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공개하면 보고 체계 복잡해져… 先代에 대한 존경심으로 변화에 대처"

입력 2018.10.19 03:00

[Cover Story] 장수 가족 기업 동아리 '에노키안협회'

'창업 350년' 반 에그헌 앤 코 15대손, 빌럼 반 에그헌 前 에노키안협회장

[Cover Story] 장수 가족 기업 동아리 '에노키안협회'
김남희 기자

1662년 벨기에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한 신교도인 야코프 반 에그헌(Van Eeghen)은 암스테르담에서 조그만 무역 회사를 열었다. '반 에그헌 앤 코'의 시작이다.

처음엔 리넨(마직류)과 울(양털) 등 직물을 거래했고 나중엔 대륙을 넘나들며 향신료, 커피, 와인, 설탕 등 식품을 사고팔았다. 1990년대 말, 당시 회사 최고경영자(CEO)였던 빌럼 반 에그헌은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비타민과 영양 보충제 등 '21세기의 향신료'라 부르는 건강 기능 식품 분야다. 현재 이 회사는 '반 에그헌 펑셔널 인그리디언츠'란 자회사를 만들어 다농, 네슬레 같은 식품 대기업에 건강 기능 식품 원료 등을 공급하고 있다.

회사는 350년 넘는 시간 동안 시대 흐름을 타고 다양한 업종으로 변신했지만, 주인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반 에그헌 가문의 후손이 대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1976년부터 약 38년간 회사를 이끈 빌럼 반 에그헌은 "회사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 새 사업에 뛰어든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네슬레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가문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창업자 15대손인 그는 2014년 조카인 16대손 예룬 반 에그헌에게 CEO직을 물려줬다.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 직후 그는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가족 기업들 모임인 프랑스 에노키안협회 협회장(2014~2017년)으로 활동했다. 올해부터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사인 보석업체 멜레리오 멜레의 파리 매장에서 그를 만났다.

선대에 대한 존경심이 장수 비결

―에노키안협회 회원사들 장수 비결은.

"이 회사들 모두 선대가 이룬 것을 존경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대를 거쳐 이어져 내려오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회원사 대부분은 주식시장에 회사를 상장하지 않고 비공개 가족 기업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기업 공개를 하면 보고 체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경영진이 앞으로 방향에 집중하기 어렵다."

―에노키안협회는 가족 기업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하나.

"협회는 단순히 '비즈니스 클럽'이 아니다. 승계 방식에 대한 서로의 경험과 수백년간 가족 기업을 이어오면서 겪은 어려움을 공유하며 더 발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새 회원사를 받아들일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이다. 사람 간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후보 회사는 각 회원사가 거부할 수 있다. 회원사 간 업종 다양성을 높여 시야를 넓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카가 '반 에그헌' 회사 경영을 물려받았다. 승계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

"내가 은퇴할 시기가 됐을 때 감사회와 함께 승계를 논의했다. 감사회는 경영이사회를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모든 가족 주주에게 회사를 맡고 싶으면 신청서를 내라는 편지를 썼다. 가문의 누구에게도 회사에 참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유 선택이다. 가문 안에 적당한 후보가 없으면 외부에서 경영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원자가 꽤 있었다. 외부 평가단이 최종 후보자를 추려 감사회에 추천했다. 현 CEO인 예룬이다.

예룬은 전혀 다른 분야인 금융회사를 다녔고 그의 아버지도 우리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지만, 그가 CEO를 맡은 후 회사는 더 성장하고 있다. 경영에서는 손을 뗐지만 감사회 위원으로 여전히 회사에 참여하고 있다."

인내심 갖고 멀리 보라

―회사가 350년 넘게 장수한 비결은 뭔가.

"변화에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바뀌는 시장 환경에 늘 빨리, 유연하게 적응했다. 2000년대 들어 핵심 사업은 건강 기능 식품이다. 영·유아용 분유, 스포츠용 영양 보충제, 노화 방지제 등이다. 현금 흐름이나 단기 매출에 관심을 쏟지 않고 고객과의 신뢰, 제품 기능에 더 신경을 쓴다. 가문에 내려오는 전통인 충성심도 중요 덕목이다. 제품, 활동 지역, 사람에 대한 충성심이다."

―가족 기업을 경영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다. 회사를 팔아버리지 않고 가문의 사업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다. 우리 고객들은 우리 회사와 가문을 잘 안다.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편안하게 생각한다. 오랜 세월 쌓인 이런 전통과 유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한국 장수기업에게 조언이 있다면.

"회사의 가치를 지키고 연속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사업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 내부에서뿐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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