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이 인증한 영국 대표 茶 브랜드… 7개국서 찻잎 공급받아 배합

입력 2018.06.16 03:00

[Cover Story] 英왕실 인증 기업 3곳 르포 - 트와이닝스

트와이닝스
런던 시내 중심 스트랜드가 한쪽에는 1706년 문을 연 트와이닝스(Twinings)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개장한 지 312년째. 입구 위에는 등지고 앉은 중국 상인 2명과 더불어 황금빛 사자가 앉아 있는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18세기 개장 당시 모습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하고 차분한 차향이 코끝에 배어왔고, 긴 복도가 이어지는 매장 양쪽 벽에는 수십 종에 이르는 다양한 차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트와이닝스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일가(一家)의 초상화 12점도 나란히 걸려 있었다. 안쪽에선 직원들이 칵테일바를 연상시키는 긴 테이블에 각종 차를 우려내며 방문객들과 차의 맛과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트와이닝스는 명실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차(茶) 브랜드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왕실 기업' 인증을 받아 200년 가까이 왕실에 공식으로 차를 납품해온 업체이기도 하다. 매장에서 만난 스티븐 트와이닝(Twining) 대외협력 이사는 영국 여왕이 마시는 트와이닝스 차가 뭔지는 "보안상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면서 "트와이닝스가 200년 가까이 왕실 인증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엄격한 품질 관리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차를 공급하는 농장도 세계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세계 각지 차밭에서 생산한 차를 맛본 뒤 적절하게 섞어서 트와이닝스만의 고유한 홍차 맛을 재현하는 '마스터 티 테이스터(Master Tea Taster)'가 트와이닝스 경쟁력의 요체다. 스티븐은 창업자 10대손이다.

18세기 커피하우스 출입 못 하던 귀부인들이 마신 차

영국 상인 토머스 트와이닝은 커피가 주류였던 18세기 런던에 말린 찻잎을 전문으로 파는 찻집을 세웠다. 당시 목표는 하나였다. '좋은 재료를 조합해 최고로 맛이 뛰어난 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이전까지 런던에선 커피하우스가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커피하우스는 금녀(禁女)의 공간. 남자만 모여 업무를 보고 커피와 술을 마시곤 했다. 커피하우스에 출입할 수 없었던 귀부인들은 대신 비싼 차를 구입한 뒤 손님을 집에 초대해 대접했다. 상류층 사이에서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는 '티 타임(tea time)'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트와이닝스는 품질과 맛이 뛰어난 차를 제공, 귀부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찻집으로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트와이닝스는 맛과 품질을 2단계로 보장한다. 먼저 차 조달을 담당하는 산하 조직인 '윤리적 차 파트너십'을 통해 중국, 인도, 스리랑카, 케냐 등 7개국에서만 차를 공급받는다. 스티븐 이사는 "원래 16개국이었는데 차 농장을 좀 더 면밀하게 점검하고 품질을 강화하기 위해 7개국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300년 넘게 차 농장과 신뢰를 쌓은 덕분에 트와이닝스는 새로운 종류의 차가 나오면 경쟁자를 제치고 1순위로 제안을 받는다. 스티븐 이사는 또 "많은 차 농장이 우리에게 차를 공급하면 우수한 제품으로 재탄생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제일 먼저 구입 여부를 타진한다"면서 "다른 차 업체들과 시작부터 다른 여건인 셈"이라고 말했다.

'마스터 티 테이스터'는 현재 9명이 근무한다. 이들 임무는 다양한 종류의 찻잎을 선별하고 배합해 차의 맛이 언제나 같도록 유지하는 것. 맛은 물론 차를 물에 넣었을 때 우러나오는 색상, 향,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와 무게감 등도 따진다. 예를 들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는 인도와 스리랑카 차밭에서 재배한 여러 종류의 홍차를 섞어 만든다. 같은 차밭에서 동일 품종의 찻잎을 재배하더라도 기후가 바뀌면 다른 맛이 난다. 이렇게 맛이 다른 찻잎을 섞어 항상 균질한 차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1주일에 2000여 잔의 차를 맛본다고 한다. 스티븐 이사는 "다른 재료를 사용해 매번 똑같은 맛의 차를 만들어내는 게 강점"이라고 전했다.

트와이닝스
한 해 티백 70억개 만들어

런던 작은 찻집에서 출발한 트와이닝스는 현재 120여 개국에 차를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스티븐 이사는 "트와이닝스가 별도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한 해 약 70억개 티백(1인분의 차를 넣은 봉지)을 만든다"고 했다.

대표 제품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얼 그레이' 등 홍차 외에도 400여 종의 차를 만든다. 차 종류가 많은 이유는 국가마다 다른 차를 판매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인들은 인도식 향신료를 넣은 홍차 종류인 '차이티'를 특히 선호해 미국 시장 전용 차이티만 7종 출시했다. 트와이닝스 측은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에서는 망고·딸기 등 과일 맛을 섞은 홍차, 사우디아라비아는 녹차를 즐겨 마신다"면서 "국가별 소비자 입맛에 맞춰 다양한 차를 선보이는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312년 10대째… 열정 있는 아들에게 가업 승계

'트와이닝스' 창업주 일가

스티븐 트와이닝 트와이닝스 대외협력 이사는 즉석에서 중국산 ‘기문 홍차’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10~15잔의 차를 마신다”고 말했다.
스티븐 트와이닝 트와이닝스 대외협력 이사는 즉석에서 중국산 ‘기문 홍차’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10~15잔의 차를 마신다”고 말했다. / 이재은 기자
올해로 창립 312주년을 맞이한 영국 차(茶) 브랜드 트와이닝스는 10대째 창업주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 식품회사 ABF가 1964년 트와이닝스를 인수했지만, 트와이닝 가문 후손들이 여전히 차의 제조나 홍보, 왕실 납품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스티븐 트와이닝 대외협력 이사는 10대째 가족 경영이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로 '자원 제도'를 꼽았다. 영국에서도 수많은 가족 기업이 무조건 장남에게 사업을 물려주려다가 엇박자가 나면서 맥이 끊긴 경우가 있는데, 트와이닝 일가는 차를 업으로 삼고 싶은 열정이 있는 구성원이 자원해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억지로 떠맡기는 풍토를 지양한 셈이다. 스티븐 이사는 "사실 트와이닝스도 3대째에서 장남(토머스)이 가업에 관심이 없어 맥이 끊길 뻔했다"면서 "다행히 열혈 차 애호가였던 차남(리처드)이 뜻을 밝히면서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트와이닝 일가에선 장자 상속 문화가 사라지고 서열에 상관없이 차에 열정이 있고 '가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한 형제가 트와이닝스에 입사하는 전통이 생겼다. 스티븐 이사는 "나는 여덟 살부터 차를 사랑했고 업으로 삼고 싶어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의견이 달라 지금 모두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했다.

스티븐 이사는 일종의 차 소믈리에인 '마스터 티 테이스터' 자격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차를 맛있게 마시는 비결로 "이미 끓였다가 식은 물을 다시 끓여 사용하지 말고 매번 신선한 냉수를 새로 넣고 끓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이 더 많아 차를 넣었을 때 차의 맛과 향이 살아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 "홍차와 허브차는 갓 끓인 물에 우려내야 맛있지만, 녹차는 갓 끓인 물에 우려내면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끓인 물을 5분 정도 식힌 후에 넣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