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사이클에 주기가 있다? 사실은 사람들의 심리 변동이 있을 뿐

    • 홍춘욱 키움증권 상무

입력 2018.10.05 03:00

Foreign Book Review 'Mastering the Market 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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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트리 캐피털의 하워드 마크스 대표(왼쪽)는 경기 주기 자체보다는 사람들 심리가 어떻게 쏠리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지난 3월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투자 심리가 냉각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오른쪽)./블룸버그
"1997년에 외환 위기,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으니 2017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5년 말 이런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이른바 '경기 10년 주기설'에 현혹되었던 사람은 2017년(주식)과 2018년(서울 아파트)에 연이어 찾아온 귀한 투자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경제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좋아지고 나빠진다면, 경제를 전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나 '10년 주기의 경기 순환'은 자의적 짜 맞추기에 불과하다. 당장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2011년 8월에 경기 침체가 발생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0년마다 금융 위기'… 과연 맞나?

결국 10년 주기, 혹은 20년 주기 같은 주장에 현혹되기보다 자신의 판단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투자자들이 판단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건 실전 경험이다. 하지만 실전 경험을 섣불리 쌓으려다 복구하기 어려운 큰 손실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바로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이다.

국내에는 경기 순환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책이 많지 않아 답답했는데, 세계적인 운용사 '오크트리 캐피털' 창업자 하워드 마크스가 최근 발간한 '경기 사이클 정복하기(Mastering the Market Cycle)'는 이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오크트리 캐피털은 2017년 말 기준으로 약 1000억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대체 자산' 운용사다. 특히 오크트리 캐피털은 투자 부적격 등급의 채권, 그리고 부실 채권 투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투자 부적격 등급의 채권이란 'BBB-' 등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용 등급을 가진 채권(이하 '정크본드')을 의미한다. 정크본드는 파산 위험이 높기에 대부분의 투자자가 기피하는 대상이다. 물론 이런 부분에 투자 기회가 있다. 누구나 기피하는 자산일수록 높은 수익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크본드 투자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존재한다. 바로 정크본드를 발행한 기업들이 경기에 대단히 민감하다는 점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대박'을 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조금만 경기가 나빠져도 채권에 대한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며 파산할 위험이 높다. 따라서 정크본드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경기 순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미래는 가능성에 근거한 확률 분포

이 대목에서 잠깐 하워드 마크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래는 일어나도록 정해진,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각각의 가능성에 근거한 확률 분포로 봐야 한다. … 내 생각에 투자의 세계에서 성공이란 복권 당첨자를 뽑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볼 풀(ball pool)에서 하나의 공을 뽑듯 결정된다."

볼 풀 비유는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투자 판단은 결국 '확률'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를 찾기 힘들 정도다. 10년마다 위기가 온다는 것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 확률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

그럼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하워드 마크스 같은 탁월한 투자자의 성과 역시 확률 싸움 또는 어떤 '운'에 따른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뛰어난 성과를 한 번 기록한다면 그것은 운에 따른 일이라 하겠지만, 그처럼 뛰어난 성과를 내는 운이 여러 번 반복됐다면 그것은 실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크스처럼 뛰어난 투자자가 되기 위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뛰어난 투자자는 볼 풀에 어떤 공들이 있으며, 따라서 추첨에 참여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감각이 좋은 사람이다. 즉 뛰어난 투자자들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미래의 경향에 대해 평균 이상의 이해를 갖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 '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승률이 높을 때에만 투자하며, 또 승률이 낮다 싶을 때에는 좀 더 안전한 자산으로 이동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마크스는 금융시장의 역사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가 어떤 방향으로 쏠리는지 파악하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한국, 금융위기의 기억 아직 우세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금융 기억의 극단적인 단기성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계의 재앙은 금방 잊힌다. 더 나아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똑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종종 젊고 늘 확신에 차 있는 신세대는 이 상황을 금융계, 더 크게는 경제계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발견인 양 맞이한다. 투자자들이 과거에 발생했던 '금융 위기의 기억'을 얼마나 잊어버렸는지 파악하느냐가 경기 순환 예측의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최근 한국 금융시장의 상황은 '금융 위기의 기억'이 여전히 우세한 것 같아 조금 마음을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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