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저가 항공을 격추시켜라" 유럽 저비용 기차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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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9.14 10:06

      '테제베'의 나라 프랑스서 시작 이탈리아·스페인 영국까지 옮아붙어
      매표 창구 없애고 싼 변두리 역 이용 식당칸도 없애는 등 철저한 비용 절감
      런던~파리 유로터널 LCT 도입 서둘러

      과거 '장거리 교통수단'의 대명사였던 기차는 최근 전 세계에서 '연전연패(連戰連敗)' 중이다. 중장거리 알짜 노선은 LCC(저비용 항공)에 뺏겼고, 신차 판매량이 늘면서 단거리 경쟁력마저 떨어졌다. '증기기관차의 고향' 유럽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유럽 최고 기차 강국으로 통하는 프랑스에서조차 2011년 이후 '여객킬로미터(여객 수에 수송거리를 곱한 수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유럽 여행 필수품이던 '유레일패스'는 라이언에어나 이지젯 같은 LCC에 밀려 잊히고 있다.

      고전하던 유럽 기차업계는 'LCT(Low Cost Train)'를 반격 카드로 꺼내 들었다. LCC 성공 방정식을 기차에 그대로 이식해 맞대응하겠다는 것. '기차의 역습'은 일단 성공적이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면 직접 이동 시간은 기차보다 덜 걸릴지 몰라도 수속과 이·착륙 대기에 소모하는 시간이 길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가려면 지상 교통수단을 또 타야 한다. LCT는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고 시내까지 바로 이동하길 원하는 가족과 학생을 중심으로 대중교통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LCC 노선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LCT 열풍은 이탈리아를 거쳐 이제 스페인, 영국으로 옮아 붙었다. 외국 투자자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식당 칸 없애고 수하물 돈 받아

      LCT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한 국가는 '테제베(TGV)의 나라' 프랑스다.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가 LCT 브랜드 '위고(Ouigo)'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어로 '맞다'는 '위(oui)'에 영어 '고(go)'를 더했다. 2013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위고는 세계 최초 저비용 고속철도다. 테제베와 같은 객차와 노선을 사용하지만 운임은 3분의 1 수준. 수도 파리에서 제2 도시 마르세유까지 780㎞를 가는 데 테제베는 75유로, 에어프랑스 국내선은 50유로가 들지만, 위고는 최대 25유로밖에 들지 않는다. 라이언에어 34유로보다 25% 싸다. 12세 이하 어린이는 거리에 상관없이 5유로만 내면 된다.

      파격적인 저가 요금 비결은 철저한 비용 절감에 있다. 위고는 별도 매표 창구를 운영하지 않는다. 열차표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판다. 전화 상담원도 없다. 문의사항은 인터넷으로만 받는다. 탑승객은 승차권을 직접 인쇄해 타거나, 스마트폰 앱을 다운로드받아야 한다. 열차 내 승무원도 없고, 식당 칸이 있던 자리에는 자판기를 설치해 인건비를 줄였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 1000개였던 좌석을 1260개로 늘렸다. LCC가 주요 도심 공항보다 외곽 공항을 거점으로 삼는 것처럼 위고도 변두리 역을 전용역으로 삼아 역사 사용료를 아낀다. 위고 주 거점인 파리 '마른 라 발레 세시'역은 도심에서40㎞ 떨어져 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 대신 죽전역이 거점인 셈이다. 파리 외곽이라고 해도 대중교통 환승이 편한 주요 관광지 인근인 데다, 기차가 중심지까지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에 위고 운영비는 테제베보다 40% 덜 든다.

      덜 쓰는 걸로는 부족하다. LCC와의 경쟁에서 오래 버티려면 더 벌어야 한다. 위고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기차가 기본으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대거 유료로 바꿨다. 전기콘센트를 이용하려면 1구당 2유로를 내야 한다. 머리 위 선반에 올리지 못하는 수화물은 1개당 5유로씩 운송비를 받는다. 한 번 끊은 탑승권은 취소나 환불이 불가능하다. 교환을 하고 싶다면 10유로를 추가로 내야 한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기차를 타길 원한다면 40유로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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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고가 어린이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핀볼 게임을 본떠 만든 광고. 프랑스국영철도공사(SNCF)는 객차 내 엔터테인먼트용으로 실제 이 핀볼 게임을 제작해 인터넷에서 무료 배포했다. /위고
      신경써야 할 부분이 일반 기차보다 많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LCT를 타려는 탑승객 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13년 개통 첫해 100만명 수준이던 탑승객 수는 지난해 700만명을 기록했다. 어린이와 함께 여행하는 가족이나 학생이 주요 소비층. 어린이 2명을 포함한 4인 가족이 마르세유까지 LCC를 타고 가려면 136유로(약 18만원)가 필요하지만, 위고는 60유로(약 7만8000원)면 된다. SNCF는 2020년에 2600만명이 위고를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같은 서비스에 요금 40% 싸기도

      반신반의했던 위고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인근 국가들도 LCT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이탈로(Italo)'는 명품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와 SNCF가 공동 투자한 LCT 브랜드다. 위고가 비용 절감을 위해 서비스 품질을 낮춘 반면, 이탈로는 경쟁 브랜드 이탈리아 국영 철도 '트레니탈리아(Trenitalia)'보다 요금이 40%가량 싸지만 서비스는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 '페라리 기차'라는 별칭에 맞춰 좌석은 가죽시트로 장식했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와 무선 인터넷을 제공한다. 페라리와 SNCF가 마련한 초기 투자금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를 인테리어와 서비스 품질 향상에 쏟아부었다. 2014년 600만명이던 이탈로 연간 이용객은 지난해 1300만명으로 늘었다. 수익성이 보이자 미국 투자사 GIP가 지난 2월 이탈로를 19억4000만유로(약 2조5000억원)에 사들였다.

      스페인 국영 철도 기업 렌페(Renfe)는 2년 안에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잇는 LCT를 운행할 계획이다. 마드리드에서는 도심 아토차역을, 바르셀로나에서는 외곽 '엘프라트 국제공항'역을 이용해 가격 절충점을 찾았다.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국영 철도보다 20~25% 정도 저렴하다. 비행기를 타면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 환승해야 도심으로 갈 수 있지만 기차를 이용하면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 시내 중심지까지 바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유로터널 운영사 겟링크(Getlink)는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를 잇는 유럽 최고 인기 구간에 LCT를 운영할 예정이다.

      LCC 비행기와 정면 승부 눈앞

      유럽은 LCT 서비스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철도 교통이 일찍부터 발달해 유럽 전역에 철로가 깔려있고, 유지·보수 기술도 우수하다. LCC사와 맞붙기 위해서는 속도가 빠른 고속철도 서비스가 가능한지가 관건인데, 유럽 고속철로 총연장은 9000㎞가 넘는다. 그러나 인기가 가장 많은 런던~파리 구간 이용률이 58% 수준일 정도로 이용률이 낮아 가격을 낮추면 수요가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2012년 유럽연합(EU)이 '2020년까지 권내 국영 철도를 포함한 모든 상업 철도를 완전 경쟁 체제로 운영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 또한 LCT 서비스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LCT 바람이 불자, 2003년 이후 기차를 대신해 유럽 전역을 휩쓸던 LCC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탈리아만 해도 이탈로가 급성장하자 라이언에어와 이지젯이 로마~밀라노 노선을 폐지했다. 앞으로 LCC와 LCT 간 여객 수송 경쟁은 '더 싸고 더 편하게'라는 구호 아래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