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로스차일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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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02 03:00

      18세기 빈민가 게토서 동전 팔던 유대인 가정… 워털루 전쟁 때 채권 사고팔아 대박

      로스차일드 가문을 시작한 유대인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3~1812)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가(게토)에서 옛날 동전 판매와 지역 영주의 어음 할인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당시 건물들은 별도의 번지수가 없이 '금빛 돌(Goldstein)'이나 '배(Schiff)'와 같은 표지판으로 구별했다. 마이어의 집엔 '붉은(roth) 방패(Schild)' 모양의 사인이 있었고, 성(姓) 로스차일드(Rothschild)는 여기서 시작했다.

      마이어의 다섯 아들 중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지킨 장남 암셸 마이어 외에 살로몬(오스트리아 빈)·나탄(런던)·카를(나폴리)·제임스(파리) 등 나머지 형제들은 당시 유럽의 주요국 수도로 흩어져 재무 담당 고관들에게 접근해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나탄을 정점으로 해 각자 습득한 최고급 정보를 비둘기와 인편으로 하루에도 수차례씩 공유하면서 막대한 부를 일궜다. 1815년 6월 18일 영국 웰링턴 공작이 벨기에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군을 격파했을 때에도 나탄은 제일 먼저 승전(勝戰) 소식을 접했고 곧바로 영국 정부 채권(콘솔채)을 몽땅 팔았다. 삽시간에 "영국이 워털루에서 졌다"는 괴소문이 번졌고, 콘솔채는 폭락했다. 그리고 나탄이 다시 콘솔채를 헐값에 대량 매입한 직후 승전 소식이 전해졌고 가격은 폭등했다.

      19세기는 로스차일드의 세기였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 영국의 웰링턴 공작, 디즈레일리 총리가 다 가문의 영향력하에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유럽 각국에 돈을 빌려주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국제통화기금(IMF) 역할을 했다. 가문의 일대기를 쓴 프레데릭 모턴은 '일가가 19세기에 모은 재산은 4억파운드로 추산되며, 그보다 앞선 독일의 푸거가(家)나 훗날의 록펠러가도 이처럼 많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1875년 11월 이집트 왕이 자신의 수에즈운하 주식을 400만파운드(현재가 약 6557억원)에 내놨을 때에 이를 가장 먼저 안 측도, 이런 돈을 바로 내놓을 재력을 갖춘 가문도 로스차일드밖에 없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재산이 500만파운드가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패밀리 멤버들이 100% 소유한 비즈니스는 7대에 걸쳐 상속되면서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고, 재산은 계속 쪼개졌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최대 부자라는 제네바의 벤저민 드 로스차일드는 올해 포브스 부호 랭킹에서 겨우 19억달러로 1284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