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막힐 땐 두 바퀴로, 뚫릴 땐 한 바퀴… 150만원 접이식 자전거, 출퇴근길 '쌩쌩'

입력 2018.06.30 03:00

글로벌 강소기업 (2) BROMPTON

자전거는 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짐으로 전락한다. 가는 곳마다 가지고 다니기 번거롭고 마땅히 보관해 둘 장소를 찾기도 어렵다. 실내 반입은 더더욱 어렵다. 영국 자전거 브랜드 브롬턴(Brompton Bicycle)은 휴대하기 편한 자전거를 만들어 자전거 출퇴근족의 고민을 해결했다. 윌 버틀러-애덤스(Butler-Adams·44) 브롬턴 최고경영자(CEO)는 "오늘날 자전거는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실용적이지 못한 자전거가 많다"면서 "브롬턴은 도시에 사는 현대인을 위한 자전거"라고 말했다.

브롬턴 자전거는 전 세계 자전거 애호가를 사로잡은 접이식 자전거다. 대당 150만~200만원의 가격에도 브롬턴의 매출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0%씩 성장해 지난해 3270만파운드(약 480억원)를 기록했다. 3단계의 간단한 동작으로 약 10초 만에 접히는 기능이 브롬턴 자전거의 최대 장점이다. 완전히 접힌 자전거는 약 16인치 바퀴 하나 크기에 불과하다. 접힌 상태의 자전거는 일하는 동안 사무실 책상 옆에 보관했다가 퇴근 후 찾은 식당에 들고 들어갈 수 있다. 버스를 탔는데 길이 막히면 내려서 자전거를 펴고 페달을 밟으면 된다.

브롬턴은 1975년 케임브리지대 공대 출신의 앤드루 리치가 설립했다. 그는 런던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사실이 늘 불만이었다. 자전거는 크기 때문에 실내에 들이지 못했고 밖에 두면 도난당할 위험이 컸다. 리치는 자신이 살던 런던의 작은 아파트와 식당, 지하철 등에 쏙 들어가는 자전거를 원했다. 고민 끝에 그는 브롬턴 고유의 접이식 자전거를 고안해냈다. 회사명인 브롬턴은 당시 리치가 살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던 성당의 이름이다.

발명가인 창업주, 경영은 뒷전

리치는 뛰어난 발명가였지만 경영에는 소질이 없었다. 리치는 강박적으로 제품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경영은 뒷전이었다. 2002년 브롬턴에 합류한 버틀러-애덤스 CEO는 기울어 가던 기업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당시 브롬턴에는 경영 전략이나 예산조차 없었고 공장은 쓰레기와 재고로 가득했다"면서 "창업주는 천재인 동시에 괴짜여서 회사 운영에 필요한 결정을 좀처럼 내리질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먼저 회의를 열고 자전거 2만5000대를 생산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세웠다.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직원들이 목표가 생기자 팀을 꾸려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나는 창업주가 방치한 고객과 공급사를 만나러 다니면서 관계를 재정비하고 성장하는 기업을 운영할 인재 채용에 주력했다."

브롬턴의 연간 생산량은 2002년 5000대에서 지난해 4만6000대로 증가했고, 직원 수는 24명에서 약 280명으로 늘었다. 리치는 2008년부터 경영을 버틀러-애덤스 CEO에게 맡기고 두 달에 한 번씩 디자인 회의에 참석한다. 창업주의 고집스러운 품질 경영과 버틀러-애덤스 CEO의 추진력은 브롬턴의 성장을 이끈 동력으로 꼽힌다.

고품질 위해 런던 본사서 직접 생산

브롬턴 자전거는 런던 그린포드 공장에서 전부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버틀러-애덤스 CEO는 "일반 자전거 제조사는 시마노 같은 자전거 부품 기업에서 부품을 전량 수입해 조립만 한다"면서 "브롬턴은 자전거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직접 디자인해 만들고, 납땜도 기술자가 수작업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브롬턴의 납땜 기술자는 모두 18개월의 훈련을 받은 뒤 실무에 투입되며, 1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최근 방문한 브롬턴 공장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들이 자전거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주요 부품을 직접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많은 자전거 기업이 유행에 따라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자전거를 선보인다. 브롬턴은 다르다. 우리는 30년 전 창업주가 만든 자전거를 끊임없이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에 들어가는 부품도 그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해야 한다. 브롬턴 자전거의 외형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능, 자전거의 기틀이 되는 공학 기술은 30년 전보다 좋아졌다. 예를 들어 최신 브롬턴 자전거는 어지간한 충돌에도 끄떡없다. 몇 년 전부터 자전거를 거칠게 타는 젊은 소비자가 늘면서 브롬턴 엔지니어들이 자전거의 내구성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브롬턴을 베끼는 데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외부인들은 브롬턴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전거 부품은 물론,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계와 시스템도 대부분 우리가 자체 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신입 직원이 초소형 컴퓨터인 라즈베리 파이로 개발했다. 누군가가 브롬턴 자전거를 그대로 본떠서 만들려면 공장의 모든 기계와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공장의 모든 장비와 부품이 지식이다. 자전거의 외관을 베낀다고 꼭 같은 자전거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도시화·공유 자전거 확산은 호재

―브롬턴은 세련된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디자인보다 기능이 먼저다. 미적 아름다움을 위해 불필요한 장식이나 부품을 추가하는 일은 절대 없다. 이런 '디자인 요소' 때문에 성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브롬턴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정교한 엔지니어링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대신 고객이 세부 디자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색상, 안장, 기어, 핸들 등을 종류별로 구비해놨다. 브롬턴 웹사이트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브롬턴'을 제작할 수 있다. 1600만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올해 브롬턴은 첫 전기 자전거를 선보였다.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의 레이싱카 제조사 윌리엄스와 6년간 준비한 야심작이다. 외관은 일반 브롬턴 자전거와 같지만, 자전거에 달린 휴대용 전기 배터리에서 동력을 얻는다. 브롬턴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전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은 2030년이면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도시에 살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틀러-애덤스 CEO는 "도시들이 교통난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유 자전거 확산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오포 같은 자전거 공유 서비스 덕분에 잠재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자전거를 타는 습관이 들면 자연스럽게 성능이 조금이라도 좋은 자전거를 찾게 되는데, 이때 브롬턴이 유리하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ase Stud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