률을 기록하다가 최근 중동 정세 때문에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만약 유가가 미국의 이란 원유 수출 금지 조치 여파로 예전처럼 인상 기조를 이어가면 물가는 오르고 소비가 감소하면서 GDP 성장은 둔화될 전망이다. 일본 노무라연구소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인도 생산자물가(WPI)는 1.3~1.4%포인트 상승한다고 추정했다. 인도 중앙은행도 같은 조건에서 인도 GDP가 0.15%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환율 불안 악몽 재연

환율 불안은 또 다른 경제 위기감을 낳고 있다. 지난 2013년에도 미국발 '긴축 발작(taper tantrum)' 우려로 인해 루피화 가치는 연초 대비 한때 27% 하락(환율은 상승)했다가 연말에 그나마 16%로 진정된 바 있다. 당시 달러 대비 루피화 환율이 60루피대로 올랐다.

이후 중앙은행 경상 적자 관리가 강화되고 물가 안정이 보태지면서 기복은 있었지만 60루피대에 머물렀고 올 1월 63루피대에서 안정됐다. 문제는 지난 6월 이후 터키·아르헨티나 등 개도국에서 불어온 금융·외환 위기다. 인도는 높은 성장률과 충분한 외환보유액 등으로 별다른 충격을 예상치 않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불씨가 지펴졌다. 인도 경상수지 적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0.7% 였으나 2017년 1.9%, 2018년엔 2.4%에 이를 전망이다.

루피화 가치는 연초 대비 7월 말까지 7.7% 하락했으나 8월에는 하락 폭이 11.4%, 10월 16%로 확대되면서 아시아 통화 중 최악을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루피화 급락의 피해자다. 만약 연초 인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면 뭄바이주식거래소 센섹스지수(BSE SENSEX) 기준 8월 28일 최고점(지수 3만8896)에서 15%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같은 기간 루피화가 15.6%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수수료를 제하고 달러로 환전한다면 최종 수익률은 손해다.

인도 최대 백화점인 퓨처 리테일의 청바지 매장./블룸버그
총선 앞두고 물가 안정 대신 고성장 택해

외국인 투자가들은 인도 금융시장을 떠나면 되지만 국민은 처지가 다르다. 대신 물가 불안감과 불만이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지난 10월 수도 델리에는 곡물 가격 하락과 원재료 비용 상승으로 불만이 고조된 농민 3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달래기에 나섰지만 추가 소요가 예상된다.

모디 총리는 내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표심 얻기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농민에게는 곡물가 최저지원가격(MSP) 인상, 부채 상환 연기 등 맞춤형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보여줄 건 역시 전 정권보다 높은 성장률이다. 인도 일간지 이코노믹 타임스 선거 데이터 모델에 따르면 현 총리가 전임 정권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경우 재임 가능성이 60%로 높아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디 총리는 재신임을 장담할 수 없다. 인도 경제는 모디 정부에서 지난 4년간 평균 7.2% 성장했다. 이번 회계연도에 8% 성장해야 겨우 전임 정권 7.35%에 근접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마저 어렵다면 적어도 2017년 6.2%보다는 월등히 나은 성장률 수치를 내놓아야만 이목을 끌 수 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모디 정부는 물가·환율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월 초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과연 이 승부수는 묘수가 될까, 악수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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