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한겨울에 아이들 데리고 쫓겨난지 15년 해고 한 명 안하고 세계1위 회사로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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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9.14 10:06

      獨 화학기업 '랑세스'의 레이니어 반 러셀 부회장

      2003년 글로벌 화학·제약 업체 바이엘은 화학·폴리머 사업 부문을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수익성이 신통치 않다는 판단 아래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이후 1년간 재정비 과정을 거쳐 2005년 만들어진 회사가 랑세스(LANXESS)다. 레이니어 반 러셀(van Roessel) 랑세스 부회장은 "한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쫓겨나는 가장의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뒤로 15년. 랑세스는 지난해 매출 96억6400만유로(약 12조6200억원)와 영업이익 12억9000만유로(약 1조6800억원)를 올리면서 각각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세계적 투자사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해 랑세스 주식 5%를 확보하면서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기도 했다. 올해도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2년 연속 신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랑세스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산업용 중간재와 첨가제, 특수 화학제품을 생산·공급한다. 자동차 타이어에 활용하는 합성 고무 분야에선 세계 1위다. 글로벌 타이어 회사를 비롯,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넥센과도 거래하고 있으며, 평택 현곡산업단지에 유기 금속 화합물 공장을 두고 있다. 랑세스는 '앞으로 전진한다'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lancer'와 영어 단어 'success'를 조합, '성공적으로 전진하자'는 의미를 담은 사명이다. '사고무친(四顧無親)' 신세에서 일약 '버핏의 신데렐라'로 발돋움한 랑세스의 저력이 뭔지 반 러셀 부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獨 화학기업 '랑세스'의 레이니어 반 러셀 부회장
      Q1 분사를 결정하고 구조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해고 1명 없이 구조조정 과정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인력 감축 대신 노동조합과 상의해서 이사진을 포함한 전 직원 급여를 공평하게 10% 줄였다. 근로시간도 줄여 인건비 지출이 대폭 감소했다. 전 임직원 동의를 받았다. 이후에도 이런 철칙은 이어져오고 있다. 2013년에도 위기가 있었다. 화학 산업 전반에서 문제가 된 과잉 공급과 자동차·타이어 산업 성장세 둔화가 맞물려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고전했다. 당시 경영진은 발 빠르게 움직여 2014년 조직 개편을 선제 단행했다. 이때도 인력 감축을 우선순위로 놓지 않았다. 먼저 '손쉬운 목표(low-hanging fruit)'부터 손댔다. 전 세계 사업장에서 지출을 최대한 줄였고, 마지막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직급별 대표자 300여 명과 회사가 다시 미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충분히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희망퇴직을 받았기 때문에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Q2 워런 버핏이 투자하게 된 사연을 소개해달라.

      "우리도 놀랐다. 지난해 5월 처음 버크셔해서웨이가 랑세스 주식 3%를 매입한 날 주가가 7% 오를 정도로 '빅 뉴스'였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연말에 주식을 더 사들여 지금 지분이 5%까지 늘었다. 추가 투자하기 전 버핏은 마티아스 자커트 랑세스 회장을 미국으로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 당시 버크셔해서웨이는 독일 화학 기업 여러 곳을 놓고 가치를 분석한 결과, 랑세스에만 유일하게 투자를 결정했다고 들었다. 특수 화학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랑세스 전략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랑세스 이사회가 제시한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약속을 충실히 지켜왔기 때문에 '신뢰'가 간다는 이유였다."

      Q3 구조조정에 이은 전략 다각화는 어떻게 진행했나.

      "랑세스는 전통적으로 합성 고무 사업 의존도가 높았다. 합성 고무 시장은 규모가 크긴 하지만, 원료 수급이 변덕스러운 편이라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가 작지 않았다.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수 화학으로 대변되는 중소 규모 틈새시장(니치 마켓)에 집중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합성 고무 원료 수급은 2014년 사우디 아람코와 50대50 지분을 가진 조인트 벤처 아란세오(ARLANXEO)를 세우면서 어느 정도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수익성 좋은 고부가가치 신제품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지난해 난연제와 윤활유 첨가제에서 세계 1위 업체인 미 켐추라를 24억달러에 인수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2012년만 해도 전체 사업 중 54%를 차지하던 합성 고무 비중은 지난해 33%까지 줄였다."

      최근 랑세스는 아란세오 지분 50%를 아람코에 넘기면서 합성 고무 사업을 사실상 정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는 고부가가치 특수 화학제품에 주력한다는 각오다. 켐추라 인수가 그 신호탄이다.

      랑세스 경영 성적표
      Q4 투명한 경영과 소통을 강조한다는데 어떤 내용인가

      "직원들이 회사가 처한 환경이나 미래 방향성, 계획을 경영진처럼 잘 알고 있다면 주인 의식이 높아지면서 성과가 향상된다. '주인 의식을 가져라(take ownership)'가 '포뮬러 X'라고 하는 랑세스 기업 행동 지침 첫째 명제인 이유다. 직원이 회사를 믿고 일하기 때문에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낸다. 이런 게 위기에 저력으로 작동한다. 랑세스는 전 세계 모든 직원에게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팀장이나 관리자가 직원과 동일한 정보를 갖고 소통할 수 있는 셈이다. 목표 달성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한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개발 과정을 한 여정으로 본다. 이 여정을 모두 함께 걸어간다는 의식을 갖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급속한 디지털화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간혹 이를 두려워하면서 거부하는 양상도 나타나는데 그런 불안감을 줄이도록 하기 위해 수시로 노조 대표와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논의하고 있다."

      Q5 한국 기업에 노사 관계에 대해 충고를 한다면

      "개별 국가마다 처한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안에 대해 조언하는 건 조심스럽다. 우리뿐 아니라 독일 화학업계가 1971년 이후 파업이 없었다. 그 저변엔 실용적이고 유연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노사 간 공감대가 깔려 있다. 독일은 또 노조가 기업 감독위원회에 참여하고 회사가 노조에 일정 수준 정보를 제공하는 법적 의무를 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사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극단적 파국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경험에 비춰 보자면, 어떤 갈등 상황이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진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한다면 풀 수 있다. 노사가 민감한 문제를 논의할 때 서로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 랑세스에는 '팀으로 행동한다(Act as a team)'와 '해법을 찾는다(Seek solutions)'는 원칙이 있다. 노사 관계도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랑세스 경영진은 평소 노조 대표와 적어도 연 6~8회 만나 회사 전략을 공유한다. 직급별로도 이런 과정을 진행한다. 그게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가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