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강하다, 핵보다 강하다 '데이터 자본주의' 21세기 혁명

입력 2018.10.05 03:00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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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코리아
"21세기 권력의 핵심은 데이터이다."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Schonberger·52) 옥스퍼드대 교수는 "데이터가 금융을 대신하면서 자본주의를 바꾸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른바 '금융 자본주의'에서 '데이터 자본주의'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현대 기업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구글은 사용자 검색 기록을 토대로 맞춤형 광고를 내보낸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는 사용자가 전에 들었던 곡을 기반으로 음악 성향을 추론해 곡을 추천해준다. '빅데이터 권위자'로 불리는 쇤베르거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자본이 된 데이터가 기업은 물론 금융과 노동,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개념까지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데이터 혁명에 맞춰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쇤베르거 교수는 저서 '데이터 자본주의'에서 일본 후코쿠생명과 인공지능 스타트업 사베르(Saberr)를 예시로 들었다. 후코쿠생명은 IBM 인공지능(AI) 왓슨에 보험 청구 평가를 맡기고 관련 부서 인력을 줄였다. 사베르는 성격 분석 알고리즘을 개발, 업무 궁합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최적의 팀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회계법인 딜로이트, 프랑스 명품그룹 LVMH, 영국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등이 주요 고객이다. 이처럼 빅데이터 시대에는 어떤 결정을 기계에 위임할 것인지를 정하고 데이터의 힘을 빌려 최적의 결정을 내린 다음 서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금융 자본주의에서 데이터 자본주의로

―데이터의 힘이 커지면서 "자본주의가 재발명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화폐(돈)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앞으로 데이터가 풍부한 시장에서는 데이터가 화폐의 역할을 대체하고 금융 자본주의 중요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일례로 온라인 쇼핑에 경매 방식을 처음 도입한 이베이는 최근 매력을 잃고 있다. 반면, 우버나 블라블라카 같은 차량 공유업체는 승객과 차량을 연결해주면서 성장했다. 전자가 금융 자본주의라면 후자가 데이터 자본주의다. 가격이 중심이 된 금융 자본주의에서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최적의 거래 상대를 찾아내는 데이터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고 했는데, 빅데이터 시대에는 어떨까.

"가격 기반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의사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격'이라는 하나의 수치로 단순화했다. 정보를 응축하면서 수많은 정보가 생략되고, 세부 정보가 눈에 보이지 않아 각종 속임수에도 취약해진다.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면 필요한 정보를 놓쳐 최적의 거래로 이어지지 못한다. 사과와 오렌지를 가격만으로 비교할 수 없듯이 말이다.

빅데이터 중심 경제에서는 정보를 가격으로 축약할 필요가 없어진다.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인공지능(AI) 도움을 받아 정보를 분석한 뒤 더 현명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빅데이터를 공유하게 하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강력한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요한 지적이다. 데이터가 풍부한 시장은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추천 기능을 제공하는 '디지털 지원 도구'가 있기 마련이다. 현재 이런 디지털 지원 도구는 아마존, 구글, 스포티파이, 에어비앤비 등 기업이 자사 고객에게 직접 제공한다. 아마존은 사용자 구매 기록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추천한다. 그러나 아마존 고객이 아마존에서 애플의 추천 기능을 사용하거나 애플 고객이 애플에서 구글의 분석 도구를 사용할 수는 없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없다. 데이터를 소수의 기업이 독점해 모두가 같은 데이터 지원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 이는 계획 경제나 다름없다.

데이터 독점은 혁신도 저해한다. 오늘날 혁신은 사용자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알아낸 새로운 아이디어나 정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데이터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만 몰리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성장 기회가 없다. 일각에서는 구글처럼 자본을 독점하는 기업을 쪼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시장 독점을 우려해 미국 통신사 AT&T를 1980년대에 분할했다. 그러나 20년 후 AT&T는 덩치를 키워 돌아왔다. 기업을 쪼개는 대신 혁신의 원료가 되는 데이터가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공유되도록 보장해 시장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수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데이터 공유 의무제(mandate to share data)를 제안한다. 특정 기준, 예를 들어 시장 점유율 10% 이상 기업은 경쟁사들에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 일부를 공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을수록 공유해야 하는 데이터 비중도 커진다.

과거에도 비슷한 법이 있었다. 구글이 2012년 여행 예약 시스템 ITA를 인수했을 때 미국 정부는 여행서비스업계 내 반독점법 위반을 우려해 구글 측에 인수 후 최소 5년간 운영체제 통신언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올해 5월 발효됐다. 기업간 공정 경쟁을 유도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EU에서 만든 통합 규정이다. 디지털 단일 시장을 구축, 회원국간 자유로운 정보 이동을 장려하는 게 목표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영화·드라마 콘텐츠 플랫폼 ‘프라임 비디오’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동영상을 추천해준다./블룸버그
개인은 '디지털 비서'에 익숙해져야

―데이터 역시 완벽할 수는 없다. 조작 등의 위험도 있지 않은가.

"가짜 뉴스나 통계 오류 등은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해도 100% 제거하기 어렵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빅데이터는 시장에 다양성(diversity)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과 정보, 디지털 지원 도구, 기술 등. 이런 다양성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탄력성을 높이고 힘을 부여한다."

―'디지털 비서'의 역할이 커지면 개인은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까.

"'위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사실 대부분이 위임을 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잘 못한다. 새로 배워야 한다. 반복적이거나 일상적인 결정은 디지털 비서에게 맡기면 된다.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어떤 결정을 위임해야 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필요한 역량은 선택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사고 능력이다."

―최근 페이스북 사태 등에서 보듯, 개인정보 유출이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간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극단적이다. '개인정보를 전부 제공하고 혜택을 얻는다'와 '개인정보를 일절 공유하지 않고 빅데이터에 따른 혜택을 전혀 받지 않는다'가 대립한다. 앞으로 개인은 다수의 서비스 제공자에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인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 등이 발달하면 구글, 페이스북 등 중앙 허브를 거치지 않고 디지털 비서에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다.

분산된 경로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지원 도구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셈이다. 용도별로 사용하는 디지털 비서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 데이터는 여러 디지털 시스템과 플랫폼에 고루 퍼진다. 어느 한 기업이 나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보유하지 않아 '나'라는 개인을 100% 파악할 수 없다. 데이터는 익명화된 방식으로만 공유되는 등 데이터 관리나 보호는 더 철저하게 이뤄질 것이다."

데이터 쥔 국가가 21세기 승자

―데이터를 쥔 기업이나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는 등 데이터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몇 년 동안 직면하게 될 지정학적 문제 핵심이다. 21세기 데이터는 권력의 핵심이 된다. 20세기에는 핵무기 개발 경쟁을 중심으로 국가 간 우위가 결정됐다면, 21세기에는 데이터를 쥔 국가가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누가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과 사용 결정권을 가졌는지 여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를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될지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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