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외면할 때 믿고 아낌없이… 노벨 생리의학상 낳은 日 제약기업 집념

입력 2018.10.19 03:00

교토대 혼조 교수 22년간 밀어준 오노약품공업

항암제 '옵디보'
항암제 '옵디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토대 특별교수가 선정되자 오사카 중견 제약기업 오노약품공업이 주목을 받았다. 혼조 교수 연구 성과를 실용화해 획기적인 암면역치료약 '옵디보'를 탄생시키면서 혼조 교수 업적이 노벨상으로 이어지게 한 숨겨진 주역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발표 수상 직후 오노약품 주가가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노약품이 주목받는 요인 중 하나는 22년 동안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대학과 2인3각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는 데 있다. 유망한 신약 후보군을 가진 신생 기업을 인수해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글로벌 제약업계 최신 흐름과는 배치한다. 일본에서도 다케다약품공업이 아일랜드 글로벌 제약기업 샤이어를 6조8000억엔(약 68조원)에 매수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오노약품은 제약업계에서도 점점 희귀해져가는 성공 모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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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혜연
대형 제약기업들 거절한 연구 수용

오노약품과 교토대 인연은 혼조 교수 스승 하야이시 오사무(早石修) 교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조 교수와 그는 면역 억제 작용에 관한 연구로 오노약품과 공동 특허를 출원한 바 있다. 혼조 교수 연구팀은 1990년대 연구 결과를 실용화하기 위해 임상 치료와 판매 제휴선을 찾아 일본 대형 제약기업 13곳에 제안서를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오노약품도 처음엔 거절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떠안기엔 중견 제약업체로선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 그러나 교토대와 공동 연구를 통해 1974년 획기적인 분만 유도제 개발에 성공했던 경험이 오노약품을 다시 모험에 뛰어들게 이끌었다. 이후 암면역치료약 연구에 첫걸음을 뗀 미 의료 벤처기업 메다렉스와 개발 협약을 맺었는데, 이 메다렉스를 2009년 글로벌 제약기업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인수하면서 뜻밖에 든든한 후원군을 얻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드디어 옵디보가 탄생했다. 1992년 혼조 교수가 면역세포 단백질 PD-1을 발견하면서 연구·개발에 착수한 지 22년 만이었다. 의료계로부터 "진행성 암환자 생존 기간을 늘린 놀라운 치료약"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 한 의료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옵디보를 쓸 경우, 진행성 폐암 환자 5년 생존율이 기존 암치료법보다 16% 올라갔다.

오노약품공업 매출액과 연구개발비
22년간의 집념 어린 산학(産學) 협동

오노약품이 옵디보 개발을 시작한 1999년 당시 체내 면역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시도는 의학계에서는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노약품은 개발에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성공하면 투자액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보고 교토대 연구진을 지원했다. 대학과 기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목표를 향해 달린 산학 협력 모범 사례인 셈이다. 일본 제약회사 에자이가 내놓은 치매 치료약 '아리셉트'와 다이이치산쿄의 고지혈증 치료제 '메바로틴' 같은 신약도 이런 산학 협력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영업본부장과 경영총괄본부장을 거쳐 2008년 취임한 사가라교(相良曉) 사장은 "당장 성과보다 연구 장래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은 뚝심이 성공의 발판"이라면서 "향후에도 이런 끈질긴 연구 정신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노약품 강점 중 하나는 높은 연구·개발비 비율. 제약업계에선 보통 매출액 대비 10~20% 정도를 투자하는데 오노약품은 30%대다. 올해도 연구·개발비로 700억엔(약 7000억원)을 할당했다.

약값 과감히 인하…적용 범위 넓혀 대응

처음에 피부암(악성흑색종) 치료약으로 승인된 옵디보는 신약이 다 그렇듯 약값이 너무 높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오노약품은 지난해 2월 판매 가격을 73만엔에서 50% 내렸고, 지난 4월 추가로 24%를 인하했다. 오는 11월에도 약값을 또다시 내릴 예정. 옵디보 매출 비중이 컸던 오노약품으로선 타격을 입을 수 있었지만 적용 암 종류를 늘리는 전략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보험 적용 대상 암 종류가 늘어나고 환자 수가 많은 폐암과 위암 등에서 옵디보 사용 승인을 받은 점이 약값 인하를 단행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바탕이다. 옵디보는 피부암뿐 아니라 신장과 뇌, 위암, 폐암 등 7가지 다른 암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덕분에 기존 글로벌 제약사 머크가 장악하던 면역 항암제 시장에서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UBS증권 세키 아쓰시 바이오의약 담당 연구원은 "머크 제품이 폐암 면역 항암제에서 강세지만, 아시아에선 위암 면역 항암제 시장이 큰데 여기선 오노약품이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옵디보는 지금까지 2만5000여건 암 치료에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오노약품은 앞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가라 사장은 "한국과 대만에 이미 진출했고 유럽과 미국 시장 공략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미국 등 60여 개국에서 사용이 승인된 옵디보는 50종류 이상 암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암 면역시장 성장하며 실적 상승 전망

미 의약 컨설팅 기관 IQVIA는 지난해 암 면역 관련 세계시장 규모는 55억달러(약 6조2400억원)이고, 이대로 성장을 지속한다면 5년 안에 100억달러(약 11조3500억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분야를 개척한 오노약품은 로열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1300억엔(로열티 포함)이던 옵디보 매출액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다른 글로벌 제약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오노약품은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대형 병원 등 의료 전문 기관을 상대하는 의약정보담당자 MR(Medical Representative)을 50% 증원했다. 올해에만 280명 늘렸다. 암 전문 병원 의사를 상대로 영업과 관련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하려면 전문 지식을 보유한 직원이 나서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노약품은 옵디보의 특허가 지속되는 2031년까지 안정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옵디보 이후'다. 지금은 옵디보 성공으로 축적된 암 분야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암면역치료법 'CAR-T세포' 등으로 '제2의 옵디보' 탄생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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