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드가가 사진 보고 그림 그렸다는 증거를 찾아보세요

    • 채승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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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7.14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4>

      사진 직접 찍지 않고 상상하면서 그려
      처음엔 외면당한 인상파 화가들 사진이 대중화 되면서 인정받고 성공해

      채승우 사진가
      채승우 사진가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진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든가, 사진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사진이라는 신기술이 특허를 얻은 게 1839년이며, 그 중심지는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하던 장소,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들라크루아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사진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를 권했다. 들라크루아 자신은 외젠 뒤리에라는 사진가와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프랑스 사진협회 창립 멤버가 되었다. 물론 사진을 직접 찍은 작가도 많은데, 발레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는 조금 특별하다. 드가의 그림에는 정말 사진을 보고 그린 흔적이 남아 있다.

      몸 잘린 사람 자주 그린 드가

      드가의 그림에는 몸이 잘린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의 사각형 틀에 몸 일부가 가려 있다. 우리가 사진 찍을 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 아닌가. 주인공만 보고 찍다 보면 옆의 누군가는 일부만 찍혀 있기 일쑤다. 드가는 그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렸다. 드가 이전 회화에는 없는 모습이다. 분명 사진을 보고 그린 흔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비록 사진에 그렇게 찍혔다 해도 그림으로 옮길 때 그렇게 안 그릴 수 있는 거 아닌가? 고쳐 그릴 수도 있고, 아예 안 그릴 수도 있다. 그런데 드가는 굳이 그것을 그렸다. 일부러 '사진처럼' 그리려 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훨씬 나중에야 사진가들이 사진의 틀, 즉 '프레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사진에는 세상을 잘라낸 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사진의 중요한 특징이다).

      드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그가 사용한 카메라부터 조사했다. 조금 찾아보다가 미스터리를 만났다. 드가가 대표작들을 남긴 건 1870년대 초부터이다. 한데 그때는 그런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없었다. 극장이나 연습실 안의 어두운 조명에서 움직이는 발레리나를 찍을 기술이 없었다. 건판 인화나 소형 카메라는 1880년대 이후에나 발명된다.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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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877년 작 ‘공연의 끝’. 이 장면을 보는 화가의 위치는 어디일까. ②1880년 작 ‘연습실의 세 무희’. 사진을 보고 그린 흔적이 그림에 남아 있다. ③1876년 작 ‘압셍트’. 사진가 브레송은 사진을 찍을 때 ‘드가라면 어떻게 그렸을까’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드가가 1880년대 초에 쓴 편지도 발견했다. "들은 바로는 목요일에 발레 무용수들이 시험을 치른다던데,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얻도록 힘을 써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용 시험 장면을 그토록 많이 그렸으면서도 실제로는 본 적이 없어 부끄럽군요.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들 사이로 조그만 종이를 들고서 오페라 극장에 몰래 숨어들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드가는 실제로 사진을 찍어서 그린 것이 아니라, 사진을 상상하면서 그린 것이다.

      사진 촬영 기술을 작품에 반영

      드가의 그림에서 사진 흔적을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다. 드가가 상상으로 그린 덕분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 결과다. 무대에서 인사하는 발레리나 그림을 보자.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위치는 어디일까? 1층 객석은 아니다. 아주 높은 위치도 아니다. 무대 바로 앞 어딘가에서 올라선 듯하다. 요즘 방송으로 치자면 크레인에 달린 카메라 위치이다. 시선의 위치가 공중에 둥둥 떠 있다. 이런 시선이 드가의 여러 그림에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드가가 생각한 또 하나의 사진 특성 아닐까?

      지금은 사진을 연구하는 이들이 그 둥둥 떠다니는 시선, 고정되지 않은 시선, 움직이는 시선이 카메라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카메라 발명 이전 시대에 그림을 그리던 방법이 일점 투시 원근법이라는 점과 비교해 본다면 더 분명해진다. 원근법은 고정된 한 눈의 시선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방법이다. 그에 비해 카메라는 찍는 사람마다, 찍는 순간마다, 찍는 장소마다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인상주의 화가 세잔이 움직이는 시선을 한 화폭에 담아내려고 시도한 것, 그 결과 그가 '현대 회화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건 모두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인상파 성공엔 사진 확산이 큰 몫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에는 평론가들과 대중에게 외면당하다가 빠른 시간 안에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진 대중화에 있다고 말한다. 대중이 인상주의 회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회화의 방법이 화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경험과 관련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드가가 보여준 사진의 두 가지 특성, 세상을 잘라낸 흔적인 프레임의 존재와 둥둥 떠다니는 시선의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지한 사진가들에게서 계속 나타난다. 유명한 사진가 브레송은 사진을 찍으면서 드가라면 어떻게 그렸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