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시대 원하지 않는 정보 땐 뇌는 스스로 귀 닫는다

입력 2018.10.19 03:00

탈리 샤롯 MIT大 교수 '데이터 홍수 속 상대 설득 잘하는 법'

인터넷 시대에는 자신의 신념에 맞는 데이터 찾기 쉬워 '편향' 갈수록 깊어져
설득 잘하려면 공통점을 강조하고 "틀렸다" 지적보단 우회해 대안 내놔야
뇌는 좋은 걸 향해 가… 조직 내 부하 직원이 역동적 일하길 원하면 채찍보다는 당근 줘야

2015년 9월 런던대(UCL) 심리학과 탈리 샤롯(Sharot) 교수는 미 대통령 후보 공화당 경선 토론회를 보고 있었다. 소아신경외과 의사 벤 카슨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이민·세금 문제에 이어 자폐증에 관한 토론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아이들이 맞는 예방접종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다. 카슨은 "그와 관련해 수없이 많은 연구가 이뤄졌는데 백신 접종과 자폐증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폐증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작고 예쁜 아기에게 마치 주유하듯 말에게나 써야 할 주사기를 꽂는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얼마 전에도 두 살 반짜리 아이가 백신을 맞고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열병에 결렸고, 지금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받아쳤다.

샤롯 교수는 빅 데이터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해 자기와 맞는 정보만 흡수할 수 있어 ‘확증 편향’이 심화하고 결과적으로 대립과 반목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통점을 찾아 공감하는 대화법을 추천했다.
샤롯 교수는 빅 데이터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해 자기와 맞는 정보만 흡수할 수 있어 ‘확증 편향’이 심화하고 결과적으로 대립과 반목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통점을 찾아 공감하는 대화법을 추천했다. /유튜브
탈리 샤롯(Sharot)
그 순간, 신경심리학을 전공한 이 사회과학자 머릿속에도 트럼프의 협박이 날아와 박혔다. 아무 실체적·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본능은 '혹시 백신 접종하면 아이가 아프진 않을까' 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평생 과학을 연구한 샤롯 교수조차 이럴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얼마나 심할 것인가. 이후 샤롯은 "왜 우리는 어떤 주장이나 근거는 받아들여 생각을 바꾸는 반면, 다른 건 무시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연구했다. 그 성과를 담아 펴낸 책이 '영향력: 뇌과학이 밝히는 영향력의 비밀'이다. 현재 미 보스턴 MIT대 뇌·인지과학과 교환교수로 와있는 샤롯 교수를 만나 뇌와 인간 행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를 기업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과거 '낙관주의 편견(The Opitimism Bias)'을 주제로 연구한 결과물은 2011년 6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믿고 싶은 데이터만 흡수하는 뇌 구조

―'빅 데이터' 시대는 정보가 많아졌는데 여전히 사회는 혼란스럽다.

"데이터 자체는 사실 사람들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데이터가 이러이러하다고 해서 그대로 행동하나?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건 누구나 사실이라 알고 있지만 다 그렇게 하진 않는다. 종교는 또 그 반대다. 인간은 원래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데이터는 믿지만 그렇지 않은 데이터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인터넷 시대엔 이런 편향이 갈수록 깊어진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는 자기 신념에 맞는 데이터를 찾기 쉬워진다. 누군가 올린 잘못된 정보를 보면서 '역시~ 그렇지' 하고 기존 자기 의견을 과신하고 바꾸지 않는다. '구글은 언제나 내 편'이라지 않은가. 얼토당토않은 주장, '하늘을 나는 코끼리를 봤다'고 하면 상식에 따라 '말도 안 돼'라고 반응한다. 그렇지만 뭔가를 강력하게 믿고 있다면 데이터 과학이 설 자리를 잃는다. 새로운 정보라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내용이라면 뇌가 스스로 귀를 닫는다."

― '가짜 뉴스(fake news)'가 설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맥락이다

"문제는 가짜 뉴스 자체보다 워낙 뉴스가 넘치다 보니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누가 이걸 가짜라고 얘기해도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건 정부 차원에서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짜 뉴스를 통제하고 처벌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회사들도 각성해야 한다. 인종차별적이면서 폭력적인 댓글에 대해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개인 역시 특정 뉴스를 보고 그냥 받아들이기보다 여러 경로로 대조 검토(cross check)하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된다."

목표를 시각화하면 설득 쉬워

탈리 샤롯(Sharot)
―어떤 사람들 행동에 변화를 주려면 차이점(differences)보다는 공통점(similarities)을 강조하라고 충고했는데,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 의견이 충돌하면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로운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상사가 잘 받아주질 않는다면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해보라. 우선, 대화하면서 자기 생각을 직설적으로 꺼내기보다 상대에게 단서(clue)를 주면서 옮겨 심는 것이다. 나중엔 결국 상사가 그걸 본인 아이디어처럼 느끼면서 기분 좋게 수용하게 된다. 다음으론 의견이 대립할 때 상대방 생각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단 자기 생각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장님 방식으로 하면 100억원을 손해 봅니다'라고 말하기보단 '제 방식으로 하면 100억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란 얘기다."

―불만이 있고 수동적인 직원(학생)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목표에 집중하게 하고 싶으면 시각화(visualize)하는 게 효과적이다. 뉴욕주 한 병원에서 2차 감염 예방을 위해 의사와 직원들에게 수술·작업 후 손 씻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안내문을 붙이고 '몰래카메라가 보고 있다'고 경고도 해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전자 게시판을 병실에 설치하고 손 씻기 규정을 지키는 직원이 현재 얼마나 많아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자 준수율이 90%까지 치솟았다. 학생들과 연구할 때도 '이번 프로젝트는 ○○저널에 낼 거니까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공통점 거론하며 대안을 제시하라

―그런 상황에서 채찍과 당근 중 무엇이 효과적인가.

"인간 뇌는 나쁜 걸 피해 가고 좋은 걸 향해 간다. 직원이 역동적으로 일하길 원하면 당근을 줘야 한다. 채찍을 쓰면 움츠러든다. 누군가 신속하게 행동해주길 바라면 그걸 하면 즐거워질 것이란 기대를 심어줘야 한다. 뇌는 즐거움을 주는 객체를 향해 움직이고 고통을 유발하는 객체로부턴 떨어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아내에게 '요즘 달리기하더니 날씬해졌네'라고 칭찬하면 아내는 칭찬받았을 때 즐거웠던 기억 때문에 다음에 또 달릴 것이다. 한 건강보험 회사는 이를 교묘하게 활용했다. 가입자가 건강식품을 사 먹거나 운동할 때마다 포인트를 줘 여행·쇼핑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입자들에게 당근(동기 부여)을 주자 건강 생활에 더 신경 쓰면서 자연스레 병원 갈 일이 줄고 보험료 지출도 아낄 수 있었다."

―인종과 지역, 정치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묘하게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게임을 해도 호흡이 맞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편견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럴 땐 공통점을 발견하려 애써라. 둘 다 부모가 계신다든지, 좋아하는 배우가 같다든지, 아이가 어리다든지… 그렇게 공감이 생기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믿기 시작한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상대를 설득하려 할 때도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보다 공통점을 거론하고 우회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효과적이다. 백신이 아이에게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건 한심한 얘기라고 백날 지적해봤자 이미 그 공포에 사로잡힌 부모에겐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UCLA·일리노이대 연구진은 대신 '우리 모두 아이가 건강하길 원하지 않느냐. 그런데 백신을 맞으면 홍역과 볼거리, 풍진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믿음의 씨앗을 뿌려 부모들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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