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실에 간 적도 없는데, 이 옷 어쩜 이렇게 딱 맞고 예쁠까"

입력 2018.07.28 03:00

AI 디자이너, 패션의 미래를 바꾼다

H&M의 디지털 자회사 아이비레벨이 구글과 공동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디자인 앱 ‘코디드쿠튀르’. ‘옷의 용도’ 등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면 앱이 회원의 생활 습관을 토대로 맞춤형 드레스를 디자인한다(위 사진). 스티치픽스의 알고리즘은 옷 3~4벌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옷을 만들어낸다(아래 사진).
H&M의 디지털 자회사 아이비레벨이 구글과 공동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디자인 앱 ‘코디드쿠튀르’. ‘옷의 용도’ 등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면 앱이 회원의 생활 습관을 토대로 맞춤형 드레스를 디자인한다(위 사진). 스티치픽스의 알고리즘은 옷 3~4벌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옷을 만들어낸다(아래 사진). / 아이비레벨·스티치픽스
인공지능(AI)은 이제 그림을 그릴 뿐 아니라 음악을 작곡하고 시도 쓴다. 인간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예술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예술 영역과 상업성이 교차하는 부문에서는 인간 독창성과 기계의 정교함을 서로 엮어 창의적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낸다. 대표적인 분야가 옷을 만드는 패션 산업이다. H&M이나 리바이스 같은 주요 의류 기업들이 구글, 아마존, IBM 등 IT(정비기술) 기업과 손잡고 'AI 패션 디자이너'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패션 흐름이나 유행을 예측하고, 맞춤형 의상을 추천하며, 누적된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AI가 자유자재로 새로운 의상을 만들어내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지만, 패션 디자이너 일을 지원하는 조력자로 패션업계에서 맹활약 중이다.

①아마존: 디자이너를 인공지능으로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패션 디자이너를 AI로 대체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아마존의 이스라엘 소재 연구원들은 머신러닝 기술로 '세련된 의상'과 그렇지 않은 의상을 가려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사진에 첨부된 글이나 해시태그(#)만 보고 특정 의상이 앞으로 유행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샌프란시스코 연구개발(R&D) 부서인 '랩126'이 개발 중인 알고리즘은 특정 의상이나 패션 스타일을 익히고 비슷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여러 장 사진을 인식한 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옷을 디자인하는 게 목표다. 여기에는 차세대 딥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으로 주목받는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활용한다. 결과물은 아직 시중에 내놓을 수준은 못 되지만, 아마존이 키우려는 패스트 패션 사업의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취향에 맞는 옷을 인공지능이 디자인하면 공장에서 실시간으로 제조해 판매하는 유통 시스템이 아마존이 구상하는 패션의 미래다. 아마존은 인공지능이 만든 디자인을 곧장 실물로 뽑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출 전망이다. 최근 실시간 제조 공법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다.

②구글: 개인 맞춤형 드레스 제작

구글은 스웨덴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과 개인 맞춤형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인공지능 앱 '코디드 쿠튀르(Coded Couture)'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앱에 가입한 고객의 생활습관, 사는 곳의 기후, 자주 방문하는 장소 등 스마트폰 데이터를 일주일간 수집한 뒤 이에 맞춰 드레스를 디자인한다. 일명 '데이터 드레스(Data Dress)'다.

고객은 자신의 생활습관을 반영해 디자인된 드레스를 앱으로 확인, 마음에 들면 주문을 넣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된다. 맞춤형 드레스의 가격은 99달러부터다. 현재 H&M은 인스타그램에서 영향력 있는 사용자인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대상으로 앱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구글은 앞서 2016년 독일 전자상거래업체 잘란도(Zalando)와 제휴를 맺고 3차원 가상 디자인을 만드는 '프로젝트 뮤즈(Muze)'를 진행했다. 구글의 머신러닝 기술에 잘란도의 데이터를 결합해 다양한 옷의 질감, 색상, 스타일 등 미적 감각을 익힌다. 이후 사용자의 관심사와 선호하는 스타일에 따라 마음에 들 만한 옷을 3D 형태로 디자인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낸다.

③스티치픽스: 3~4벌 조합해 새 디자인

맞춤형 옷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인공지능 패션 디자인의 선두주자다. 스티치픽스는 고객이 입력한 신체정보,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 직업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옷 5벌을 선별해 집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미국에서만 약 270만명이 정기 배송을 신청했다. 최근 스티치픽스는 수년간 누적된 정보를 활용해 패션 디자인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스티치픽스의 '하이브리드 디자인(Hybrid Design)' 서비스는 3~4벌의 옷을 조합해 새로운 의상을 만들어낸다. 스티치픽스는 현재까지 하이브리드 디자인을 활용해 30벌 이상의 옷을 만들었다. 에릭 콜슨 스티치픽스 최고 알고리즘 책임자는 "알고리즘이 디자인한 의상도 패션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야 한다"면서 "패션 디자이너의 감수와 고객의 평가를 꾸준히 반영하다보면 알고리즘의 정확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④토미힐피거: 디자이너 지원

아마존과 구글은 AI 패션 디자이너 육성에 나섰지만, 아직 인공지능이 단독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수준까지 오지 못한 상태다. 일부 기업은 복잡하고 어려운 디자인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과거 디자이너가 수작업으로 하던 최신 유행 파악, 이전 패션쇼 자료 열람,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 수집 등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자료를 정리해주기 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는 디자인에만 몰입할 수 있다.

미국 의류 브랜드 토미힐피거는 IBM과 뉴욕의 세계적 패션대학 FIT와 손잡고 인공지능을 디자인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IBM의 인공지능은 크게 3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①실시간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고 ②토미힐피거의 신제품을 본 고객의 반응과 선호도를 분석하며 ③많이 선호되는 색상, 트렌드, 스타일 등을 판독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토미힐피거 제품의 후기와 별점을 분석해 고객이 선호하는 색상과 가격대, 모양 등을 추려냈다. 패션 디자이너는 이렇게 정리한 정보를 전달받고, 다음 디자인에 참고한다.

토미힐피거의 최고브랜드책임자인 에이버리 베이커는 "AI는 사람보다 트렌드를 빨리 파악할 수 있어 디자인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토미힐피거의 티셔츠가 1년 전에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특정 디자인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인지, 지난 1년간 토미힐피거 제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의상은 무엇이었는지 등의 질문을 몇 분 내로 대답할 수 있다. IBM의 크리스 팔머 연구원은 "반복적이고 지겨운 작업을 줄이는 게 인공지능의 목표"라면서 "디자이너는 시장 조사에 시간을 쓰는 대신 창의적인 디자인에만 몰입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⑤게스: 매장에 '패션 AI' 설치

기업들은 고객과 패션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 수집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 게스(Guess)는 중국 알리바바의 인공지능 '패션AI'를 매장에 도입했다. 홍콩 게스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 앱에 접속하면 게스에 설치된 패션AI가 과거 구매 기록과 매장에서 입어본 의상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게스 제품을 타오바오앱을 통해 추천한다. 매장 내 모든 제품에는 RFID(전자태그)가 달려 있어 손으로 만지거나 입어본 의상은 앱에 기록된다. 패션AI의 추천 기능은 게스 매장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고객이 추천받은 게스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경우, 패션AI는 타오바오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브랜드를 검색해 고객이 좋아할 만한 의상을 추천 목록에 올려놓는다. 타오바오의 매출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게스가 매장에 알리바바의 패션 AI를 설치한 이유는 매장을 찾는 고객의 선택을 도우려는 목적도 있지만, 기록하기 어려운 매장 소비 습관을 데이터로 축적해 더 정교한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게 주된 목표다.

Knowledge Keyword :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생성적 적대 신경망)

GAN은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 위조범과 경찰의 경쟁 구도를 AI에 접목한 것이다. '생성자(generator)' 역할의 신경망은 진짜와 구별하기 힘든 가짜를 만들고 '감별자(discriminator)'로 불리는 다른 신경망은 진짜 같은 가짜가 실제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능력을 발전시킨다. 생성자는 감별자를 속이지 못한 데이터를, 감별자는 생성자에게 속은 데이터를 입력받아 학습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위조지폐가 정교해지듯, 점점 더 실제에 가까운 거짓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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