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350년째 시골마을서 짜는 양털 옷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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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0.19 03:00

      [Cover Story] 세계 장수 가족기업 4곳 비결 물어보니

      이탈리아 모직회사 '카노니코'

      이탈리아 북부 중심 도시 밀라노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리면 프라트리베로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알프스산맥의 유명 봉우리 마터호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풍경이 뛰어나지만, 이 마을은 유독 관광산업과 거리가 멀다. 마을 사람은 모두 합쳐봐야 700명 남짓. 낙후한 산골 마을일 것만 같은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털 공장 카노니코(Canonico)가 있다. 1663년 이 마을 한 헛간에서 문을 연 카노니코는 이후 355년째 한자리에서 양털로 모직 옷감을 만들고 있다. 마을 사람 700명 가운데 450여 명이 여기서 일한다. 사실상 마을 전체가 카노니코와 함께 살아간다고 할 만하다.

      마을 사람 700명 중 450명이 직원

      "카노니코는 회사라기보다 작은 공동체에 가깝습니다. 저희 아버지랑 일했던 분들은 지금 저랑 일하는 분들의 아버지셨고, 저희 할아버지의 동료분들 역시 이분들의 할아버지죠."

      카노니코를 설립한 바르베리스 카노니코 가문의 15세손 프란체스코(Francesco·45)는 WEEKLY BIZ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장수 비결로 '소속감'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카노니코의 숙련된 기술자들은 매년 1만㎞나 되는 옷감을 만든다. '패션 왕국' 이탈리아에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다. 남성복 가운데 고가품으로 손꼽히는 벨루티나 에르메네질도 제냐, 휴고 보스 같은 브랜드가 카노니코 옷감을 사용해 옷을 짓는다. 국내에서는 결혼식 예복으로 명성이 높다. 프란체스코는 "카노니코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옷장에 우리 옷감으로 만든 양복은 한 벌쯤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섬유 업체가 이렇게 외딴 지역에 자리 잡은 사례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 지역은 35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마을을 둘러싼 성벽도 여느 이탈리아 도시처럼 중세에 지어진 그대로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오로지 카노니코에서 일하는 사람만 바뀌었다. 전기는 1920년이 넘어서야 들어왔다. 그전까지 250년간 카노니코의 기술자들은 기계를 쓸 수 없어 모든 일을 손으로 처리했다. 영국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크롬퍼드 방적 공장'이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섬유업에서는 자동화와 규모의 경제가 특히 중요하다. 카노니코는 경쟁 업체들이 중국과 인도에 더 큰 공장을 짓고, 낮은 인건비를 내세워 생산량을 늘릴 때도 한결같이 처음 시작한 자리를 지켰다.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300년 넘게 유지한 명성을 지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좋은 식당에서 최고급 식재료를 쓰는 것처럼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양털을 가장 많이 사들입니다. 중국에도 원단 공장은 많지만, 결국 세계적 수준의 옷감을 구하려면 이탈리아로 와야 한다는 거죠."

      카노니코는 매년 양털 300만㎏을 사용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선별한 최상급 양털은 구매량을 앞세워 입도선매(立稻先賣)한다. 모든 양털은 프라트리베로 공장에서 가공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 상표를 달고 네팔 카트만두와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까지 팔려 나간다. 프란체스코는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 옷감을 누구보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해가며 만들기 때문에 우리 제품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로봇 도입 이후에도 근로자 수 더 늘어

      프란체스코가 말하는 '전통'은 이전처럼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카노니코는 중국·홍콩 시장 수요가 불어나며 주문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기술자들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최신식 설비로 공장을 자동화했다. 사람이 현미경을 끼고 직접 하던 작업은 이제 로봇이 대신하지만, 근로자 수는 도리어 늘었다. 카노니코는 지난 2년간 40명이 넘는 기술자를 새로 고용했다. 프란체스코는 "각 브랜드의 최고급 옷감은 소재에서 차별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얼마나 마감을 깔끔하게 해냈느냐'에서 가치가 결판난다"며 "완성된 옷감을 손으로 만져보며 '너무 건조하지 않은지' '털이 한곳에 몰리지 않았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숙련된 기술자가 손으로 만져보는 편이 가장 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