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지옥입니까?

    • 신현호 경제평론가

입력 2018.06.16 03:00

[Foreign Book Review] 한스 로슬링 '팩트적인 것(Factfulness)'

전쟁·폭력·부패 등 어두운 면만 부각하는 세계관에 맞서 데이터로 팩트 전파
빌 게이츠도 필독서로 추천

스웨덴 국제 보건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1948~2017) 전 카롤린스카 의대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면서 사람들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그중 두 개를 살펴보자.

1. 지난 20년 동안 세계에서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사는 인구의 비중은?

A. 두 배로 늘었다 B. 거의 변화가 없다 C. 절반으로 줄었다.

2. 전 세계 한 살짜리 아이 중 백신 접종을 받는 비율은?

A. 20% B. 50% C. 80%.

한스 로슬링 교수는 TED 강연에서 통계와 유머를 섞어가며 팩트로 청중을 감화시켰다.
한스 로슬링 교수는 TED 강연에서 통계와 유머를 섞어가며 팩트로 청중을 감화시켰다. /TED
정답은 '절반으로 줄었다'와 '80%'다. 응답자 중 이를 맞힌 비율은 각각 7%와 13%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교육 수준과는 무관했다. 선진국과 저개발국에서 정답률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심지어 선진국이 더 낮았다. 의대생, 대학교수, 언론인, 금융인, 고위 공직자, 국제기구 직원, 시민 운동가들도 오답을 고르긴 마찬가지였다. 노벨상 수상자 모임과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도 정답률이 여전히 낮았다. 로슬링이 늘 입버릇처럼 지적하던 대로 원숭이에게 고르라고 해도 33%는 될 텐데…. 지식인이 원숭이보다도 못하다고 자책해야 할지 모른다.

잘못된 세계관이 낳은 오류

그리고 오답의 방향은 체계적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폭력적이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더 빈곤에 빠지고 있고 아이들은 예방주사도 맞지 못한다고 믿고 있었다. 로슬링은 이를 '과잉 드라마틱(overdramatic)'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우리 본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한스 로슬링 '팩트적인 것(Factfulness)'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면 전쟁, 폭력, 자연재해, 테러, 부패가 먼저 떠오른다. 여기엔 언론도 일부 책임이 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야 하는 게 숙명이자 사명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된 모습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구태여 타인을 향해 화살을 돌리기보단 먼저 자아비판을 해보자. 평소 통계와 차트로 세상사를 설명하는 글을 가끔 쓰는데, 얼마 전 '국내 부자들의 재산 해외 은닉과 탈세'에 관한 내용을 준비하다 포기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는 한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역외 탈세 3위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넘쳐나지만, 이 분야 전문가들의 국제적 연구들을 죽 살펴보니 우리는 재산을 조세피난처에 빼돌린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였다. 이래서야 독자들 누가 관심을 갖고, 분노하고, 읽겠나 싶어서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당시에는 '한국이 최악의 역외 탈세국이라야 글이 될 텐데…'라는 마음이 살짝 들긴 했다.

지난해 68세로 세상 떠나

로슬링은 이처럼 만연한 '과잉 드라마틱'한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해 데이터를 치유제로 삼아 팩트풀(factful)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그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강연이 엄선된 TED 무대에 열 번이나 선 인물이다. 이제까지 최다 출연이고 총합계는 330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 청중으로부터 '데이터가 노래한다' '세계적 차원의 보건과 경제 트렌드가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찬사를 받았다.

로슬링 교수의 TED 강연 모습.
로슬링 교수의 TED 강연 모습. /TED

애석하게도 그는 지난해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평생 일궈놓은 성과를 충실한 동료였던 아들 부부부가 책으로 묶어 지난 4월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했다. 출판 직후부터 책의 인기가 강연을 넘어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금융시장 담당자는 '최고의 경제경영서'로 이 책을 꼽았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이 책을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면서, 올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한 권씩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어떨까? 세계의 극빈층에 대한 앞의 질문에서 우리 국민 중 정답을 옳게 고른 비율은 고작 4%에 불과했다. 한국은 극복해야 할 온갖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헬조선'도 아니고, 이 행성도 '헬지구'도 아니라는 걸, 성에 안 차더라도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다는 걸 팩트로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우리도 특별히 로슬링의 메시지를 편견 없이 읽을 필요가 있다.

실제 로슬링은 2015년 통계청 초청으로 방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동향, 성평등 의식의 중요성, 인구조사 통계 축적의 필요성들을 한국 대중에게 역설한 바 있다. 로슬링의 TED 동영상은 모든 작품에 한글 자막이 달려 있다. 먼저 이걸 보고 그다음 그의 유작 '팩트적인 것(Factfulness)'도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로슬링이 세상을 떠나자 월드뱅크는 이렇게 추모사를 날렸다. "한스 로슬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그러나 과거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세계에 우리의 눈을 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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