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베르디, 잔 다르크를 화형 안 당하고 전장서 죽게…

    •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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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02 03:00

      [CEO 오페라] (10) 베르디 '조반나 다르코'

      1905년 황성신문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을사오적을 규탄했던 글이다. 필자 장지연(1864~1921)은 구한말 계몽운동가였는데, 그가 소설도 썼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소설 중에 1907년에 발간된 '애국부인전'이라는 책은 잔 다르크의 이야기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아녀자의 몸으로 일어선 소녀의 사연을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에 전하여,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했을 것이다. 잔 다르크라면 '애국부인전'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가 영국의 침입을 받았던 백년전쟁 기간에 프랑스의 시골에 잔 다르크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마을 뒤편의 성모상 앞에서 매일 절실하게 조국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어느 날 그녀는 성모로부터 "칼과 투구를 줄 테니,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결국 그녀가 프랑스군의 선봉에 서서 승리를 이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후에 그녀는 프랑스인들에게 마녀로 몰려서 화형을 당하였는데, 그녀 나이 19세였다.

      나라 구한 뒤 왕권 옹호한 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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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 2008년 파르마 레조 극장 공연 장면. 스베틀라 바실레바가 주연을 맡았다. / 풍월당

      당시 영국이 프랑스를 침략한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 정국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샤를 6세 왕은 정신병 증상을 보이면서 국정을 돌볼 수 없었고, 귀족들이 섭정을 하였다. 왕은 아들인 샤를 7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지만, 귀족들은 샤를 6세의 양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귀족들은 샤를 7세의 즉위를 방해하였고, 그는 왕이 되었지만 권위를 세우기 힘들었다. 이에 잔 다르크는 왕의 군대를 도와서, 왕이 대관식을 치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녀가 마녀로 몰린 것은 귀족이 집권할 기회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의 모함으로 그녀는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판결받고 화형을 당하였다. 실제로 잔 다르크는 화형을 당한 지 25년 후에 복권되고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지금 잔 다르크는 프랑스 국가의 수호성인이다.

      이 이야기를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가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로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대표적인 '시민 비극'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시민 비극일 수 있을까? 왕은 거의가 귀족 출신이지만 일단 왕이 되면 일국의 왕이며 백성의 보호자인 것이지, 더 이상 일부 계급이나 특정 집단의 옹호자가 아닌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올바른 유럽 군주의 길이었다. 아니 실러는 그가 소망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렇게 그려내었다. 왕은 온 국민의 왕이라는 것을 천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민정신을 그린 '오를레앙의 처녀'를 오페라로 만든 작곡가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잔 다르크의 이탈리아식 표기)'는 최근 들어서 세계적으로 공연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뒤늦게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베르디는 실러의 원작을 오페라로 작곡하여 1845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하였다. 당시 밀라노는 오스트리아에 점령당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영국의 침략을 향해 애국 충정에 불타는 소녀의 활약을 보면서, 밀라노 시민들도 당연히 오스트리아를 향해서 일어나고 싶은 피가 끓었을 것이다.

      귀족들에게 마녀로 몰려 화형

      베르디는 실러의 원작을 간략하게 줄여서, 잔 다르크를 마녀로 몬 것이 귀족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로 설정하였다. 딸을 성녀로 인정하지 못하고 그녀를 믿지 못하는 아버지는 딸을 마녀로 판단한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어리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순결한 몸과 마음을 모두 헌신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자기의 자식이나 제자 혹은 부하의 성장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물을 그린 베르디의 설정은, 실러의 연극과 같은 정치적인 복잡함은 사라졌지만, 대신에 '조반나 다르코'를 깊은 인간 심리 드라마로 만들어내었다. 잔 다르크가 부당하게 화형당하는 것을 차마 용납할 수 없었던 실러와 베르디는 그녀가 마녀의 누명을 벗고 다시 한 번 출정한 전투에서 영광스럽게 전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죽어가는 그녀는 마지막 노래에서 세상 모든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노래한다. 특히 2016년 이탈리아 파르마의 파르네제 극장에서 올라간 프로덕션의 영상을 보면 잔 다르크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현대의 전쟁 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러와 베르디의 이야기가 결코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