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두 얼굴의 월트 디즈니 생생하게

    • 박종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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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6.30 03:00

      [CEO 오페라] <8> 필립 글래스 '완벽한 미국인'
      어린이에겐 꿈과 희망을, 화가들에겐 공산주의 누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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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 디즈니의 양면성을 묘사한 오페라 ‘완벽한 미국인’의 DVD 표지.
      "오페라는 왜 죄다 옛날 것들이고 요즘 작품들은 없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실 전 세계 극장에서 올라가는 오페라들은 1750년에서 1950년까지 200년 사이 작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 작품들도 공연 횟수가 적을 뿐 없는 게 아니다. 요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작가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대음악도 고전음악 못지않게 여전히 생산되고 있으며, 현대 오페라 역시 다르지 않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계속 상연돼야 성공한 오페라

      오페라 작곡가에게 가장 큰 영광은 자기 작품이 반복해서 공연될 때, 무대 위에 올라와 관객들 환호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이 생전에 인정받아 재공연의 행운을 누린다는 의미다. 오페라의 탄생과 초연(初演) 이상으로 중요한 게 여러 극장에서 다시 올라가는 것, 다시 말해서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작 오페라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레퍼토리로 정착하고 있는지 여부다. 그런 관점에서 오페라 역사상 자기 작품이 반복적으로 재연(再演)되고, 본인이 무대에 불려 올라가 인사를 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모차르트도 자신의 오페라가 이렇게 반복해서 올라갈 줄 생전에는 몰랐으며, 비제는 '카르멘'의 인기가 그렇게까지 높아질 줄 몰랐다. 바그너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상찬했지만, 영향력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오페라가 생전에 많은 극장에서 올라가고 극장에서 환호를 받는 영광을 누린 작곡가는 역사적으로 베르디 정도였으며, 그다음은 글래스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말했다.

      지난 2016년 방한 당시 기자 간담회를 갖는 필립 글래스.
      지난 2016년 방한 당시 기자 간담회를 갖는 필립 글래스. / LG아트센터
      성공한 현대작 '완벽한 미국인'

      필립 글래스(1937~ )는 매우 중요한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미국 볼티모어 동네 레코드 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글래스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팔다가 남은 레코드들을 들으며 컸는데, 이 팔리지 않은 음반들이 주로 현대음악이었다. 그는 또 도서관 사서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많은 책을 가까이했다. 15세에 시카고대 특별과정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 졸업 이후에야 음악을 선택하고 작곡을 공부한다. 작곡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43세까지 철강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늦게 피아노와 작곡을 연마했다.

      글래스가 작곡한 오페라 대부분이 자신이 읽은 책 속 인물이나 사건 혹은 문학을 소재로 삼아, 그는 '미국의 정신'이라 불린다. 그중에서 2013년 초연된 오페라 '완벽한 미국인(The Perfect American)'은 쉬운 조성과 단순한 선율로 현대음악이 어렵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단번에 즐겁게 해준다. 75세에 작곡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그리는 인물 즉 '완벽한 미국인'은 바로 월트 디즈니이다.

      "죽으면 냉동해달라" 유언 무산돼

      오페라는 폐암으로 투병하는 디즈니의 병실에서 시작한다. 디즈니는 간호사에게 "죽으면 매장하지 말고 냉동해 달라"고 당부한다. 극빈층으로 태어나서 디즈니랜드라는 대제국을 이룩한 그의 일생이 반추된다. 그는 30개의 아카데미상을 거머쥐고 세계에서 600개의 상과 훈장을 받았다. 작품 속에선 그의 밑에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도 나온다.

      화가는 디즈니에게 "수만 권 그림책 중에서 당신이 그린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누구의 저작권도 인정하지 않았고, 수많은 영화와 캐릭터들이 모두 월트 디즈니라는 이름으로만 나왔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도 주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사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디즈니 회사에는 어떤 꿈도 희망도 없었다. 모든 동물을 사랑한 디즈니라지만 정작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 디즈니는 화가들을 착취하고 그들 저작을 탈취했다. 저항한 화가들은 공산주의자로 몰아 고발하였다. 그는 매카시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다. 결국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야 하는 자손들은 냉동 대신 그를 화장한다.

      '갑질 기업인'에게 경종 울려

      장례식에 조문하러 온 화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한다. "디즈니의 하늘은 실제 하늘보다 더 파랗고, 디즈니의 초원은 진짜 들판보다 더 초록이다. 디즈니의 세계에서 인간은 죽지 않고, 모든 결말은 행복하다." 디즈니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현실을 가린 채로 허황되고 조작된 환상을 심어주었다. 디즈니는 사업가로는 성공했지만, 직원들 인심은 잃었다. 요즘 우리 기업인들에게 경종이 될 작품이 '완벽한 미국인'이다. 글래스의 음악 세계뿐 아니라 그의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인 이 오페라는 2013년 마드리드 왕립극장 주문으로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