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는 이 순간을 찍은 사진이 두 장이라니…

    • 채승우 사진가

입력 2018.09.14 10:06

[채승우의 Photographic] (5) 로버트 카파

채승우 사진가
로버트 카파(Capa)라는 이름은 귀에 익지 않아도 총을 든 병사가 벌판에서 뒤로 넘어지는 사진 한 장은 아마 눈에 익을 것이다. 그 사진을 찍은 이가 바로 로버트 카파다. 역사상 아주 유명한 사진가 중 하나다.

총에 맞는 순간을 찍은 사진은 사진 역사상 최초이기도 한 데다 그 후에도 비슷한 사진이 세상에 나온 적이 없으니 유별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카파는 살아 있는 동안에 스타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위대한 사진가로 여겨지고 있다. 카파의 사진전이 종종 열리는데, 그 사진전들은 카파에 대한 의심은 뒤로 숨겨 놓는다. 전시장 벽에는 '당신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멋진 말이 붙어 있다. 멋있긴 하지만 따져볼수록 이상한 말이다.

카파는 1913년 헝가리에서 '안드레 에르뇌 프리드만'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1931년 베를린으로 가 정치학을 공부하던 도중 사진통신사 데포에서 암실 보조로 일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진가가 됐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1936년 당시 성공을 꿈꾸던 이들이 종종 그랬듯 이름을 미국식 '로버트 카파'로 바꾸었다. 같은 해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자 그는 스페인으로 떠난다. 그리고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이 유명한 사진을 찍는다.

1938년 잡지 픽처포스트에 실린 카파의 모습. 영화 카메라를 들고 있다. 당시 사진가들은 스타 대접을 받았다./픽처포스트
카파를 둘러싼 의문과 논란

라이프지 1937년 7월 12일 자는 '어느 스페인 병사가 코르도바 전선에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여 쓰러지는 순간에 로버트 카파의 카메라가 이를 포착했다'는 설명과 함께 이 사진을 싣는다.

기자 필립 나이틀리는 저서 '첫 번째 사상자'에서, 사진 설명대로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다면, 왜 두개골 파열이 없으며 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는지 묻는다. 군인의 옷이 왜 이렇게 깨끗한지, 언덕을 내려오면서 총을 맞은 군인이 뒤로 넘어질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큰 의혹은 비슷한 사진이 두 장 발표된 점이다. 라이프보다 1년 전, 1936년 9월 23일 자 프랑스 잡지 뷔(Vu)에 문제의 사진이 실렸는데, 한 컷이 더 있다. 두 사진의 배경을 비교해보면 구름 모습까지 비슷하다. 같은 장소에서 아주 가까운 시간에 촬영된 것이다. 두 장이 모두 실제라면, 어느 한 장에는 먼저 쓰러진 다른 사람 주검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카파 본인은 뭐라고 설명했을까? 카파는 이 사진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포토 아이콘'의 저자 한스 미하일 쾨츨레는 카파가 1937년 9월 한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한 적이 있다고 전한다. 카파는 당시 군인 한 명과 본대에서 이탈했으며, 참호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참 후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총을 맞았고, 카파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누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 왜 두 장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1938년 카파는 자신의 책 '죽음의 순간'에 이 사진을 싣지만 역시 장소와 시간,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필름은 사라졌다. '세계 인간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스튜어트 프랭클린은 서스페레기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다. 사진이 촬영되었다고 알려진 1936년 9월 3일, 가장 가까운 프랑코 군대는 문제의 촬영 장소에서 10㎞ 밖에 있었다. 그 장소는 거의 3주 후에야 공격받았다.
라이프보다 1년 전인 1936년 9월 23일 자 프랑스 잡지 뷔(Vu)에 실린 두 사진. /픽처포스트
연출 사진은 아니었을까

카파를 편드는 주장도 있다. 쓰러지는 병사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넘어지는 사람의 손 모양이 아니라는 식이다. 1995년 한 스페인 내전 참전 군인 회고록도 카파를 편드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증거다. 이 회고록 저자는 스페인 국립 기록보관소 기록을 확인한 결과, 1936년 9월 5일 보르도에서 사망한 그 지방 출신 군인이 딱 한 명 있었음을 알아냈고, 그의 형제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형제에게 카파 사진을 가져가 보여줬을 때 그는 이 쓰러지는 군인이 자기 동생임을 알아봤다고 적었다. 거의 60년이 지난 후 일이다. 사진 속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일 이후 이 군인은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라고 불리곤 한다.

서스페레기 교수가 전하는 이야기가 더 있다. 당시 카파는 월간 뉴스영화 시리즈를 위해 '영화 리포터'로도 일하고 있었고, 1937년 6월 24일 뉴스영화 촬영을 위해 군인들 총공격 장면을 연출했다. 1936년 카파와 같은 호텔에 묵었던 기자 오도우드 갤래거는 병사들이 돈을 받고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파가 이 사진을 찍기 직전까지 전쟁 사진은 대부분 연출이었다.

카파 사진은 연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사진을 이애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연출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사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게 되었을까. 질문을 다시 던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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