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 R&D 등에 투자할 때 양극화도 해결"

    • 송경모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입력 2018.07.14 03:00

[Cover story] '자본 없는 자본주의' 5가지 사례

송경모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송경모 고려대 교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옛적 자본주의가 아니다. 특히 무형의 지식과 도덕 자본이 성과 창출을 주도하고, 유형자본 내지 화폐자본은 그를 뒷받침하는 자리로 물러섰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이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무형자본은 말 그대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부는 이미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은 무형자본 중심의 기업이 일구고 있다. 이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는 20세기형 기업들은 하나씩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2년 홈디포 CEO 나델리는 유형의 성과와 비용 지표에 집착하면서 실패했지만, 후임자 브레이크는 고객 관계와 조직 문화와 같은 무형자본을 형성하는 데에 주력함으로써 몰락하던 회사를 부활시켰다.

전기, 화학, 내연기관 기술 발전이 2차 산업혁명을 촉발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만 해도 기업은 유형의 기계 장치를 취득하는 것만을 자산 투자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신기술 연구개발비는 매출 발생과 무관하게 경상비 처리됐다. 그러다가 1917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구개발비를 기업의 공시 재무제표에 이연자산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처음 허용했고, 1954년에 미국공인회계사회에서는 연구개발비의 이연자산 처리를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R&D가 기업 무형자산 인식에서 첫발을 내디딘 뒤, 사회적 평판, 고객과 거래처 관계는 물론이고, 구성원의 창의력과 열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조직 문화, 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지출이 하나씩 무형자산으로 인정받아왔다. 아직 적절한 회계 처리 지침이 없을 뿐, 오늘날 탁월한 경영자들은 이 무형자본 형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도 산학연 R&D투자로 탄생

정부 지출의 성격도 기업처럼 몇 단계 변화를 거쳤다. 20세기 초까지 서구에서 정부 재정 지출은 야경국가를 유지하는 수준이었지만, 대공황기에 민간 수요 부족분을 보충하는 역할이 추가됐다. 특히 유형의 공공시설 건설을 통해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때 생겼고 지금도 환상이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복지국가 패러다임이 득세하면서 사회보장성 지출이 급증했다.

그 사이 중요한 한 가지 변화는 197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국가 R&D 재정 지출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가 민간의 힘만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의 산학연 R&D 집중 투자가 그 배경에 있었다. 이처럼 R&D 재정 지원은 초기에 사회적 무형자본을 형성하는 출발점이 됐다. 이제 R&D만이 아니라, 여러 산업 분야의 지식 노동자들이 갖추어야 할 무형 자본 형성에도 정부 재정이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때가 됐다.

양극화의 본질은 과도한 규제와 낙후한 교육 시스템 때문에 지식 격차가 고착화된 데에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 강화는 최소한도 필요하겠지만 근본 해결 방안은 아니다. 변화 속에서 낙오하는 노동자와 실업 청년에게 학교의 낡은 지식이 아니라 생생한 신지식을 재교육하는 기회를 계속 확대해야 한다.

2017년 정부 예산이 400조원을 넘어섰다. 조세와 국가 채무 부담도 함께 늘어 우려를 자아낸다. 그동안 성과 평가 등 효율적인 예산 집행 노력이 있었지만, 이제 더 나아가 재정 '지출'이 아니라 '투자', 특히 유형보다 무형의 자본 형성 패러다임으로 의식을 전환할 시대가 됐다. 그것만이 이 사회가 재정 중독 상태를 벗어나 서서히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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