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재봉사가 창업, 6대째 150년 킬트 납품… 장수 비결은 '끊임없는 변화'

입력 2018.06.16 03:00

[Cover Story] 英왕실 인증 기업 3곳 르포 - 킨록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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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록앤더슨
킨록앤더슨(Kinloch Anderson)은 정장이나 재킷, 구두 등을 주로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패션업체다.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 중심부 조지스트리트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창업자 윌리엄 앤더슨이 두 아들과 맞춤 의상실을 운영하다가 사업 규모가 커지자 1868년 킨록앤더슨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차린 게 시작이다. 올해로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킨록앤더슨은 남성용 맞춤복을 주로 만들던 중, 1차 세계대전을 맞아 스코틀랜드 군대용으로 전통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군복을 제작하면서 사업 규모가 커졌다. 이후 남성용 기성복 분야까지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확장을 시도했다. 1903년 영국 왕인 에드워드 7세를 위해 스코틀랜드 고지대 지방과 아일랜드에서 입는 스커트형 남성용 정장인 킬트(kilt)를 제작하면서 사업이 도약대에 올랐다. 1934년 조지 5세로부터 왕실 인증을 받으면서 킬트 등을 납품한 이래 계속 왕실 기업 지위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194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결혼식 때 화동(花童)들이 입은 킬트 역시 킨록앤더슨 제품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군 필립 공, 찰스 왕세자 등 영국 왕실 가족이 입고 나오는 킬트와 배우 숀 코너리, 테니스 선수 앤디 머리가 착용하고 나온 킬트도 킨록앤더슨이 공급한 것이다. 지금은 킬트 제품을 중심으로 남성용·여성용·아동용 의류, 가방, 스카프, 목도리, 액세서리 등과 위스키까지 생산한다.

더글러스 킨록앤더슨(79) 현 회장에게 왕실 인증 기업이 된 비결을 묻자 "영국 왕실은 스코틀랜드까지 관할하기 때문에 공식 행사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 킬트를 입어야 할 때가 있는데 마침 우리는 당시 최고 품질 킬트를 제작할 수 있었던 터라 왕실 관계자들 눈에 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건 그 뒤로 계속 왕실 눈높이에 맞추는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인데 그런 노력을 꾸준히 펼치다 보니 다른 사업 분야 경쟁력도 동반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고지대 '하이랜드 의상'서 출발

스코틀랜드 북서쪽 고지대(the Highlands) 지역 주민들 전통 의상인 킬트는 '하이랜드 의상(Highland dress)'이라고도 불린다. 가문마다 고유한 색상과 격자무늬 디자인을 지니고 있으며 양모 직물인 타탄(tartan)으로 지어 입는다. 킨록앤더슨에 소속된 전문가들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킬트 제품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성(姓)에 따른 가문 고유 무늬나 소속 기업이나 행사의 성격에 알맞은 디자인의 타탄을 추천해 준다. 이런 남다른 내공을 쌓아온 게 왕실 기업 인증을 받은 원동력이었다.

킨록앤더슨
더글러스 회장은 "인증을 받고도 5년 주기로 자격을 재평가받아야 할 만큼 관리 기준도 엄격하다"면서 "왕실 인증을 받은 기업들로 구성된 왕실인증보유자협회에서 다른 (왕실 인증) 기업들과 교류하면서 받는 자극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보통 킨록앤더슨 킬트 1벌은 80만~130만원에 달한다. 전형적인 전통 의상 제조업에 주력한 킨록앤더슨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온라인 유통 채널에 주목하고 있다. 점차 온라인 판매망 확대에 주력하는 건 물론, 이를 통해 수출 판로 확장도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매장 300곳 달해

더글러스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움직인 게 킨록앤더슨을 장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창업자 윌리엄은 1920~1930년대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의류 시장 방향이 변화할 조짐을 포착하고 과감하게 기성복 제조를 단행했다. 당시 이런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지 못한 인근 재봉사들은 대부분 도태됐다.

더글러스 회장 부친이자 4대 회장인 W J 킨록앤더슨은 1950년대 도매사업부를 신설, 스코틀랜드 중심으로 운영하던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캐나다를 찾아 북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것도 그다. 더글러스 회장 역시 유럽과 미국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1972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 아시아 진출 가능성을 살폈고, 1980년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버버리, 랄프로렌, 닥스 같은 기존 대형 의류 브랜드가 라이선스 사업 방식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하던 시절, 이들도 현지에서 사업 파트너를 찾아 그 시장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킨록앤더슨의 일본 시장 도전은 성공적이었고, 이어 대만과 한국·중국 등으로 시장을 넓혔다. 현재 아시아 지역 매장 수는 300곳이 넘는다. 더글러스 회장은 "왕실 인증을 받을 정도로 영국 최고 품질 제품에 스코틀랜드 특유 전통이 가미된 패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아시아 소비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가족 경영 덕에빠른 변신 가능세계시장 공략"

더글러스 '킨록앤더슨' 회장


킨록앤더슨은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점에서 시작, 킬트와 타탄 체크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류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왕실 인증 기업이자 장수 기업이다.

더글러스 킨록앤더슨 회장은 창업자 5대손. 더글러스 회장의 아들 존이 최고경영자(CEO), 아내인 데어드레이는 임원직(시니어 디렉터)을 맡아 경영에 참여한다. 상장도 아직 하지 않은 전형적 가족 기업 형태다. 존이 2000년 28세에 아버지 뒤를 이어 CEO에 취임한 이후 회계 담당 임원이 잠시 공동 CEO를 맡긴 했으나 이내 단독 CEO 체제로 회귀했다.

킬트를 입은 더글러스 킨록앤더슨(왼쪽) 킨록앤더슨 회장이 최고경영자(CEO)인 아들 존과 영국 왕실 인증 문양이 장식된 벽난로 앞에 서 있다.
킬트를 입은 더글러스 킨록앤더슨(왼쪽) 킨록앤더슨 회장이 최고경영자(CEO)인 아들 존과 영국 왕실 인증 문양이 장식된 벽난로 앞에 서 있다. / 킨록앤더슨
이에 대해 더글러스 회장은 "비상장 가족 경영 기업의 최대 장점은 중요한 사업 결정을 아주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주 같은 외부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과거 기성복이나 비(非)의류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도 이런 가족 중심 의사 결정 구조 덕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둘째 장점으로는 "2~3년 안에 결과가 나오는 단기 실적을 고려한 투자·배당 등 주주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게다가 가족 경영진은 회사 미래에 대한 태도나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일정 수준 이상 갖추고 있다. 물론 가족 구성원 간 의견이 항상 일치하지 않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회사 장래를 진심으로 고민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주인 의식이 남다르다는 뜻이다.

존 킨록앤더슨 CEO는 "배를 타고 여행할 때 그 배가 자기 배여야 원하는 곳에 맘대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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