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4일·16시간 동안, 바그너의 '반지'가 말하려는 건

    •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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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9.01 03:00

      [CEO 오페라] <9>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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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전쟁 기념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니벨룽의 반지’ 3막 ‘발퀴레’에서 브룸힐데 역을 맡은 배우 아이린 시어린이 열연하고 있다. /풍월당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 1883)가 작곡한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공연 시간이 16시간에 이르고 4부작으로 나누어 4일 동안 공연된다. 이 사실을 들어본 분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니벨룽의 반지'의 공연은 국내에서도 이미 있었고, 앞으로 공연도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작품이 길고 며칠이나 공연된다는 점은 알지만, 대체 이것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는 분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한식당에 대해 논하면서 음식의 맛이나 재료는 모르는 채로 반찬이 몇 가지나 나왔다거나, 먹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거나 하는 등 껍데기만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그너는 어떻게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애당초 그는 지크프리트라는 젊은 영웅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다('신들의 황혼'). 그러다 보니 지크프리트가 어떻게 태어났고 양육되었는지를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지크프리트'). 이어서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도 필요해졌고('발퀴레'), 나아가 가계의 배경도 쓰게 되어('라인의 황금') 결국 4부작이 되었다. 이렇게 바그너는 시간의 역순으로 네 편의 대본을 자신이 직접 썼다. 그리고 다음에는 시간의 순서대로 작곡하였다. '라인의 황금'에서 시작하여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을 마지막으로 작곡을 완성하는데, 첫 대본의 집필부터 15년 걸렸다.

      파리 오페라계서 실패, 獨 돌아와

      바그너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오페라의 인기를 못마땅해하였다. 물론 그도 젊은 시절에는 파리 오페라계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하자 그는 기성 음악계를 등졌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기존 오페라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하였다. 즉 오페라는 원래 그리스 비극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문학과 음악과 연기와 무용과 미술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이란 것은 무대 위에서 종합적인 형태로 가치가 빛나는 것이지, 분리된 개별적인 장르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기교 좋은 소프라노, 고음이 잘 나오는 테너, 손가락이 잘 돌아가는 바이올리니스트 등이 각광받을 뿐이었다. 세상의 진리를 얘기하던 무대극은 오락으로 전락하였고, 관객들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룻저녁을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물론 지금도 예술을 그렇게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당시 오페라뿐만 아니라 예술은 타락하였다고 바그너는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원래의 숭고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개별적으로 조각난 장식적인 예술은 상업주의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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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독일 뮌헨 국립극장에서 펼쳐진‘니벨룽의 반지’. 브룸힐데 역을 맡은 페트라 랑(왼쪽)과 하겐 역을 맡은 한스 페터 쾨니히. /풍월당
      바그너는 그리스의 정신을 되살려 개별 예술이 합쳐져 최고의 가치를 만드는 진정한 예술로서 무대극을 원하였다. 시인은 글만 돋보이면 되고 음악가는 음악만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종합예술의 이상(理想)을 구현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기 위해서 바그너는 작사와 작곡을 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이루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이 탄생하자 그는 오페라라는 기존 단어 대신에 '악극(樂劇·Musikdram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 걸작인 '니벨룽의 반지'에는 '무대축전극(舞臺祝典劇)'이라는 명칭을 지어주었다. 무대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신념이 포함된 이름이다.

      '니벨룽의 반지'는 그것을 가지면 세상의 권력을 차지한다는 '반지'를 두고 여러 종족이 다투는 줄거리다. 처음에는 신들이 등장하여 거인족이나 난쟁이족과 반지를 다툰다. 그런데 권력을 차지하는 자는 대신에 사랑을 포기하여야 한다. 결국 신들의 권력을 향한 욕심은 자신들의 발등을 찍고, 신들은 멸망의 길을 간다. 그렇게 해서 신들이 사라진 지상에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다. 인간은 신의 지시, 즉 계율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으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니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요 철학이다.

      단순한 작곡가 아닌 종합예술가

      바그너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계승하였고, 그것을 대본과 음악이라는 도구를 써서 무대 위에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였다. 극장은 바그너에 의해서 오락의 장이 아니라 다시 지성의 공간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오페라를 쾌락의 진흙탕에서 건져내어 흙을 털어서 그리스 비극이 추구하던 예술의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바그너가 쓴 위대한 대본을 읽어보면 그의 예술은 다만 아름다운 음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문학, 즉 대본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 속에서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속성을 모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