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善해, 선한 리더만 살아남는다"

입력 2018.06.30 03:00

[Cover Story] 대커 켈트너 美 UC버클리 교수

대다수가 카리스마 강한 인물을 조직과 기업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리더로 추어올릴 때, 이상적인 리더의 덕목으로 '선(善)'을 강조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인간의 감정과 성격, 사회적 상호작용 분야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대커 켈트너(Keltner·56) 미 UC버클리 교수다. 2009년 출간된 성선설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담은 책 '선의 탄생(Born to Be Good)'으로 학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인간의 표정과 감정에 대해 연구했다.

유명 기업에 자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적 인지도도 한층 더 높아졌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문 자회사 픽사(Pixar)는 2015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켈트너와 폴 에크만 UC샌프란시스코 교수에게 '어떻게 감정이 의식의 흐름을 통제하는가' '감정은 과거의 기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등에 대해 조언을 얻었다. 페이스북은 게시글에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이모티콘을 남길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할 때 켈트너에게 자문했다. 그는 "페이스북은 당시 이모티콘이 (채팅 등에서) 널리 쓰이는 걸 보고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이모티콘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며 "이전에는 이모티콘의 미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 있었는데 나는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을 추가하면 좋겠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 표정의 특징은 이런 것이다, 하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선한 권력만이 살아남는다

대커 켈트너 美 UC버클리 교수
유한빛 기자

켈트너의 최신작은 '선한 권력의 탄생(The Power Paradox)'.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성격, 감정에 대해 연구하던 심리학자가 권력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실 복도에 다다르자 쾌활한 목소리가 열린 연구실 문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학업 관련 조언을 구하러 온 학생과 예정된 시간을 넘겨 면담하던 중이었다. 후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었다. 켈트너는 기자가 질문할 때면 지긋이 눈을 맞춰왔고, 눈가에 주름이 잔뜩 생길 정도로 크게 웃었다.

켈트너는 권력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두 가지라고 말했다.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본 이웃들의 삶이 새로 이사 간 중산층 동네 주민들의 삶과 천지 차이란 사실을 목격한 개인적인 경험이 첫째다. 학자로서 관심은 1990년대 후반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연구하던 시절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남을 의식하는' 감정들은 권력관계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은 남에게 복종하는 태도와 심리적인 나약함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위계질서가 어떻게 사람의 심리적인 영역으로 침투해 특정한 감정과 사고방식, 행동을 유발하는지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권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그가 심리학자로서 정리한 권력의 특성은 세 가지다. '권력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매개체다' '권력은 주어진 것이다'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 있다.' 권력을 악용하는 리더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그가 이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내용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권력은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이 주는 것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권력은 타인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좋은 아이디어나 정보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그 아이디어를 토대로 조직 전체의 역량을 개선한다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권력이 생긴다. 이 권력은 '내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남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리더가 권력을 얻고 나면 점점 이기적이고 충동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에 관심을 갖지 않고 덜 배려한다. 그러다 보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 행동까지 할 수 있고, 결국 권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권력이 인간의 본성을 바꾼다기보다, 본래 성격을 밖으로 드러낼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가.

"맞는 말이다. 힘이 있으면 자유롭다. 다른 사람 평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남에게 강요받는 일도 적다. 그야말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권력을 갖고 더 탐욕스러워질 수 있지만, 인정 많은 사람은 더 관대해질 수도 있다. 권력이 반드시 부패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리더들은 권력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조직과 기업에서 부정행위나 잘못된 거래, 성추행이 벌어지고 리더들이 연루되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윤리가 중요한 이유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함, 타인에 대한 관심, 인격 존중, 다른 훌륭한 리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조직 내에 올바른 규칙과 규범을 세우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 감정 이해하는 '배려 리더십' 중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형 리더가 성공적이란 인식이 있다.

"더 이상 아니다. 많은 연구 결과가 리더십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 타인의 감정 표현을 잘 인식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문제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업무의 성질이나 환경이 50여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이전과 다른 세대 사람이다. 이전보다 덜 가족 중심적이고 덜 위계적인 대신, 역동적이고 다양해졌다. 여성들이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해 많은 분야에서 일하고, 임원급으로도 올라섰다. 물론 리더는 강단 있고 때로는 엄격해야 하지만, 협력적일 필요도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진 않았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 딸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많이 알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지식에 대한 접근성도 상당히 민주화시켰다. 집 앞에 도서관이 없어도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사람들 간의 '관계 맺기'에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이다.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다. 다만 인간은 일할 때나 사랑에 빠지고 친구를 만들고 정치운동을 할 때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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