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급변하는 시대, 전 직원이 한 우물만 팠더니…

    •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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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02 03:00

      [박찬희의 까칠한 경영] (1) '핵심역량 강화'의 함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끝없는 R&D(연구개발)를 통해 핵심 역량을 키워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쟁력을 일구자." 회장님 말씀이나 경영전략 자료에 흔히 나오는 말이다. 과연 기업 전략 현실을 볼 때 맞는 말일까.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고 가솔린 엔진기술을 키워서 성능과 가격에서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만들면 세계시장을 석권할까. 구매자가 그 탁월한 성능을 알지 못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면, 최고 엔진 기술도 '미래를 위한 작은 기반'에 그친다. 전기자동차가 대세가 되면 가솔린 차는 주유소 찾기도 힘들고 엔진 부품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구글·애플이 자동차 두뇌를 장악한 세상이 되면 현대자동차나 BMW는 세련된 디자인에 집중 투자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MP3나 카메라 제조사는 어떻게 됐을까. 고객이 가치를 쳐주는 고기능 MP3나 DSLR 카메라는 만들 수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아니면 스마트폰 모듈 공급업체로 남아 '을'의 설움을 겪어야 한다. 차라리 진동 감지 기술, 실시간 전송 같은 개념으로 모바일 생태계에 맞는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압도적 경쟁 우위?… 변화 빠를 땐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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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종규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기용은 기량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성이나 중계권료 수입 같은 사업적 요소가 고려된다. 프로 스포츠는 흥행이기 때문이다. 명인이 혼을 담아 내놓은 음반은 세상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리는 '이박사 메들리'에게 밀릴 수 있다. 심혈을 기울인 명품 기술과 제품도 세상이 인정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맞물린 생태계에서 사업 주도권은 돈을 지불하는 사용자와 접점(user interface)을 확보한 참가자에게 돌아간다. 사용자 체험(user experience)과 감성이 더해지면 사용자 접점은 더 강화된다. 이런 주도적 사업자가 '갑'이 되어 혼을 담아 명품 기술과 제품을 만든 '을'을 서럽게 한다.

      물론, 기술 역량 폭이 넓고 기초연구가 탄탄하면 변화하는 사업 생태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기초가 있어야 다른 기업과 협력도 할 수 있다. 과거 세계챔피언 문성길은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진 뒤 권투에서 성공했고, 가창력과 끼를 겸비한 아이돌 가수는 트로트도 잘 부르고 TV 예능에서도 빛을 발한다. 기업으로 바꿔 말하자면 기초 기술 역량과 이를 위한 투자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역량은 결국은 사업 주도권 확보에 도움이 될 때 의미가 있다. 어떠한 형태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 역량을 갖추면 될까. 세상 모든 변화를 내다보고 대응할 수도 없고 막대한 돈과 인력이 필요하다.

      천하제일 무기를 모아서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면 압도적 우위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그런 성을 만드느라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면 다른 전선에 약점이 생긴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가 독일과 국경지대에 쌓은 '마지노선(Maginot Line)'이 그런 사례다. 당시 200억프랑이란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해서 300㎞에 달하는 최첨단 요새를 구축했지만, 기갑부대를 앞세운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해서 전격적으로 프랑스 항복을 받아냈다. 탱크와 비행기를 만들 돈으로 지은 요새가 무력한 콘크리트 더미가 돼버린 셈이다. 그나마 요즘처럼 건물은 두고 사람만 없애는 중성자탄이나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가는 벙커버스터가 나오면 마지노선은 더 무기력했을 것이다.

      핵심 역량은 원래 유연한 기초체력 의미

      압도적 경쟁 우위에 대한 열망이나 고집은 '핵심 역량'이란 말로 포장된다. 그에 따르는 '장인정신'과 '성실한 노력'이라는 말은 얄팍한 상술과 달리 대중 심금을 울린다. 핵심 역량보다 이것저것 다 손대는 '문어발식 경영'을 일삼는 재벌을 비판할 때 꼭 '한 우물을 파라'는 정의로운 훈시로 이어진다. 좋은 말에 힘이 붙으니 아무 데다 막 갖다 붙인다. 과거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을 내걸고 해외로 갈 때는 시장 개발과 금융이 대우그룹의 핵심 역량이라 칭송하다가, 그룹이 해체되고 나니 첨단 기술과 핵심 역량이 없던 기업의 한계라고 비판한다. 장점을 살리는 사업을 하라는 가르침까지 나온다.

      원래 핵심 역량은 특정 제품과 원천 기술에 집착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략 목표와 경쟁 상황에 맞게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기초적 역량 뿌리를 키우고 이들을 조합해서 (조직 단위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노선은 그 방어력과 배경이 되는 전투력을 상대인 독일군 작전 경로나 프랑스군 현장 상황에 맞춰, 필요하면 다른 형태의 진지전으로 전개하라는 뜻이다.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하는데, 잘하는 것 하나에 매달리면 자기 발을 스스로 묶는 꼴이고, 그 전략은 경쟁자에게 훤히 읽힌다. 한 우물을 파더라도 넓게 파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봐야 허탕치는 일이 없다. 물론 우물 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펌프나 수도가 발명되면서 우물이 필요 없어지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특정 제품·기술로 해석하면 잘못

      스마트폰 사업을 하려면 장인정신도 좋지만 사람들이 음악과 영상을 어떻게 만들고 소비하는지,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은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면서 갖고 놀아봐야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서 살면서 시키는 일만 하는 '맹목적 근면성'을 숭배하는 회사에선 어려운 일이다. 삼성전자 직원이 과연 1주일에 몇 시간이나 모바일 세상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을까. 그저 구글과 아마존이 만드는 세상을 따라만 가는 건 아닐까.

      세상에 맞설 자신은 없는데 지배권력은 지키려는 통치자에게 난공불락의 성은 유혹적이다. 성 지을 돈도 부족한데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며 들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을 벌이는 장군을 보면 불안할 뿐이다. 하던 일에 몰두하는, 무능하지만 배신할 수 없는 부하가 훨씬 믿음직하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알고 보면 '강·약점'과 크게 다르지도 않는 '핵심 역량'. 이 말이 한눈팔지 말라는 기강 확립 테마처럼 되면 맹목적 근면성이 규범이 된다. 무능한 경영자와 우직한 구성원이 합작하는 미련한 경엉. 손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