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이름을 함부로 쓰지말라" '250년 가문의 전통' 며느리가 지켰다

입력 2018.11.02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8) 로스차일드 가문의 여걸(女傑)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최초의 여성 CEO
英·佛과 스위스 제네바 두 패밀리로 갈라진 6대손, 이름 소송戰

/이철민 기자
250여 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금융 가문인 유럽 로스차일드(Rothschild)가에서 두 패밀리가 지난 수년간 치열하게 맞붙었던 소송전이 지난 6월 말 조용히 마무리됐다. 소송의 한편에는 가문의 영국 패밀리가 운영해 온 N M 로스차일드 부자(父子)은행을 2012년 인수해 영·프랑스계 패밀리를 아우르게 된 다비드(David) 드 로스차일드(75)의 '로스차일드 앤드 컴퍼니'가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자산 관리 비즈니스를 중점적으로 키워온 벤저민(Benjamin) 드 로스차일드(55)의 '에드몽(Edmond) 드 로스차일드 그룹'이 있었다.

아들 중심 전통 깨고 며느리가 CEO

다비드와 벤저민은 1760년대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시조 마이어 암셸의 6대손이자, 둘 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마이어의 다섯째 아들 야코프(제임스)의 후손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언은 '화합'이었다. 그래서 같은 항렬끼리는 아무리 촌수가 멀어도 서로 '사촌(cousin)'으로 부른다. 그런 패밀리가 가문의 전통이 무색하게 다툰 대상은 바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이었다. 다비드가 영국 패밀리의 은행을 합병해 회사 이름을 '파리 오를레앙'에서 '로스차일드 앤드 컴퍼니'로 바꾸고 영국계 패밀리가 쓰던 '로스차일드 그룹'이란 이름도 혼용하자, 제네바 패밀리에서 "이름이나 이름 첫 글자 없이 로스차일드라는 성만 쓰는 것을 금한 불문율(不文律)을 깼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결국 두 패밀리는 앞으로 회사명에 '로스차일드'란 이름만 단독으로 쓰지는 않기로 합의했다. 서로 얽힌 지분 관계도 말끔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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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혜연
두 패밀리가 다툰 데에는 원래 기업 인수합병(M&A) 거래가 주축인 투자은행 중심의 파리 패밀리가 제네바 패밀리의 주력 비즈니스인 자산 관리와 같은 프라이빗 뱅킹에 뛰어든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여기에 다른 여러 가지 감정싸움이 겹치면서 더 추악해질 수도 있었던 이 분쟁은 다비드가 지난 4월 아들 알렉산드르(37)에게 대표직을 물려주고 아들에게 짐을 주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극적인 타협을 이룰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대대로 아들에게만 사업을 상속하며, 딸과 사위의 경영 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이름을 건 이 싸움을 주도한 이는 벤저민의 아내이자 현재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Ariane·53)였다.

로스차일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인 아리안은 2015년 1월 CEO에 취임하고 3월에 바로 '이름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외부인으로서 가문에 '이름 분란'을 일으켰다는 일부의 따가운 시선에도 당당하다.

그는 "남편과 딸 넷은 태생적으로 로스차일드인데, 누군가는 이걸 지켜야 한다"며,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의 회사가 나중에 타인에게 팔리면 가문의 후손들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박탈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1862년 파리 패밀리의 수장 제임스가 자신을 찾아온 황제 나폴레옹 3세(오른쪽)에게 돈다발을 넘겨주고〈왼쪽 사진〉, 영국 패밀리의 라이어널(3대·1808~1879)이 현금과 채권이 가득한 상자와 자루들에 둘러싸여 왕들의 절을 받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풍자만화들./위키피디아
해외 사업 줄이고 자산관리업 집중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그룹'은 1560억유로(약 203조원)의 고객 자산을 관리하고 전 세계에 2700여 명 직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CEO 아리안을 그저 결혼으로 한순간에 명예와 부(富), 지위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는 1999년 결혼하기 전에 이미 여러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잘나가는 은행가였다.

독일 제약사 임원이었던 아버지의 근무 지역을 따라 엘살바도르에서 태어났고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등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파리 대학(경영학 학사)과 뉴욕 페이스대(MBA)에서 공부한 뒤 소시에테제네랄과 AIG 보험사의 파리 사무실에서 주식 트레이더로 일했다. AIG의 주요 고객으로 남편 벤저민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의 이름에서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트와 레이싱 카 몰기를 즐기는 타고난 한량(閑良)인 남편을 대신해서 회사를 이끌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아리안이었다. 아리안은 현재 자산 관리는 물론 유럽 부호 가문의 전통적인 취미 사업인 포도원 재배와 와인 사업, 호텔·리조트, 요트 클럽, 매년 수천만유로를 기부하는 재단 등 주요 비즈니스에 일일이 개입한다. 또 능력 있는 여성들을 고위직으로 승진시켰고, 한때 호황 시장을 따라 마구 팽창했던 해외 사업도 축소해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아리안은 "자녀들을 보살피는 엄마처럼, 경영도 여성의 성격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무기는 비(非)외교적인 직설 화법과 간결성이다. 이런 기질은 9~18세 시절을 보낸 아프리카 생활에서 비롯했다. 그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빈곤과 죽음, 곤경에 찌든 환경에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삶의 소소한 것들에도 크게 웃고,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독립적인 마인드는 아리안이 지난 250여 년간 로스차일드 가문의 결혼한 여성 중에서 유일하게 유대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비(非)유대교인이란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이끄는 패밀리 자선 재단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대의에 동의하고 유대인의 삶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유대교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그저 편하자고 개종하고 실제론 안 믿는 위선은 더 나쁘다"는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
"가문의 명성 지켜야… 돈도 가려받아"

주력 비즈니스인 자산 관리에서도 그는 독특한 철학을 고집한다. 더 이상 부자들은 돈만 벌어다 주는 은행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특히 젊은 부유층 고객들은 부와 자선·기부 활동의 균형, 창업·사업 확장과 자선 행위를 연대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이는 바로 로스차일드가 수 세대 동안 해 온 일"이라고 말했다. 아리안은 과거 이스라엘 매체인 하레츠 인터뷰에서 "눈앞의 수익만 생각해 인도네시아의 야자유 생산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 노동인권 착취 논란을 들었다. 그는 "가문의 명성을 지켜야 해, 아무리 거액이라도 결코 받지 않는 돈이 있다"고 말했다.

벤저민·아리안 부부에겐 아들이 없다. 그래서 가문의 '아들 상속' 전통을 고려할 때 아리안이 CEO인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그룹'도 언젠가 파리 패밀리의 새 수장인 알렉산드르나 가문 내 또 다른 남성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리안의 생각은 다르다. "성공적으로 잘 경영된 많은 기업이 여성에게 상속되고 있어요. 그게 트렌드예요." 그는 여전히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단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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