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혁신의 산실' 베네치아

    • 김경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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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7.14 03:00

      운하따라 배치된 선박 생산라인, 포드가 자동차에 도입
      造船·은행·화폐도 세계 표준화 선도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외부 침략자에게 쫓긴 초라한 피란처에서 지중해 해상제국으로 발전했다. 로마제국 말기인 5세기에 훈족과 게르만족이 이탈리아 북부를 침략하자 로마인들은 이탈리아 동북부 바닷가 석호 개펄로 피신했다. 침략자들에게서 안전한 피란처로 인식되자 규모가 커지면서 동로마 제국(비잔틴제국) 속령이 되었다.

      소금과 물고기 외에는 없었던 베네치아는 서유럽과 비잔틴제국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베네치아는 이슬람 신흥 세력 오스만에 밀려 지중해 전략적 거점이던 키프로스, 크레타를 함락당하면서 위축되기 시작, 1797년 나폴레옹 군대에 항복하면서 사라졌다.

      국력의 핵심이 배와 바다에 존재했던 베네치아는 배와 바다와 관련된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베네치아 국영 조선소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 최대 단일생산 시설이었다. 운하를 따라 배치된 선박 조립 생산라인은 세계 최초 라인생산 방식으로 높은 생산성을 확보했다. 20세기 초반 헨리 포드가 자동차 조립에 적용한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원조이기도 하다. 항해도를 표준화하여 숙련도가 낮은 선원도 항로를 잡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서유럽 최초 상선학교도 1683년 설립했다.

      복식부기, 근대적 의미의 은행 탄생

      베네치아는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화폐, 은행, 법규 등 관련 분야 혁신과 표준화를 이끌었다.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복식부기는 14세기 베네치아에서 발명됐다. 근대적 의미의 은행도 창설했다. 이전까지 은행(Banco)은 환전업이나 대금업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 화폐를 주고받으면서 거래하긴 했다. 하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은행 장부에 입출금을 기입하면 다른 지점 계좌에서 가감하는 환어음 방식이 도입됐다. 베네치아 본점에서 입금하고 콘스탄티노플 지점에서 출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은행의 효시로 평가된다.

      화폐는 무역국가 입지를 확고히 하는 핵심이었다. 두카토로 불리는 베네치아 금화는 1284년 주조되기 시작, 1797년 공화국 붕괴 시까지 500년간 동일한 금 함유량을 유지했다. 화폐가치 안정은 베네치아 국채에 대한 높은 신용도로 이어져 유럽에서 최초로 장기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해상 무역과 상거래 발달은 해상법과 계약법을 정비하도록 유도, 법치주의 확립의 계기로 작용했다. 유럽에서 가장 공정한 재판이 진행되던 베네치아 법정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 상징한다. 천대받던 유대인 상인이 고귀한 신분의 귀족에게 계약서에 근거해서 권리를 주장한다는 설정 자체가 베네치아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